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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마틴 에덴 1~2 - 전2권 - 추앙으로 시작된 사랑의 붕괴
잭 런던 지음, 오수연 옮김 / 녹색광선 / 2022년 9월
평점 :
이 작품은 심리학자 칼 융의 성별 이론을 참고로 읽는다면 재미가 더할 것이다. 먼저 남성 안에 억눌려있는 여성성을 ‘아니마‘라 하고, 여성 안에 억눌려있는 남성성을 ‘아니무스‘라고 한다. 각자가 감추고 있는 제2의 자아를 지닌 이성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내면의 자아를 상대에게 투사해서 그렇단다. 또한 남성성, 여성성은 독립된 개체가 아닌 하나의 스펙트럼이며, 평소의 자신과 반대편에 있는 이성에게 끌리도록 설계된 것이 인간이라는 사실. 마치 극외향 ENFP와 극내향 INTJ의 높은 궁합을 자랑하듯이. 또한 심리학에서 말하길, 가장 건전한 관계는 서로가 (무언가를) 줄 수 있는 존재끼리만 형성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 말에 따라 주인공 두 남녀는 서로에게 없는 정보와 경험들을 제공하며 팽팽히 끌어당기는 관계로 발전할 수가 있었다.
노동 계급의 마틴은 어찌어찌해서 상류층의 모스 가문과 인연을 맺고, 그 집안 딸인 루스에게 반해버린다. 물론 각자의 처지를 알기에 결코 선 넘는 법은 없었으나 설명할 수 없는 대 우주의 법칙으로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된다. 신분은 다르지만 두 사람은 각자의 우물 속에선 꽤나 각광받는 알파 남녀였다. 하여 각자 우물 밖의 세계가 흥미로운 건 물론이었고, 이제껏 살아온 삶이 주지 못한 자극의 세계로 안내한 서로에게 매력을 느꼈음은 당연했다. 루스에게 기초적인 교양 및 언어 교육을 받게 된 마틴은 점점 지식과 예술 세계에 온 마음을 뺏겨버린다. 시작은 루스와 조금이라도 나란히 걷고 싶다는 욕망에서였지만, 나중에는 자아실현과 기대 가치를 위해 열과 성을 다하는 뇌섹남으로 바뀌었다. 그것을 마치 루스 자신이 마틴을 멋지게 조각했노라고 착각하게 만들어 낭패였지만 말이다.
마침내 그의 사랑고백이 효과를 발휘했다. 루스는 이 거친 야생마에게 끌렸음을 인정하고 부모의 반대를 꺾고 연애질을 시작한다. 어쨌든 잘 풀려 다행이지만 솔직히 루스를 향한 마틴의 사랑은 동경과 경외심 그 사이쯤 어딘가의 감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성 간에 반대가 끌린다는 말을 썩 좋게 보지 않는다. 나를 끌어당긴 그 ‘다름‘의 매력이 동나면 다시 나를 밀어내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서로 조율하고 타협해서 잘 지내는 커플이란 건 있을 수 없다. 어느 한쪽이 계속 희생하고 맞춰주는 건데 다른 한쪽이 그걸 알아채지 못할 뿐이지. 그 ‘다름‘이란 마틴처럼 신분과 환경일 수도 있고, 성향과 가치관 같은 보이지 않는 영역이기도 하다. 그중 하나라도 데칼코마니 급으로 결이 맞는다면 모를까, 그런 게 없다면 언젠가는 권태가 오게 돼있다. 그런 연애들만 해왔던 장본인으로서 아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다들 호기심에 좋아서 만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저 사람을 우리(나)에게 맞게끔 바꿔놓자는 무의식에 지배된다. 고로 반대가 끌린다는 건 허울좋은 이유일 따름이다.
어딘가에서 읽었던 동경과 사랑이 어떻게 다른지에 관한 글을 적어보자면, ‘그 사람처럼 되고 싶다‘와 ‘그 사람 곁에 머물고 싶다‘의 차이라고 했다.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의 리뷰에도 적었던 건데,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이기만 하면 사랑이 아니라 동경이 돼버린다. 동등한 입장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사랑으로 발전할 수가 없음을 의미했다. 마틴은 루스가 사는 세계로 입성하고자 문인이 되기로 결심하고 밤낮으로 글을 쓰고 투고하기를 반복하는데, 그 노력이 루스에게는 허상을 쫓는 일로 보여 내적 갈등을 겪는다. 이 구간이 꽤나 긴데, 오히려 마틴이 사랑했던 건 루스보다도 글을 쓰는 행위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다. 문인의 꿈이 아득히 멀게 느껴져도 그저 쓸 수 있음에 설레했고, 문학이 주는 아름다움에 황홀해했으니. 그건 마치 등가교환의 법칙과도 같아서, 투고한 곳마다 빠꾸먹어도 절대 시드는 법이 없었더랬다. 그러다 마침내 수락된 단편소설의 터무니없이 낮은 계약금을 듣고서 이 바닥에 오만정이 떨어진 마틴은 노동 계급의 패배를 인정하고야 만다.
