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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6월
평점 :
여러 가지로 바쁜 4분기였다. 직장을 이직해서 정신도 없고 시간도 없었지만 무엇보다 이 책 때문에 슬럼프에 빠져 한동안 독서와 멀어졌었다. 제일 좋아하는 일본 작가였는데 기존 작품과 색깔이 많이 달랐다. 무지하게 문과 쪽인 나는 이런 이과 냄새 가득한 작품과는 맞지 않았다. 실험이나 연구에 대한 설명이 너무 정밀해서 안 그래도 복잡한데 더 어렵게만 느껴졌다. 이런 글은 제프리 디버처럼 중간마다 스프라이트 샤워가 필요하다.
인류 멸망 연구인 ‘하이즈먼 리포트‘. 우리에게 아주 친근한 천조국 미국에서는 인류를 위한 대량 학살을 계획 중이다. 콩고에서 태어난 괴기한 ‘초인류‘의 등장으로 백악관은 초비상 사태다. 태어난 지 몇 년 되지도 않은 이 생명체는 모든 인류의 지능을 초월하여 국가 안보와 현 인류들을 위협할 무서운 존재로 판명된다.이 존재와 바이러스에 감염된 집단을 말살하는 작전에 투입된 용병들과, 머나먼 일본에서 이 국가기밀에 관계되어 도망자 신세가 되는 주인공. 바이러스가 더 퍼지기 전에 극단의 조치를 내리는 미국이 옳은 것일까.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 중에서 다른 집단을 학살하는 건 인간뿐이라고 한다. 우리는 흔히 이성 없이 행동하는 자들을 ‘짐승 같다‘고 하는데 때로는 인간이 그런 짐승만도 못 한 경우가 있다. 자신의 이념과 다르거나, 사리사욕을 위해 인권을 먼지처럼 여기는 권력자들. 그들의 갑질은 사회 곳곳에서 쉽게 이슈가 되어 인간의 더러움을 조명한다.
작품 속 ‘초인류‘는 현 인류를 뛰어넘는 지능으로 미국을 가볍게 컨트롤하는데, 먹이사슬 상위 랭크들이 허둥대는 꼴을 보면 결국 똑같은 인간들끼리 뭐 하는 건가 싶다. 의학, 과학, 정치, 군대라는 퍽퍽한 소재로만 쓰여져 가독성은 나쁜 편이지만 <13계단>에서 보여주었던 인간에 대한 비판과 모순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