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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 ㅣ 다음, 작가의 발견 7인의 작가전
정명섭 지음 / 답(도서출판) / 2017년 12월
평점 :
어느 날, 병원 건물이 붕괴되는 사고가 발생한다. 사고 전날, 입원 환자의 가족들은 엑토컬쳐 실험 실패로 건물이 붕괴된다는 병원장의 통보 메일을 받게 된다. 붕괴 이후 메일 수신자들과 병원장은 인명 구조회원으로 위장하여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실험대상들이 있던 병원 지하로 내려간다. 그곳에서 은밀히 진행하던 실험 실패로 실험체들은 괴물이 되어 구조원들을 덮치기 시작한다. 이 괴물들은 어떻게 생겨난 것이며, 왜 이토록 인간을 증오하는 것일까. 더 수상한 것은 괴물이 된 가족들을 죽이는 데에 전혀 망설임이 없는 구조대원들의 태도이다.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과 사람들을 통제하고 이끄는 병원장의 정체는 무엇인가.
먼저는 짧은 분량으로 깊이감이 부족해 여기저기 아쉬움이 보인다. 조금만 더 삶았으면 완숙이 되었을 건데 반숙에서 끝나버렸다. 다들 제목에 속지 마시라. 재난 소설이 아니고 SF 소설이다. 이런 소재는 한 400페이지 쯤 늘려서 템포는 늦추고 더 디테일하게 써주면 좋았을 건데. 짧은 분량만큼 급하게 진행되어서 캐릭터도 제대로 안 잡혀있고, 상황을 곱씹어 볼 틈도 없으며, 작가의 메시지도 파악되지 않아 아쉬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개인의 사연은 별 의미가 없어지고, 괴물들에게만 포커스가 맞춰져서 메인 사건은 김빠진 콜라가 돼버렸다. 안 뺏어 먹으니까 천천히 좀 먹으라우!
괴물 소재의 작품은 ‘쥐라기 공원‘부터 시작해서 ‘부산행‘까지 넘쳐나는데 ‘괴물‘하면 바로 떠오르는 영화나 소설은 별로 없다. 왜 이 장르소설은 성공이 어려운 것일까. 어떤 작품이든 괴물의 컨셉은 흠이 없는데 아마 작가들이 플롯을 짜기 전에 괴물부터 구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제는 항상 개연성 없는 스토리와의 연결고리였다. 이 책도 괴물들의 액션신에만 충실했고, 구조대원들이 모이게 된 계기와, 현장 속에서 서로 삐거덕대는 이유와, 실험에 대한 내용에 대해선 한 48% 빠져있다. 뒤에 가서 열심히 해명한들 떡밥 하나 없었으니 억지로 이해시키려는 느낌만 받았다.
미스터리나 스릴러에서는 분명한 복선이 깔려있어야 한다. 마침내 모든 정체가 드러나지만 아무런 암시도 없이 갑자기 등장하는 범인은 얼마나 생뚱맞은가. 복선이 없으면 독자의 추리는 헛수고가 되고, 반전이 있다는 기대도 하지 않는다. 이렇게 독자랑 호흡하지 않고 작가 혼자 북 치고 장구치는 작품들은 여운이 남지 않는다. 주인공 비중도 워낙 없어서 책 절반이 지나도 누가 주인공인지 모르겠더라. 심지어 똥 싸다 만 듯한 마무리라니. 열린 결말도 아니고 참. 타임 킬링 영화들도, 병맛 웹툰들도 나름 작품성은 있던데.
작가 후기에 따르면 ‘붕괴‘라는 제목은 무너진 인간의 내면을 나타내고자 했던 이중적인 의미였다. 작가의 말을 읽고 나서야 작품의 메시지를 알게 되다니. 건물 안에 있다던 진실은 차라리 모르는 게 약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쓰고 보니 당근 없이 채찍질만 한 것 같은데 저는 칭찬만 하는 서평단이 아니 옵니다. 작가님은 오래전부터 인간이 가진 심연에 관심이 많았다고 하시니 다음에는 괴물 없는 작품으로 부탁드릴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2018년 파이팅입니다!
※ 출판사에서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