그녀에게 걸맞는 지성과 교양을 갖추고자 했던 그의 독학들이 잠들어있던 총명함을 일깨워 주었다. 어느새 마틴의 지적 수준은 우러러보던 상류층의 고위 인사들을 훌쩍 뛰어넘었고, 그들의 오만한 도덕성과 확증편향을 논리적으로 반박하기에 이른다. 또한 그들에게 실망과 염증을 느끼며, 겨우 그 정도 수준으로 상하 계급을 나눴다는 것 또한 납득할 수 없었다. 어떻게 평생을 이론만 공부해온 사람이, 인생을 실전으로 배운 사람보다 우월할 수가 있단 말인가. 이처럼 세상을 알면 알수록 모순과 허점 투성이라, 방향을 잃은 마틴이 독서와 글쓰기의 세계로 빠져드는 건 당연했다. 그럼에도 날로 머리가 커가는 마틴은 상류층과의 지적 대화에 굶주려 했다. 그는 루스 가문을 통해서 만난 인사들과의 대화마다 강한 인상을 남겼는데, 이것은 그가 잃을 것도 없는 처지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일개 노동자에 불과한 이 청년의 무례하기 짝이 없는 발언 앞에 상류층이 꼼짝하지 못한 건, 그의 총명함보다도 여태 못 본체했던 자신들의 약점을 간파당한 탓이었다. 바로 이런 장면들에서 저자의 센스가 돋보이는 법인데, <돈키호테>에서도 노망난 영감님의 팩트폭행에 긁힌 사람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지 않았던가. 하여간 블랙 유머를 잘 다루는 이들의 섹시함은 알아줘야 한다.
루스는 야만인에서 뇌섹남이 되어가는 애인의 변화를 인정하면서도 막 환영하지는 못했다. 마틴이 사회의 기존 체계나 부조리들을 비판함은 그렇다 쳐도 어느 정도는 현실과 타협할 줄도 알아야 같이 살던가 할 텐데, 시대를 앞서간 그의 이상주의가 오히려 그를 사회 부적응자로 바꿔놓고 있었다. 작가로 성공하리라는 그의 꿈과 포부를 대체 언제까지 믿고 응원해야 한단 말인가. 차라리 예전처럼 선원 생활하던 야만인이었을 때가 더 현실적이고 건강한 삶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사실 이런 딜레마는 재능과 신뢰를 떠나서 으레 생기는 법인데, 그것을 사랑에 금이 간 신호탄으로 본다는 게 문제이다. 또 그런 관계가 오래 지속되면 잘못은 전부 상대 탓으로 돌리고 자신은 피해자로 생각하기가 쉽거든. 아니면 자격지심으로 자기 연민에 빠진다거나. 여하튼 두 사람의 사랑이 삐걱댈 거라는 건 처음부터 정해진 일이었고, 어느덧 ‘다름‘의 매력도 서서히 꺼져가고 있었다. 연애의 고수들은 이 불씨를 잘 살려서 다시 지지고 볶고 할 테지만 마틴과 루스는 생초짜 풋내기라서 말이제.
더 나아가 마틴은 노예제도와 사회주의를 비판하는 연설에까지 나서게 된다. 그는 책 속에만 갇혀있었던 지식과 사상을 현실에 부딪혀봄으로써 제 확신을 굳히려 했다. 그러나 그의 광적인 열정과 탐닉은 끝내 사회주의를 부추긴다는 누명을 쓰고서 세상과의 외로운 투쟁을 하게 된다. 그 얄팍한 소동에 루스의 마음이 돌아섰음은 뭐 말할 것도 없고. 점점 마틴의 작품 가치를 알아본 출판사들의 러브콜이 쇄도하고, 쌓여있던 글들을 전부 처분할 만큼 주목받는 벼락 스타가 된 주인공. 허나 사랑이 떠나간 지금 와서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랴. 어째서 사랑이란 놈은 소설 속이나 소설 밖이나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건지 원. 숱하게 거절당했던 그의 작품들이 대인기를 끌었지만, 환희의 샘이 말라버린 마틴은 절필을 다짐하고야 만다. 루스에게서 어떠한 반응도 얻지 못했던 그의 글들이 오늘날 대중들에게 제대로 먹혀들고 있는데, 과연 그녀는 이 상황을 어떻게 볼 것이며 주변에 휘둘렸던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다시 심리학으로 말하자면, 인간은 나 자신과 맺는 관계의 수준으로 타인과도 관계를 맺는다고 한다. 마틴에 대한 루스의 사랑은 거짓이 아니었겠지만, 사회적 평판과 인정으로 본인의 가치를 매겼던 그녀였기에 감정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이 또한 앞서 얘기한 딜레마라서 이상할 것도 없으나, 우물 밖의 광활함을 보고도 느낀 바가 없다면 어떤 완벽한 신사를 만난다해도 갈증에 시달렸을 테다. 하여 다시 마틴을 찾아와 용서를 구해보지만 그녀의 본심에는 여전히 부르주아식 사고가 다분했고, 그제야 마틴은 제 사랑이 동경의 감정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녀의 절절한 외침들이 진실이든 아니든, 전혀 인정 못 받았던 시절이나 스타 작가가 된 지금이나 똑같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봐주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뜨기도 전에 썼던 자신의 글들이 한때 씹고 뜯기고 난도질당했던 것처럼, 열렬했던 그의 사랑도 마구 할퀴고 짓밟혔음을 떠올리자니 눈앞의 고백들도 기가 차는 것이다. 마음 같아선 싹 다 진실의 방으로 집어넣고 싶은데 말야.
영혼이 죽어버린 마틴을 보고 있으면 꼭 허망과 염세주의에 빠져살던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사랑과 우정 모두에게 배신당하고, 가난으로 삶의 여러 기회들을 놓치고서 마지못해 살아가던 나의 청춘들이. 나는 그나마 뒤늦게 독서와 글쓰기로 구원을 받았는데, 마틴 같은 사람은 이제 무엇으로 삶과 아름다움의 빈자리를 채워야 할까. 내가 살아보니 시간이 약이란 말이 맞긴 한데, 이른 나이에 성공해버린 경우는 또 달라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여튼 감명 깊게 읽었다 보니 글이 무지막지하게 길어졌는데 그만큼 강추 강추 강강추이다. 올해의 책으로 선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