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자들 - 장강명 연작소설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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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게도 출판사에서 먼저 연락 주시어 갑작스럽게 리뷰를 쓴다. 이런 연락이나 제안은 언제라도 대환영이다. 모든 출판사의 마케터, 디렉터, 직원분들은 꼭 이 글을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잡설은 이쯤 해두고, 많은 독자들이 장강명 작가를 좋아하는데 나 역시 그렇다. 기자 출신이라 그런지 주로 사회의 이슈를 문학에 접목하여 고발하고 비판하는 작품이 많은데, 글과 문장들이 워낙 현실적이라 독자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만큼 작가가 세상을 꿰뚫어보는 시각이 매우 날카롭다. 개인적으로 단편집을 싫어하는데도 장강명 작가라서 서평 도서를 신청했다. 사실 단편소설은 호흡이 짧아서 리뷰쓰기도 어렵고, 모든 주제가 다 좋은 게 아니라서 점수 매기기도 어렵다. 다행히 이 책은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갑을병정의 공방전을 보여주는 내용들이라 쓸 말이 저절로 생각나더라. 이 시대에 을로 살아가는 자들이 겪는 고초를 다양하게 기록하셨던데, 나는 어디까지나 을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을의 입장으로 리뷰를 쓰고자 한다. ‘산 자들‘은 인생이라는 재앙과 전쟁 가운데서 살아남은 자들을 뜻한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승자가 되는 건 아니었다. 진흙탕에서 싸우면 이기든 지든 똑같이 더러워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가는 얼마든지 갑도 패자가 되고 을도 승자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먼저 1부는 ‘자르기‘로써 회사 대 직원의 내용이다. 1부는 진짜 남녀노소 다 겪어봤을 사례들이라서 읽다가 욱할지도 모른다. 나 또한 일터의 성격과 안 맞는다는 이유로 한 달도 안되어 알바를 잘려본 어이없는 경험을 했다. 갑이 어떤 방침을 내리든 을은 무조건 부당하고 억울하게 느껴질 테다. 반면 을이 취하는 태도는 아무리 정당해도 갑에게는 그저 괘씸하게만 보인다. 을이 아무리 살려달라 발악해봐도 갑은 개인보다 조직이 우선이니깐. 개인적으로 대기발령을 받아본 적은 없지만, 일이 없는데 업무 외에 아무것도 못하게 하면서 근무 일지를 쓰게 하는 스트레스는 충분히 받아봤다. 일 없고 월급 꼬박꼬박 나오는 곳이 최고라는 철부지들도 많은데 이건 뭐 대답해주기도 지친다. 직접 겪어봐야 그런 말이 안 나오지. 구조조정 이야기도 역시 할 말이 많다. 직장에서 감원 소식이 돌면 언제나 불안했다. 엄친아가 아닌 나님은 직장 구하기가 호랑이 미간의 여드름 짜는 것만큼이나 떨린단 말이다. 경력자나 베테랑들도 잘리는 마당에 짬 없고 능력 없는 일개 말단은 무슨 수로 살아남나.


2부는 ‘싸우기‘로써 조직 대 조직의 고충이 나온다.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먼저는 경쟁 업체부터 뭉개놔야 한다. 그러면서 고객들과는 웃으며 싸워야 한다. 프랜차이즈일 경우는 타 지점과도 싸워야 한다. 이 고래밥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깡 직원들의 타들어가는 속마음을 누가 알아주랴. 이런 걸 두고 ‘번 아웃 증후군‘이라 하여 많은 청년들이 무기력하게 산다는 기사도 자주 봤다. 이겨도 남는 게 없는 싸움을 안 할 수도 없는 잔혹한 현실. 이어서 부동산 문제로 틀어진 가옥주와 세입자의 갈등도 꽤나 심각하다. 멀쩡히 살고 있는데 집주인이 갑자기 내쫓거나, 건물주가 내 가게를 철거한다면 당연히 멘붕오지 않을까? 세입자나 상인들이 직장도 그만두고 연합회를 만들어 시위했건만 돌아오는 건 없었고 매달 나가는 회비와 중단된 월급으로 피폐해져만 갔다. 아무도 이 절박한 심정을 알아주지 않는다. 결국 조합에서 주는 이사비용을 받고 떠나는 자들을 보며 남은 회원들은 그동안 들인 시간과 고생에 헛웃음이 나온다. 그간의 시위는 누굴 위한 것이었나. 싸워야 할 대상도 많지만 싸워야 할 이유는 더 많다. 누군가는 이겨서 위로 올라가는 게 목표일 테고, 누군가는 내 것을 잃지 않기 위해 싸울 테고, 누군가는 진실을 덮기 위해 악바리가 된다. 냉정하게 보면 모두가 피해자이며 모든 이유가 타당하다.


