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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에르와 장 ㅣ 창비세계문학 9
기 드 모파상 지음, 정혜용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평점 :
프랑스 작가인 모파상에게는 러시아 문학의 냄새가 풀풀 난다. 저자를 모른 채로 작품을 읽는다면 영락없이 도스토옙스키의 글이라고 생각될 정도이다. 이 같은 날것의 맛과 거친 감성은 합격이지만, 불필요한 묘사와 장면들로 재미가 반감되었다. 글자 수만큼 돈을 주니까 억지로 분량을 늘렸다지만, 누구는 그 억지마저도 몰입감을 주는 반면 누구는 지루함을 안겨주니 비교하지 않을 수가 있나. 쓸데없는 거 다 빼고 절반으로 줄인다면 별 다섯 개도 줄만한 작품인데, 쯧쯧.
동생인 장은 형인 삐에르보다 뛰어난 신체 스펙을 가졌다. 형은 열등감에 가득 차 있지만 아닌 척하기 바쁘다. 어느 날 운명하신 모 어르신이 동생에게 유산을 전부 물려주면서 장은 벼락부자가 돼버렸다. 배 아파하는 삐에르의 마음도 모르는 가족들은 마냥 기뻐한다. 줄 거면 형제에게 반반해주는 게 상식인데, 한 명에게만 몰아준다? 어딘가 구린내가 난다. 탐정모드가 된 형은, 그 어르신과 모친 사이에서 장이 태어났음을 밝혀냈다. 다만 이 진실을 공개하면 가족 모두가 상처 입을 것이고, 잠자코 있자니 화병에 돌아가실 지경이다. 하.
‘사느냐, 죽느냐‘를 내내 고뇌하는 삐에르의 모습. 이 정도면 프랑스판 ‘햄릿‘으로 불러도 될 듯하다. 하지만 그의 마음이 평화를 깨뜨리는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는 이유가 다분했다. 세상 모두가 동생을 더 우대하는데 편애한다는 기분이 안 들겠는가. 이래서야 열등감이 안 생길 수가 없단 얘기다. 그렇다고 형이 막 비교될만한 인물도 아니었다. 의사라는 번듯한 직업도 있고, 생김새도 멀쩡하고, 성격도 무난한 편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늘 동생한테 밀려났었던 삐에르에게, 재산 상속 일도 그렇고, 자신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부모님의 태도도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가정의 파괴까지 고려하는 그의 질투를 누구인들 욕할 수 있을까.
결국 삐에르는 입을 열고 말았다. 부친한테만 빼고. 모친은 순순히 인정하고, 두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정신이 오락가락한다. 동생도 충격은 받았지만 가족의 해체를 막고 싶어 한다. 그와 반대로 삐에르는 가족들에게 실망하여 멀리 떠나버린다. 이렇듯 줄거리는 매우 단순하다. ‘카인과 아벨‘ 이야기를 각색한 느낌마저 든다. 서사보다는 개인의 심리에 집중한 작품이었고, 그것은 충분히 공감하고도 남을만한 감정선이었다. 종종 친자 불일치로 확인된 자녀(와 아내)를 끝내 정리했다는 미디어 소식을 듣곤 한다. 그게 만약에 내 얘기라면 어떨까. 배신감에 잠 못 이룰게 뻔한데, 그렇다고 정이 든 아이를 떠나보낼 수 있을까. 마지못해 눈 감고 같이 살아갈 듯하지만 평생 괴로울 각오도 해야 한다. 혹 그렇게 되면 아이와 아내를 투명히 대할 순 없을 텐데 그럼에도 끌어안고 살아가야 하는가. 정말 어려운 문제다. 이와 같은 윤리적 갈등을 다룬 <삐에르와 장>은 한 번쯤 읽어봐도 좋을 작품이다. 적당히 스킵하면서 읽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