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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베스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155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권오숙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2월
평점 :
일명 책쟁이들이 얘기하길, 독서하다 보면 다음에 어떤 책을 읽을지가 알아서 정해진다고 한다. 그러니까 책이 책을 부른다는 말인가 본데 어째서 나는 그런 경험을 못해봤을까나. 내가 소설만 읽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나름 오랫동안 독서를 해왔지만 나는 딱히 선정 도서의 기준이란 게 없는듯하다. 좋아하는 작가라 해도 연속으로 읽지는 못한다. 이렇듯 계획적인 독서가 못되다 보니 책을 사서 모셔만 두는 꼴인데, 나 같은 사람은 그냥 빌려 읽는 쪽이 더 나은듯하다. 쿠폰이나 적립금으로만 책을 사고 있어서, 내 돈 주고 책을 산지는 꽤 오래됐다.
요즘 바쁘기도 하고, 기존의 책들을 처분도 할 겸 해서 짧은 책들 위주로 읽고 있다. 마침 셰익스피어가 눈에 딱 들어와서 후딱 읽어주었다. 희곡에 별 관심은 없지만 그래도 ‘4대 비극‘은 읽어볼 생각인데, <맥베스>는 그 타이틀이 민망하다 할 정도로 임팩트가 없었다. 분량도 적고 전개 속도가 빨라서 무난하게 읽혔다만 인상적인 장면이 아예 없던데. 흠.
마녀에게 장차 왕이 될 거란 말을 들은 맥베스 장군. 그와 부인은 스코틀랜드 왕을 죽인 뒤 왕위에 오른다. 이후 도망쳤던 왕자가 데려온 세력들과 싸우다 목숨을 잃는다는 내용이다. 근데 <햄릿>을 재탕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나. 주인공 시점이 왕자에서 왕으로 옮겨갔을 뿐, 거기서 거기 같은 느낌이라 크게 볼 것도 없었다. 예상한 대로 맥베스는 왕이 되고부터 갖가지 고뇌에 빠진다. 원래가 야망 있는 성격이 못되었던 그는 잠깐의 욕심이 부른 결과에 심히 자책한다. 그러다가 화끈한 군주로 각성하는데, 이 과정들이 너무도 빠르다는 게 문제였다. 인물에 몰입할 시간을 주지 않다 보니 불안에 떨다 그냥 미치광이가 되었을 뿐, 여기에는 어떤 페이소스도 느껴지지 않는다. 글쎄, 내가 너무 냉혈한인가?
주인공이 맞나 싶을 만큼 존재감이 약한 맥베스. 불안 증세가 커져갈수록 인간적인 모습은 줄어들고, 끝내는 죽었어도 아무런 감흥이 생기지가 않았다. 오히려 지주였던 부인이 갑자기 하직했던 게 더 기억에 남을 정도. 뭔가 이 작품은 주인공을 죽어마땅한 인물로 설정해둔 느낌이다. 또한 배역들마다 애정이 없어 보였고, 그 때문인지 각자의 서사에 영 흥미가 안 갔다. ‘아름다운 것은 추한 것이고, 추한 것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모순된 인간의 본질도 썩 와닿지 않았고. 더 할 말은 많으나 시간상 이쯤에서 끝내야겠다. 갈 길은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