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아파트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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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극작가인 남주는 출판사에서 마련해준 파리의 임대 아파트로 온다. 그리고 경찰을 그만둔 여주도 똑같은 임대 아파트로 온다. 부동산 측의 전산 오류로 두 남녀는 같은 집에 계약된 것인데 서로 이 집을 전혀 양보할 맘이 없었던 것은 그 집이 유명 화가가 살던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화가는 몇 년 전 심장병으로 사망했고 현 집주인이자 절친이었던 친구가 아파트와 화랑을 관리하고 있었다. 집주인은 화가에게 관심 있어 하는 두 남녀에게 미스터리한 퀘스트를 던져준다. 화가가 세상을 떠나기 전 어딘가에 감춰둔 세 점의 미공개 그림을 찾아달라는 부탁이었다. 형사 본능이 발동한 여주는 귀찮아하는 남주를 자극하여 그림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미공개 그림들은 화가의 가족이 겪은 끔찍한 사건을 가리키고 있었다. 가족애가 발동한 남주는 이 일에 손 떼고 싶어 하는 여주를 자극하여 화가 집안의 미제 사건을 해결하려 한다. 


이것은 미스터리 추리물인가, 아님 스릴러물인가. 그림을 찾는다고 하니 당연히 추리물이라고 믿었다. 보상 하나 없는 퀘스트였지만 그래도 고대 유물을 찾는 듯한 인디아나 존스의 도시 버전 느낌도 나고 나름 좋았더랬다. 비록 그 과정은 독자가 전혀 추리할 틈도 주지 않았지만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계속 깔아주고 있었으니 오호라, 이번 작품은 분위기로 압도하는 작품인가 보다 하며 기대반 걱정반으로 읽어나갔다. 걱정 반은 무슨 연고였냐면 그림을 찾아낸 것이 총 분량의 딱 중간지점이었기 때문이었다. 이후로 미제 사건인 화가의 죽은 아들 찾기 내용으로 2부가 시작되는데 갑자기 스릴러물로 바꾸려는 건지 이상한 구간에서 자꾸 텐션을 올리고 스피디한 전개를 진행하는 게 보였다. 그러나 이 작품은 절대 속도감을 내어선 안되었다. 오히려 1부처럼 천천히 분위기로 압도했어야 했다. 그 이유는 화가도 이미 죽었고, 사망처리된 아들 사건도 이미 경찰과 대중의 관심에서 한참을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흐름상 급해야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아무도 안 뺏어 먹는데 괜히 작가 혼자서 엄청난 속도로 밥 먹는 느낌이었달까.


아무튼 1부 그림 찾기에서 2부 아들 찾기로 이어지는 것이 매끄럽지 않고 뜬금없었다. 그림 찾는 건 희열과 설렘이라도 있지 아들 찾는 건 글쎄, 그 정도로 흥분하고 집착할만한 일인지 도통 이해되지가 않았다. 두 사람 다 아들을 찾아낼 임무나 사명은 전혀 없었고, 본인들 외에 이 사건의 해결을 바라는 사람도 없었다. 그렇다고 주인공들이 불타는 정의감으로 행동한 것도 아니다. 게다가 어릴 적 가정불화를 겪은 남주가 갑자기 없었던 부성애가 생기면서 화가의 아들을 자기 자식처럼 여기는 것도 영 개연성이 떨어졌다. 이미 초반부터 남주는 세상과 인간을 혐오하는 캐릭터였는데 어쩜 그리 단기간에 딴 사람으로 될 수가 있답니까? 나의 솔직한 심정은 ‘찾아서 어쩌게?‘ 정도였다. 그저 솟구치는 아드레날린 때문에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인 것처럼 보일뿐, 수사에 별다른 의미나 동기는 없었다고 봐야 한다. 또한 두 남녀가 전혀 한가로운 것도 아니었다. 남주는 글 쓰려고 파리까지 날아왔고, 임신한 여주도 이것저것 할 게 많았다. 근데 본인들 사정은 전부 뒤로하고 왜 그렇게까지 수사에 열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런 의문점들을 보면 이 책의 장르는 미스터리가 맞긴 맞다.