3부는 ‘버티기‘로써 악조건의 상황에서 끝까지 버티는 자들의 내용이다. 작가는 ‘나와의 멘탈싸움‘에 대한 생각이 많은듯하다. 요즘 일자리 구하기 어렵다는 건 너무 자주 듣는 뉴스라서 시큰둥할 수 있는데 작가가 아나운서 지원자들에 대한 내용으로 제법 흥미 있게 써냈다. 지역 방송국에서 1명 뽑는데 수백 명의 경력자들이 지원한다. 그러나 남과의 경쟁보다 나와의 경쟁이 더 치열하다. 아무리 준비가 철저해도 잠깐의 방심으로 멘탈은 휘청대고 세상은 그 작은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대외활동에 목숨 거는 지방대학생의 사정도 참 남 일 같지 않았다.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넣고자 온갖 대외활동을 해보지만 번번이 면접마다 낙방한다. 기업은 경력자를 원하지, 경험 많은 자는 원하지 않았다. 가뭄에 콩 나듯이 보기 힘든 열정맨들도 이렇게 기를 죽이는 한국 사회는, 입구도 안 보이고 출구는 더더욱 안 보인다. 음악이 좋아서 밴드를 시작한 기타리스트 이야기도 참 짠했다. 이제는 돈 주고 음악 듣는 시대는 지나갔기에 음악이 점점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립싱크 연주를 하거나 한 곡에 몇 원도 안되는 스트리밍 수입으로 싸구려 음악 인생을 살아가는 뮤지션들. 이 시대의 산 자들은 버틴다는 말보단 못 움직인다는 표현에 가까운듯하다.


사회의 약자들을 위해 쓴 책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독자들이 제 삼자의 눈으로 사태를 바라보도록 만든 책 같다. 그래서인지 장강명의 글은 아무 색도 없는 무채색 같은 느낌을 받는다. 또한 물에 젖지 않는 기름종이 같기도 하고, 아무 무늬도 없는 벽지 같기도 하고 그렇다. 그는 어떠한 정답도 내리지 않고 선택을 강요하거나 방향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기에 장강명 소설은 유독 여운이 오래가는 게 아닐까 한다. 자 그러면 오늘도 이 악물고 하루를 버텨봅시다. 5천만의 대한민국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 보다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내길 더 바라면서.


※ 출판사에서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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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키모카 2019-07-10 2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 찍는 사람으로서 표지 보고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에요. 스포 방지를 위해 첫문단과 마지막 문단만 읽었는데 역시 읽고 싶은 책입니다. 서평 고맙습니다^^

물감 2019-07-11 06:55   좋아요 1 | URL
읽어주셔서 제가 더 고맙습니다^^ 스포는 적지 않았지만 반전이 거의 없는 내용들이더군요. 그냥 이야기 자체만으로 화제가 될만한 것들이라ㅎㅎ 여튼 재밌습니다!

페크pek0501 2019-07-11 14: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떤 정답도 내리지 않는 소설은 그것대로 매력 있지요. 이렇게 저렇게 다방면으로 생각해 볼 여지를 주니까요. 작가가 생각하지 못한 걸 독자가 알아채는 경우도 있지요.

물감 2019-07-11 14:27   좋아요 1 | URL
네 정말 매력있는 것 같습니다. 대개 작가의 생각이 많이 들어간 책들은 내 생각이 낄 틈이 없는데, 장강명 소설은 독자가 자신의 생각을 존중하게 만들어주는거 같아요. 그래서 더 할말도 많아지나봅니다~~

붕붕툐툐 2019-07-11 17: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장강명 작가 새 책이 나왔다고 해서 궁금했는데, 벌써 읽고 리뷰를 쓰시다닛!!^^
출판서에서 먼저 연락오는 경지라니,존경스럽습니다~ㅎㅎ

물감 2019-07-11 18:20   좋아요 1 | URL
쑥스럽네요ㅎㅎ 제가 파워리뷰어도 아닌데 이런 날도 다 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