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
앨마 카츠 지음, 이은선 옮김 / 현대문학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남들은 다 좋다고 난리인데 나만 또 안 맞는 작가를 발견했다. 역사와 초자연적 현상을 결합한 환상소설가라는 앨마 카츠. 내놓은 작품마다 문학상 후보작에 오르내렸다던 꽤나 잘나가는 미국 작가이다. 아직 수상 타이틀은 없는가 본데 어째선지 그 이유를 알 것도 같고. 다른 작품도 읽어봐야 판단이 설 텐데 아직 국내에는 요 한 권뿐이다. <심연>은 그 유명한 타이태닉호의 침몰사건을 가져와 유령 소재를 접목해낸 고딕 느낌 나는 호러소설이다. 늘 그렇듯이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하다 보니 그렇게 막 참신하지는 않았다. 바로 앞전의 리뷰에서도 말한 바 나는 오컬티즘에 매력을 잘 못 느껴서 더 그럴 것이다. 아니면 이 오컬티즘을 잘 뽑아내는 맛집을 아직 못 가봐서 그런 걸지도 모르제.


타이태닉호가 침몰한 1912년과, 자매선인 브리태닉호의 첫 출항인 1916년의 두 시점이 교차된다. 1912년은 타이태닉호 승무원인 주인공 애니가 승객들을 담당하는 내용과, 승객들의 잡다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배에서 음산한 기운을 느낀 승객들은 교령회를 열어 유령과의 접촉을 시도하고, 클라이맥스에 주인공이 문 열고 들어와 파투 나지만 혹자는 애니의 정체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한편 애니는 한 유부남에게 눈이 멀어 자꾸만 접촉을 시도하고, 그의 아기를 제 자식인 양 여기며 집착해댄다. 애니의 이해 안 가는 행동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는데, 문득 이 책을 논리적으로 접근하려 했던 내가 바보였다는 생각에 깡생수를 들이켰다.


1916년은 타이태닉호에서 생존한 동기의 권유로 다시 복귀한 애니의 시점을 다룬다. 여객선의 타이태닉호와 똑닮은 병원선으로 만들어진 브리태닉호, 그리고 군 간호사가 된 주인공. 전쟁 중상자를 치료하는 바쁜 일상들로 트라우마를 회복 중인 가운데 4년전 그 유부남이 환자로 입원하게 된다. 드디어 일할 맛이 좀 나는가 했더니, 그가 애니를 보고서 기겁을 해대는 게 아닌가. 자신과 같은 마음일 줄 알았던 왕자님의 예상 못 한 배신으로 멘탈이 나가있던 중, 그가 흘린 첫 아내의 일기장을 통해 애니가 아주 대단한 착각 속에 살았던 것과, 타이태닉호에서 다들 쉬쉬했던 유령의 정체를 깨닫는다. 와 정말 놀랍지가 않다.


이런 유령 테마에서는 뭔가에 홀려서 혼비백산하는 패턴이 계속 나와주어야 한다. 헌데 <심연>은 주인공의 허둥대는 이유가 유령이 아닌 이성한테 푹 빠져서라는 게 아주 그냥 웃음벨이다. 애니의 어린 시절과 성장 배경 등등 서사에 제법 힘을 주셨던데, 캐릭터의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게다가 주인공 외에 여러 인물들의 자잘 자잘한 이야기들이 여객선의 침몰과 함께 소리 없이 흩어져 버린다. 그러니까 죄다 불필요한 얘기로 끝나버렸는데 이 맥거핀에 불과한 서사들을 뭐 하러 집어넣었을까 싶었다. 물론 작품의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였기도 하지만, 용두사미로 끝나버린 나머지 역시나 실화 바탕은 별 수 없나 싶더랬다. 그런 것치곤 타이타닉 영화는 명작이었으니 거참 아리송하네. 암튼 많이들 재밌다고 하니까 저 때문에 거르지는 마시라요.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24-08-02 21: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런 걸지도 모르제~ ㅎㅎㅎ
이거 왠지 저는 재밌게 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물감님과 제가 취향이 약간은 다르니 말입니다.ㅋ
근데 결정적인 건 저도 고딕이나 오컬티즘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래도 여름인데 이런 소설 한 권쯤 읽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텐데 말입니다.
재미없는 책 끝까지 읽은 것도 고역인데.
지금 물감님 모습이 딱 서재 이미지 같으려나요?
전 아무리 봐도 저 서재 이지미 넘 웃겨요.ㅋㅋㅋ
암튼 이 더운 날 책 읽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메다.
다음 번엔 재밌는 책 읽으시라요.^^

물감 2024-08-03 10:21   좋아요 1 | URL
별3개일때가 리뷰쓰기 가장 곤란해요 ㅎㅎㅎ 막 이렇다할 인상이 안 남아서ㅋㅋ
저야 뭐 별종이니까 그렇지, 스텔라 님은 재밌을 겁니다요. 시간은 잘 가던 작품이라 여름에 읽으면 좋겠어요 ㅎㅎ

보통 프사같은 소파에 앉아서 읽는데요, 저랑 비슷해서 저 프사를 해놓은 것도 있습니다😁 다음엔 재밌는거 읽어볼게요. 즐독하시길요ㅋ

페크pek0501 2024-08-03 14: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랑이라는 감정과 논리는 양립할 수 없지요. 저는 착각했던 애니의 모습이 그려지면서 오히려 이 책에 흥미를 느낍니다. 인간은 얼마나 착각의 왕인지 잘 아니까 말이죠. 인간이란 심지어 진실을 말해 주어도 믿지 않고 자기가 믿고 싶은 것을 믿으려고 하거든요. 저 또한 그럴 때가 있겠지요...인간의 심리를 알게 되는 책은 관심이 갑니다.^^

물감 2024-08-04 09:50   좋아요 1 | URL
페크님같은 반응이 아마 대부분일 거에요. 제가 마이너한 취향이라 ㅋㅋ
읽어보셔야 알겠지만 좀 억지스러운 구간이 꽤 있었거든요. 믿고 싶은 걸 믿고, 착각하는 것에 태클 걸기 보다 그렇게 된 계기나 과정에서 부자연스러웠던 것 같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