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남자
아니 에르노 지음, 윤석헌 옮김 / 레모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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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좋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기분이 이런 걸까. 이 짤막한 이야기가 지닌 아련함에 나는 몇 번이고 감전돼버렸다. 그동안 알듯 말듯 했던 에르노의 글과는 호흡이 어려웠는데, <젊은 남자>에서는 저자가 ‘평평한‘ 글쓰기를 해준 덕분에 좀 더 객관적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문장보다 서사가 중요한 나로서는 사실 에르노와 궁합이 좋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문장‘만으로 구성된 이 서사의 치명적인 매력에 그만 나는 항복하고 말았다.


서른 살 연하남과의 연애라니. 에르노도 상당한 팜 파탈이었나 보다. 한국인의 정서상 나이차가 많은 연인에 대한 시선이 절대 곱지 못한 데, 프랑스라서 그런가 거부감은 들지 않는다. 이 작품은 연하와의 연애 속에서 느낀 ‘나‘의 감정과 생각들을 풀어놓는 수필 형식을 띄고 있다. 순간순간에 대한 고백들이 서사와 주제를 동시에 가져가는 기교도 좋았지만, 나와 1도 관련 없는 내용을 마치 내 얘기처럼 들려주는 게 참 좋았다. 그래서 읽는 내내 멜랑꼴리한 기분이 들었더랬다.


A는 청춘의 소란 속에 ‘나‘를 데려다 놓았고, 잃어버렸던 젊음의 감각까지 되돌려 주었다. 그러나 황홀과는 별개로 A와의 시간들은 젊은 시절의 자신을 연기하는 것일 뿐이었다. ‘나‘와 다른 그의 습관들을 볼 때마다 무심했던 세대 차이를 체감했고, 하나였던 젊음이 둘로 분리되는 아픔을 느껴야 했다. 타인들의 시선보다도 본인의 잣대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나‘는, 자신의 기억 전달자인 A에게 삶의 안내자가 되어줄 것을 다짐한다. 쾌락과 고독이 공존하는, 시한부 사랑의 비즈니스 관계라니.


음악도 영화도 음식도 여행도, 처음 공유했던 추억 속에 박제된 것에 불과하다. 지난 경험을 새로운 사람과 수차례 나눈다 해도 고유의 추억은 변하거나 지워지지 않는다. 주인공은 깊은 사랑의 형벌을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슬퍼지려 하기 전에 그를 떠나보냈다. 받은 만큼 줄 수 있는 사랑이 아니라면 몇 번을 사랑해 본들 같은 연극의 반복이란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내가 나 자신으로 있지 못하고 기억 전달자 또는 안내자 역할에 그친다면 그건 너무 슬프지 않을까. 나의 존재가 슬픔이 아닌 기쁨의 이유에 속했으면 싶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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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8-15 2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 물감님이 이 소설을 좋아하시다니, 의외네요!!

물감 2023-08-15 22:02   좋아요 1 | URL
저도 제 의외성에 놀랐어요ㅋㅋㅋㅋ

잠자냥 2023-08-16 09:46   좋아요 2 | URL
그것은 물감님이 젊은 남자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물감 2023-08-16 09:54   좋아요 1 | URL
젊은 남자인 저는 왜 쉰 네살의 주인공 입장에서 공감하고 있는지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