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동 타이거스 - 2013년 제1회 한국경제 청년신춘문예 당선작
최지운 지음 / 민음사 / 201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간혹 아무 이유 없이 끌리는 책들이 있다. 내 경우는 제목이 독특할 때 손이 가는 편인데 그런 책들은 높은 확률로 재미가 있다. 반대로 죽어도 손이 가지 않는 책들도 있다. 나의 코드와 감성에 맞지 않으면 베스트셀러든 스테디셀러든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나마 믿을 만한 게 공모전 수상작이나 대회 당선작이다. 상까지 받았으면 일단 검증은 된 거니까 느낌이 오지 않아도 읽어는 본다. 근데 간혹 어떻게 수상했지 싶을 만큼 의심되는 작품들도 있는데 이럴 때면 굉장히 당혹스럽다. 당선이 될만한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어서 당시 심사자들의 수준을 의심하게 되고, 인재가 그 정도로 없었나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여하튼 끌리지 않았던 건 다 이유가 있었으며 다시는 내 촉을 무시하지 말자는 값진 교훈을 얻었다. 


이 작품은 서울 옥수동 주변에 다섯 학교 일진들 이야기이다. 그들은 이 구역의 미친개가 누군지를 가리기 위해 날마다 싸운다. 여기서 랭크 1위의 용공고는 전국의 문제아 집합소였고, 정부는 용공고의 폐교와 옥수동의 재개발 계획을 발표한다. 전설의 용공고 일진이 해체 위기라는 소식에 주변 학교 미친개들은 이상한 전우애를 느끼고서 애도한다. 이후 랭크 2위가 마지막 싸움을 걸어와 그들만의 작별 인사를 고한다.


아마추어 웹 소설도 이보단 낫겠다. 화자가 과거 일진들의 활약을 회상하며 기록했는데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대사와 문장을 순화했다. 게다가 일진들의 폭력성은 조폭이나 갱단 못지않은데 이상하게 학생다운 순진함을 갖고 있어 괴리감이 느껴진다. 여튼 화자의 말에 따르면 당시 일진들은 마냥 인간쓰레기가 아니라 지들 나름의 신념을 갖고 행동해서 타 학생들에게 추앙받을만한 존재였단다. 누가 자기네 학생들을 건들면 가차 없이 응징했으니 그야말로 지구방위대 후레쉬맨이나 다름없었다. 여하튼 전반적인 내용은 이렇고, 내가 불만이었던 건 작품의 구성 방식이다. 일진 한 명 한 명을 챕터마다 소개하는데 무슨 게임 캐릭터 가이드북을 보는 기분이었다. A의 성장 배경, 싸움의 승패 및 활약, 인물의 특징 같은 이런 내용들을 내가 왜 읽고 있나 싶었다. 그리고 항상 ‘이날에 있었던 싸움은 XXX 전투로 불리며 XXX은 전설이 되었다‘라는 식으로 끝나는데, 아니 무슨 그리스 로마 신화 쓰신 줄 알겠더라. 차라리 진득하게 어느 일진들의 방황기를 라이브로 들려줬다면 좋았을 듯.


물론 일진들의 이야기 뒤에는 우리 사회의 씁쓸한 민낯이 숨어있다. 옥수동 주변 일대는 더 나은 지역을 만들자는 명분으로 용공고 폐교와 옥수동의 뉴타운 계획을 밀어붙였다. 지역민들의 마음도 이해는 되는 게, 문제아들이 험악한 동네로 만들고, 옥수동 주민들이 지역의 수준과 가치를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인간 대접도 못 받는 옥수동 사람들이 용공고를 옹호해준 것은 이들의 주먹만이 옥수동의 자존심을 지켜줘서였다. 언제나 패자였던 옥수동이 승자로 바뀌는 유일한 상황은, 용공고 일진들이 타 학교들을 때려눕혔을 때다. 이렇게 용공고는 옥수동을 단합시켰고 자신들의 방식대로 학교와 지역을 지켜내려 한다. 정녕 대항수단이 주먹질밖에 없다는 것도 난센스지만 일진이 정의롭고 개념 있다는 것부터가 설정 미스여서 몰입이 깨진다. 일진을 환상의 동물처럼 묘사한 걸로 봐서 이 책은 현실 반영이 필요 없는 판타지 소설이 분명하다.


정작 중요한 옥수동 이야기는 일진들 전투씬에 가려져 평범한 액션 소설이 돼버렸다. 소재들은 따로 노는 데다 소재 간에 비율도 조화도 균형도 영 맞지 않는다. 대부분의 실패작들이 옵션에 문제가 있었지, 이처럼 기본 사양을 문제 삼지는 않았던 터라 아주 신선하게 당황스럽다. 보면 볼수록 심사자들의 뇌구조가 궁금해지는 작품이다. 그건 그거고 일진을 대놓고 미화하는 것이 내내 신경을 계속 긁어댔다. 초식하는 사자가 없고 육식하는 소가 없듯이 멀쩡한 일진은 있을 수가 없다. 그들은 자신의 작은 행동과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공포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일방적인 폭력은 어떤 식으로도 정당화가 되지 않는단 말이다. 그래서 더더욱 저자의 속을 모르겠다. 언론은 매일같이 학교폭력을 보도하는데 어째서 저자는 한 번도 일진 구경 못 해본 사람처럼 글을 써서 작품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지. 나 이러다 제명에 못 살겄다. 이제는 느낌 없는 책에 절대 도전하지 않으리.


댓글(4) 먼댓글(0) 좋아요(4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붕붕툐툐 2021-05-10 22:3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ㅋㅋ별 두개... 맞아요~ 느낌 없는 책은 과감히 제낍시다. 점점 그게 맞다는 생각이 들어요!ㅎㅎ

물감 2021-05-10 22:40   좋아요 3 | URL
원하는 책만 읽기도 모자란 세월이니깐요ㅎㅎ

새파랑 2021-05-11 09: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일단 제목부터 영 끌리지 않는데 리뷰가 확실하네요 ㅋ 물감님 리뷰가 더 재미있는거 같아요^^

물감 2021-05-11 10:02   좋아요 2 | URL
간만에 성격나오게 만드는 책이었습디다... ㅋㅋㅋㅋ
리뷰쓰는동안 커피 두잔 마셨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