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5
이반 투르게네프 지음, 이항재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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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는 말,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공감한다면 나도 모르게 꼰대가 된 것이고, 공감하지 않는다면 당신도 ‘요즘 애들‘에 포함된 것이다. 둘 다 해당이 안 된다면 그건 중립이 아니라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거지. 재미있는 건 ‘요즘 애들‘도 열심히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을 보며 그토록 질색하던 꼰대가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결국 도긴개긴이다. 무려 수메르 고대 석판에서도 ‘요즘 애들‘이 나왔다고 하니 이만하면 꽤나 핫이슈 아니런가. 헌데 오늘날의 세대 갈등은 윗물과 아랫물의 간격이 그렇게 멀지도 않다. 심지어 초등부 고학년이 저학년에게 개념 없다며 혀를 차는 게 방송에 나오더만? 과연 세상은 요지경이다. 이런 재미난 구경거리를 다룬 고전 작품이 있었으니, 무려 제목부터가 ‘아버지와 아들‘이다. 사랑보다 멀고 우정보다는 가까운 이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보자.


군인에서 민간인으로 컴백한 A군과 그의 절친 B군. 이 영보이들은 세상만사를 부정하는 니힐리즘, 즉 허무주의로 전신을 무장하여 모두를 놀라게 하였다. 또한 올드보이의 관습과 사상을 전부 배격하였고, 그들과의 논쟁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이토록 견고하던 영보이들의 세계관은 한 여성을 만나고부터 서서히 침몰하기 시작하는데... 에라이.


BTS와 EXO를 두고 으르렁대는 21세기에 비하면, 이 책의 이념 대립은 엄청난 하이레벨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20대 초중반인 A와 B를 보면서 괜스레 자괴감마저 든다. 여하튼 니힐리즘만이 인류의 진보라고 주장하는 B군의 사상은 꽤나 파격적이다. 이에 동의하는 A군도 가세해서 윗세대를 싸그리 부정했다. 여기서 갈리는 독자의 반응을 반영한 인물이 A의 부친과 그의 형님이다. 부친은 회의감이 들면서도, 영보이들이 현실에 더 가까워 보인다는 이유로 혼란스러웠다. 과거 자신도 모친과 세대 갈등을 겪었으며, 무조건 부모가 옳은 게 아님을 알기에 영보이들을 존중해주고자 했다. 반대로 형님은 지나친 귀족주의라서 시대가 변해도 고유의 것은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그래서 B군과의 언쟁도 여러 번 하는데, 솔직히 사사건건 태클 거는 무례한 사람에게 좋은 감정이 퍽이나 생기겠다. 그 때문에 나는 형님 쪽을 응원하면서 읽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꼰대인갑다.


1세대는 귀족 출신에 자유주의자였고, 2세대는 잡계급 출신에 민주주의자로 나온다. 그래서 아버지들은 이상주의적인 사상을 강조하고, 아들들은 혁명적 사상을 주장한다. 이것은 당시의 러시아 사회를 고스란히 반영한 것이다. 1840년대의 러시아는 철학과 예술이 삶의 전부였지만 1860년대에는 자연과학과 실용학문이 삶의 지표가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나뉜 세대 간의 문제를 기반으로 이 책이 만들어졌다. 그래서인지 양쪽의 입장과 분위기가 어떠했는지를 매우 정교하게 다루고 묘사했다. 오케바리, 이 정도면 내공은 인정. 그치만 잼이가 없떠...


이후 낭만주의를 경멸하는 영보이들의 마음을 뒤흔든 여자가 등장한다. 그러나 두 니힐리스트는 감정 표현도 못하고 애써 착한 생각만 하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연출된다. 어중간한 삼각관계 속에 조금씩 변색되는 우정. 그러다 A군은 그녀의 동생과 사랑에 빠지면서 마침내 니힐리즘으로부터 졸업을 한다. 반면 B군은 자신의 컨셉을 지키며 종용히 그녀를 떠나간다. 그리고 병에 걸려 끙끙 앓다가 허무주의자 다운 죽음을 맞이한다. 상냥한 작가는 B군이 죽기 직전, 그녀와 재회시켜 눈빛 교환 타임을 마련해준다. 하여간 있을 때 잘하지, 이제 와서 뭣들 하는 짓거린지. 그렇게 매사에 부정만 하더니, 그렇게 해서 이룬 것이 고작 죽음이냐 싶었다.


