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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
이동호 지음 / 창비 / 2021년 6월
평점 :
국내에 채식 열풍이 분지가 꽤 되었다. 언제부턴가 유명인들이 온/오프라인에서 ‘비건‘을 외쳤고, 그들은 생명과 환경보호의 선구자로 주목을 받았다. 한편 나 같은 고기 러버들은 저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가 되었고, 그런 불편한 프레임에 대한 반항으로 더욱 열심히 고기를 씹고 뜯었으며 채식 권장을 외면해왔다. 사실 육식 자체가 잘못이 아니라 고기를 사 먹기 전까지의 과정이 문제이며 그 과정을 바꾸고 개선하려면 소비자들이 이렇게라도 나서야만 한다는 것인데, 이 채식 권장이 초반에 마케팅을 워낙 이상하게 해놔가지고 지금까지도 육식과 채식 간에 냉랭한 기운이 흐르고 있다. 아무튼 사회적 시선에 따라 환경 파괴범이 된 나님이 이 책을 고른 건 세계 환경보호에 갑자기 관심이 생겼다기보다 순전히 제목에 끌려서이다. 이래서 마케팅이 중요하다.
도시생활을 접고 귀촌 한 저자의 축산 에세이집이라 할까. 육식파였다가 채식파로 개종한 저자는 가축을 직접 키워봄으로써 축산업이 낳는 여러 가지 이슈들을 마주해 독자에게 전한다. 관심을 안 두면 전혀 몰랐을 내용들을 알려주어 유익하긴 하나 챕터마다 분량이 적어서 빈약하다는 게 흠이다. 물론 이런 문제에 관심조차 없는 이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겠지만, 축산에 뛰어든 저자의 굳은 자세에 비하면 여러모로 가벼워서 아쉬웠다. 아무래도 귀촌 생활 일지처럼 썼다 보니 이래도 되는걸까,하는 노파심의 글이 많았다. 후반부에서는 꽤 진지한 이야기도 하던데, 이게 에세이인지 칼럼인지 기사인지 성격이 모호하다. 편집자가 전혀 개입을 안 한 건가.
저자는 돼지를 키웠지만 책에서는 다른 가축들에 대해서도 다룬다. 여러 종의 가축이 왜 어우러져야 하는지도 알게 해주었다. 한 가지 종만 많아지면 생기는 자연 파괴와 질병들이 고스란히 인간에게 피해를 입힌다. 그런 문제를 차단하고 예방하기 위해 약도 뿌리고 위생관리를 하지만, 가축 A의 문제를 가축 B가, 또 가축 C가 해결해주므로 꼭 인공적인 해결방안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현실은 농장 축산이 수요와 공급을 맞추지 못해 공장 축산으로 가고 있다. 열악한 사육 환경, 단기간에 성장시키는 촉진제, 죽어라 출산하는 가축 어미들. 그래도 생명체인데 이렇게밖에 못 키울까 싶지만 농촌인구는 감소하는데 가축과 소비자는 증가하니 어쩌면 좋으랴. 또한 도시가 커질수록 농촌에 각종 혐오시설이 세워져 젊은 사람들은 농촌을 떠나고 노인들만 남는 현상도 심각하다. 이렇듯 지금의 축산업은 여러 가지 문제들이 맞물려있었고, 나는 이런 속 사정들을 철저히 외면하며 살았구나 싶어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저자가 돼지를 직접 키우게 된 이유인즉슨, 가축의 생명을 존중하며 기른다면 감사의 마음으로 고기를 먹어도 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먹고 먹히는 자연의 순환과정을 체득하고자 했으나, 잡아먹기 위해서 생명을 기른다는 것이 윤리적 차원에서 엄청난 장벽으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저자는 초심을 유지하려 직접 도축을 하고 고기를 삼킨다. 그리고 나서 채식을 선언한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농촌 사람들은 대부분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솔직히 환경문제 같은 거창한 이유보다도 수많은 사체를 보고서 육식할 마음이 싹 사라지지 않았나 싶다. 여하튼 이 책으로 채식주의에 대한 시각이 크게 바뀌었다. 그리고 하루빨리 국내의 축산업 환경이 더 좋아지길 바란다. 내가 건강한 고기를 오래오래 먹을 수 있게.
* 저자 인터뷰 : http://www.laborpl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74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