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역사
니콜 크라우스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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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말을 했었다. 어떤 제목이라도 외국인이 쓴 거면 촌스럽지가 않다고. <사랑의 역사>라는 다소 밋밋한 이 제목을 국내 작가가 썼다면 금방 묻혔을 거란 생각이 든다. 사랑이 역사로 존재하려면 아무래도 깨소금 볶는 쪽보다는 운명의 장난 혹은 시련 쪽이어야 할 테지. 그걸 역사라 부를 수 있다면, ‘사랑의 역사‘를 가지지 않은 이가 아무도 없다는 뜻이렸다. 저마다의 역사처럼 나도 나만의 것을 끄집어내어 저자가 얘기하려는 사랑에 다가가고자 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는 접근이 불가할뿐더러, 어떻게 해봐도 내 아픔들과 좁혀지지 않을 성질의 작품이었다.


크게는 세 가지 시점이 교차하며 진행된다.

① 나치의 침공으로 소녀와 헤어진 유대인 소년. 미국으로 떠난 소녀는 그의 아이를 낳았으나 연락 두절로 결국 딴 사람과 결혼한다. 절망의 세월을 지나 독거노인이 된 그에게 날아든 익명의 소포. 내용물은 과거 자신이 소녀를 생각하며 썼었던 ‘사랑의 역사‘ 원고였다.


② 독일군에게 소년이 죽은 줄 알았던 친구. 소년에게 건네받은 ‘사랑의 역사‘ 원고를 스페인어로 번역해 자신의 이름으로 출간해버린다. 그러나 양심에 찔린 그는 원작자를 책 말미에 언급한다.

③ ‘사랑의 역사‘의 주인공 이름을 물려받은 앨마. 어느 날 ‘사랑의 역사‘의 번역본을 요청받은 엄마에게 묘한 냄새를 맡은 앨마는, 작품과 요청자 그리고 앨마라는 이름의 관계를 추리한다.


읽어보면 썩 친절한 작품은 아니구나 할 것이다. 액자소설이니 꼭 메모하면서 읽으시길. 근데 다 읽고 보니 어지러웠던 플롯은 보기보다 간결했다. 뒤죽박죽의 챕터들도 하나의 그림을 향해가고 있었다. 추리소설과 순문학의 결합이라. 2005년도 작품이던데, 시대를 얼마나 앞서간 것인지. 이 영리한 작가의 책들을 좀 더 읽어봐야겠다.


굵직한 스토리라인이 온통 인물들의 감정선에 가려져있다. 소중한 사람의 부재로 인한 상실감이 공통점인데, 그것이 각자를 삶의 어딘가에서 밀어내고만 있다. 먼저 노인이 된 레오의 아픔을 느껴보자면, 앞서 말했듯 연인과의 이별 아닌 이별을 겪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을 그리움과 탄식 속에 갇혀지낸다. 어떻게든 정리하고 새 출발 하기엔 자신의 아들이 눈에 밟혔더랬다. 비록 레오의 존재조차도 모를 테지만 혈육에 대한 사랑은 흘러간 세월만큼 커져 있었다. 어느 날 아들의 사망 소식을 듣고 찾아간 장례식장에서 타들어가는 마음을 달래던 중, 소년 시절의 자신과 찍은 소녀의 사진을 발견한다. 아들의 이부동생 말로는 돌아가신 엄마의 유품이라 했다. 그녀도 나를 잊지 않고 있었구나. 애써 외면했었던 평생의 사랑을, 다 떠나간 뒤에야 겨우 불러볼 수 있다니. 아름다운 세상과 잔인한 세상은 종이 한 장 차이였던가.


소녀 앨마의 아픔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아빠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 모든 게 변했다. 늘 태연한 척하는 엄마와, 갈수록 사차원이 돼가는 동생. 그리고 뭘 해야 할지 막연한 나. 아빠를 대신해 자신이 가족을 지키기로 한다. 앨마의 관심사는 야생에서도 살 수 있는 생존비법 연구로 이어진다. 그러다 ‘사랑의 역사‘ 번역 요청자를 엄마의 재혼상대로 점찍고 다리를 놔주려다가, 그 책의 주인공이 실제 인물이라는 가설에 이르자 직접 찾아 나서기로 한다. 이 과정들은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과 자신의 뿌리를 확인하고픈 무의식의 집념이었다. ‘앨마‘란 이름이 진정 사랑의 대상이었는지, 부모님은 무슨 생각에서 그 이름을 나에게 준 건지, 정녕 나는 그 이름을 물려받기에 적합한 사람인지를 알아야 했다. 그래야 손상된 심장이 다시 제 기능을 할 테니까. 마침내 사랑의 근원과 마주한 앨마는 모든 역사를 눈으로 확인한다. 이제는 제자리로 돌아갈 일만 남았다. 그녀의 오랜 갈증은 과연 해소되었을까.


혐오범벅 헬조선의 마지막 낭만파인 나님과 딱 맞는 감성의 작품이었다. 드라마는 안 보면서 드라마틱한 사랑은 또 좋아하는 나님의 90년대 취향과도 꽤나 일치했다. <사랑의 역사>는 상실에도 전염성이, 아련함에도 유전성이 있다고 느끼게 해준다. 이런 복합적인 감성 표현이 가능한 건, 니콜 크라우스 자신이 유대인이기 때문이리라. 작가는 레오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설명하고, 앨마를 통해서 유대인의 심정을 그려낸다. 그리고 두 인물의 결합이 만들어낸 에너지를 독자에게 전파한다. 레오처럼 간직하는 사랑도. 앨마처럼 찾아 나서는 사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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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04-12 15: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저도 완전 애장하는 책입니다. 표지만 좀 평범(?)했더라면 좋았을텐데 ㅜㅜ
저도 물감님 의견에 공감하는게 만약 이 제목을 가지고 한국작가가 썼더라면 저는 왠지 안읽었을거 같습니다 ㅋ

물감 2023-04-12 16:19   좋아요 1 | URL
문학동네가 전반적으로 디자인이 좀 약해요(고전은 제외). 그래도 좋은 작품 많이 내줘서 넘어가줍니다 ㅎㅎㅎ 새파랑 님도 제목에 대한 선입견이 있으시군요! 저만 그런 게 아니었어요! 저라도 안읽었을 텐데, 이런 식으로 놓쳐버린 좋은 국내작품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도 듭니다 ^^

공쟝쟝 2023-04-12 17: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나 이작가가 쓴 다른 책 빌려놨는데!! 보고 잼쓰면 읽는데 참고할게요!

물감 2023-04-12 18:07   좋아요 1 | URL
전에 얘기했었던 바로 그 잔잔바리 감성이에요 ㅋㅋㅋ 개취지만 강추!
지금은 <위대한 집> 읽는 중! 그리고 <어두운 숲>도 연달아 읽을 예정!
참고하라고 얼른 읽고 리뷰 쓸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