A군의 그녀가 이런 말을 한다. 스스로를 존중하며 순종하는 것, 이것이 곧 행복이라고. 이 말을 한 명 한 명에게 비추어 보니 신기하게도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촌구석에서 귀족주의를 고수하는 이도, 이 세상을 통째로 부정하는 이도, 타인에게 휘둘려사는 가련한 이도, 모두가 각자의 방식대로 스스로를 존중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겉보기엔 답답해 보일지언정 본인들은 그것이 곧 행복의 길임을 아는 것 같았다. 하지만 더불어 사는 인간 세상에서 저 혼자 잘 산다고 행복한 사회가 되는 건 아니지. 여하튼 요즘 애들이 버릇없다는 건 맞는 말이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그게 정상이다. 돌고 도는 계절처럼, 2세대들도 언젠가 1세대의 꼰대가 되어 ‘요즘 애들‘을 저격할 것이다. 그래서 이 악순환을 끊으려면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존중해주는 각자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행복한 나와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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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20-10-31 2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어른도 버릇이 없다는ㅋㅋ 윗물과 아랫물의 간격이 멀지도 않다는 말씀, 공감합니다. 중학교 3학년 아이들이 2학년보고 버릇없다고 하거든요.^^

A군은 군인에서 민간인이 아니라 학사 학위를 받고 페테르부르크에서 집으로 컴백한 것으로 보입니다만..^^

‘으르렁대는‘ㅋㅋㅋ 센스있는 표현이십니다. 저는 형님과 B 둘 다 마음에 안들었습니다. 형님의 겉치레와 B의 언행불일치가 계속 거슬리더라구요.

잼 없는 1인 추가요!ㅎㅎ

정말 허무주의자다운 죽음이었죠? 뜬금없이 너무하다 싶었습니다.

작가가 마지막 부분에 말한 ‘영원한 화해와 무궁한 생명‘이게 답인 것 같아요. 그래도 이야기의 흐름이나 문체나 여러가지 설정이 도통 마음에 들지 않는 소설이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산을 또 무사히 넘어왔네요~~^^*

물감 2020-10-31 23:50   좋아요 1 | URL
‘요즘 애들‘이 커서 ‘요즘 어른‘이 된게 아닐까요 ㅋㅋㅋㅋ 차라리 꼰대가 되는 편이 더 낫겠군요 ^^; 어린 친구들이야 몰라서 그렇다 치지만, 알만한 어른들이 그러는 건 용서가 안되네요 하하하...

A군이 민간인 된 것이 아니었군요? 대충 읽은게 들켰네요 ㅋㅋㅋㅋㅋㅋ

B군이나 형님이나 흑백처럼 극과 극이라 누가 더 낫다고 할 수 없긴한데, 워낙 B군이 재수가 없어서요 ㅋㅋㅋㅋ 철저히 중립의 입장으로 지켜보았지만, 버릇없는 걸 떠나서 근본없는 말들로 밀어붙이는 영보이들을 이해하기가 어려웠어요. 그저 객기를 부리는 거라면 그러려니 할텐데 그것도 아니고요 ㅋㅋㅋ

정말 재미없고 교훈 쪽에서도 확 와닿는건 없는데, 평점은 되게 높은 책이더라구요. 다른 리뷰들을 읽어보면 재밌고 좋았다는 말은 많은데, 뭐가 어떻게 좋았다는 설명은 거의 못봤다는...

이렇게 10월도 지나가네요. 저도 업무가 늘어나서 많이 힘든 한달이었네요 ^^;;
근데 책 마저 재미없으니 피로감이 어마어마 하더군요... 왜 그런거 있죠, 다이어트 한다고 빡시게 운동하던 중에, ‘내가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거요 ㅋㅋㅋㅋ독서고 리뷰고 뭐고 그냥 내려놓을까 했는데 그것도 쉽지 않네요. 독서모임이 저의 나태함을 잡아주는 것 같아요, 하하하핳. 10분뒤면 11월 이네요. 이번달도 수고 하셨어요, 11월에도 파이팅입니다 ㅋㅋㅋ

페크pek0501 2020-11-11 11: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물감 님.
당선작에 뽑히신 것 축하드려요. ㅋㅋ

물감 2020-11-11 12:02   좋아요 2 | URL
ㅎㅎㅎ감사합니다. 엄청 오랜만에 뽑혔네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