엄청 복잡하게 꼬아논 것처럼 보이지만 유심히 보면 스트레이트한 플롯이라 딱히 차별성을 갖진 않는다. 그래서 스토리보다는 캐릭터들에게 더 힘이 실린 편이다. 각자 아픈 과거도 있고 화끈한 성격도 있어서 이 대조된 캐릭터라면 보여줄 케미가 무궁무진하겠다 싶었다. 만나자마자 싸우는 두 남녀의 해프닝 이야기를 기대했지만 얼마 안 가서 둘은 힘을 합치기 시작했고, 그러자마자 통통 튀던 작품은 급 평범해져 버렸다. 그러면 각자의 방식으로 사건을 풀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려나 했더니 그것도 아니었다. 인물 설정은 꽤 그럴싸했으나 크게 써먹질 못하고 있었다. 마치 피카츄가 전기 공격은 안 하고 죽어라 박치기만 하는 꼴이랄까. 그래 이건 그냥저냥 넘어가 주었다. 사건을 맡게 하려고 두 사람이 만난 과정 또한 억지스럽고 개연성 부족이라는 말에도 난 좋게 봐줄 수 있었다. 그런데 좋든 나쁘든 작가가 만든 많은 설정들은 큰 의미를 갖지 못했고 오로지 화가의 부성애만 조명하려고 한 것도 문제였다. 죽은 사람의 부성애를 아무리 강조해봤자 이미 힘을 잃었기에 이야기에 탄력이 붙질 못한다. 그런데 여기에 자꾸 스릴러를 접목시키려 들어서 크리티컬 낭패였지. 더 안타까운 건 화가가 아들을 죽을 만큼 사랑했다는 사실을 수차례 증명하시는데, 미안하게도 작가가 바랬던 만큼 부성애는 느껴지지 않았고 그런가 보다 하며 넘겼다. 그럼 이제 마무리를 어떻게 짓나 했더니 자기들끼리 가설을 세우다가 이거다! 결론 내고서 끝이 났다. 이 책도 전형적인 타이타닉 플롯이었음. 차라리 부성애가 아닌 두 남녀의 휴머니즘에다 포커스를 두었다면 훨씬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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秀映 2019-09-16 23: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욤의 책들 이제 더 이상 손이 가지 않아요 ㅜㅜ

물감 2019-09-17 06:54   좋아요 0 | URL
기욤의 책이 용두사미가 많은가요? 딱 두 권 읽었는데 느낌이 쎄하네요ㅎㅎ

coolcat329 2019-09-17 13: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처음 기욤책 <구해줘>에 반해서 그 후로 5권을 더 읽었으나...저 또한 읽고나면 허탈한게 더이상 손이 가질 않더군요.

물감 2019-09-17 16:08   좋아요 0 | URL
음 그럼 저도 구해줘만 읽고 손절해야겠군요.... 근데 이 작가는 왜 그렇게 유명한걸까요?

레삭매냐 2019-09-17 13: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기욤 안녕...

물감 2019-09-17 16:09   좋아요 0 | URL
아 레삭매냐님도 끊으셨군여...

coolcat329 2019-09-17 17: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해줘>실망하실 거에요. 너무 오래 전에 읽어 기억이 잘 안나지만 로맨스 스릴러 sf요소가 섞여 산만하면서도 역시나 뜬금없고 가독성이 엄청났기에 처음엔 좀 신선했다고 할까요? 당시 기욤이 좀 화제이기도 했고 쉽게 읽히니까 그냥 읽은건데,후회만 남더라구요 ㅎㅎ

물감 2019-09-17 17:06   좋아요 1 | URL
정보 감사합니다. 그럼 저도 기욤은 안녕입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