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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2
올더스 헉슬리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24년 11월
평점 :
<멋진 신세계>는 <1984>와 함께 디스토피아 문학의 쌍두마차로 유명하다. 하여 독서가들 사이에서는 필독서나 다름없는 이 작품을 나님은 정말이지 읽고 싶지가 않았다. 이유인즉슨 내가 SF 장르, 일명 이과소설을 극도로 싫어해서 그렇다. 아니, 취향이 아니면 아닌 거지, 싫어할 이유는 또 무엇인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나님은 드라마가 빠진 이야기에 흥미를 갖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따라서 아무리 작품성이 높다 한들 드라마적인 요소가 없다면 영 매력을 못 느낀단 말이다. 그럼에도 억지로라도 읽은 것은, 요즘 공부하고 있는 책들마다 이 작품을 인용하여 도저히 안 볼 수가 없어서였다. 정신분석학, 사회심리학 등 여러 분야에서 다루는 이 책의 영향력을 알고자 했지만 워낙 안 내켜서 질질 끌었다 보니 퍽 남는 것도 없다. 아무튼 <멋진 신세계>를 끝으로 SF와는 아주 절연을 해야 쓰겄다.
점수를 짜게 준 것은 순수하게 글이 재미가 없어서였다. 작품성이야 대단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것 외의 장면들을 참 지루하게도 풀어간다는 인상만 받았다. 여하튼 워낙 유명하니까 요약은 생략하겠다. 과학기술이 극도로 발달한 문명사회를 살아가는 존재들의 이야기이다. 소설 속 세계관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 과학의 혜택을 누리고 사는 오늘날에 와서는, 헉슬리가 염려한 과학기술 진보의 폐해를 모두가 느끼며 공감하고 있다. 사실 과학 자체로는 문제랄 게 없으나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악용되어 병폐를 낳고 있으니 말이다. 진보라는 이름 아래 생겨난 제도와 기술들은 의도한 대로 굴러가는 법이 없는데도 인간은 끊임없이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그것들에 잠식당한 노예가 된다. 이 악순환의 최종 버전이 <멋진 신세계>의 세계관이라고 보면 되겠다.
근심과 고통, 불행이 사라지고 오직 쾌락만이 지배하는 세상이라. 아직 겪어보지 못한 우리들한테는 어쩐지 거부감이 든다...라고 했다가 솔직히 잘 모르겠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당장 나만 하더라도 연민이나 우울에 취약해서 지구 따위 멸망해버렸으면 하는데 말이다. 이렇듯 평생을 고통에 짓눌려온 나 같은 사람들은 번민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기꺼이 가짜 행복 속에 살아갈 거라고 생각한다. 가끔 주변인들과 그런 얘기들도 나눈다. 온갖 병치레를 하면서 100세까지 사느니, 건강하게 살다가 한 60세쯤에 죽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는. 의료기술이 발달한 만큼 고통의 기간도 연장되었다는 뜻이므로, 나 또한 그렇게 골골대면서 오래 살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이 얘기가 작품 속에서도 그대로 등장한다. 문명인들은 죽기 전까지 젊음과 건강을 유지하다가 세상을 떠난다. 그래서 생명의 유한성도 알지 못하고, 온통 자극적인 문화에만 가치를 두고 살아간다. 이제껏 우리가 중요시했던 가치들은 휴지 조각이 되고, 오로지 자기만의 기쁨과 쾌락과 행복에만 집중하게 된다. 이 작품을 한 10년 전에 읽었다면 모를까, 지금에서는 오히려 나도 그런 세계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만큼 현실의 괴로움이 압도적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결국 사람 사는 게 거기서 거기이므로, 나는 모든 현대인의 고통이 다 같다고 본다. 또한 그 고통의 뿌리이자 종착점은 인간관계라고 생각한다. 문명의 발달로 더 이상 나와 맞지 않는 이들과 잘 지낼 필요가 없어졌고, 의학의 발달로 건강해진 가족과 이웃들을 챙기지 않아도 되었고, 정보의 발달로 과거에 죽어라 했던 노력의 의미는 퇴색돼버렸다. 과학기술의 진보는 정녕 우리 사회를 더 발전시켰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핵개인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실보다 더한 작중의 문명 세계는, 시험관으로만 새 생명이 탄생되고 각종 세뇌 학습을 통해 제법 건강한 자아가 형성되고 있다. 그들은 가족, 친구, 동료, 이성 등 인간관계로 고민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들이 하는 것이라고는 오직 도파민 탐색뿐이다. 어떤가, 오늘날의 현대인들과 다른 점이 하나 없지 않은가. 이미 현실은 헉슬리가 그려낸 신세계가 되어가고 있다. 아직은 멋지다고 할 단계가 아니지만 이미 예견돼있는 미래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예로부터 미래를 걱정한 학자들의 주장을 수차례 듣고도 위기를 막아내지 못했다. 그렇게 인간은 자기밖에 모르는 멍청이가 되었고, 그로 인해 생겨난 환경문제들로 지구는 다 죽어간다. 이 모든 게 예정된 결과이다.
현대인에게는 업그레이드만 있고 다운그레이드는 없다고 한다. 최신형을 써본 사람은 다시 구형 제품을 찾지 않는다는 말이다. 따라서 무기력한 삶을 날려버린 신문물의 맛을 본 인간들은, 그것들로 인해 인간다움을 잃어버렸다 해도 전혀 개의치 않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과반수가 그래버리면 손쓸 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이다. 우리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원주민들을 보고 미개하다 말할 자격이 없다. 오히려 우리보다 행복지수가 월등히 높은 그들의 삶이 훨씬 낫다. 아무튼 나님은 지금 세상에 리셋이 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언젠가 3차 대전으로 온 세상이 불바다가 되어 멸망하게 되면 그것이 내게는 멋진 신세계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