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의 경우 여러 매체와 교과서에서 배운 바로는 훌륭하기만 하다고 이해하기가 쉽다.
"세종을 한없이 미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시대의 모든 업적을
세종 개인에게 돌리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죠.
세종이 주도한 '세종 시대의 가치'로 바라보는 것이 보다 합리적일
거예요. 건국 이래 축적된 국력, 유학에 대한 높은 수준의 이해, 과거제를 통해 선발되는 양질의 관료들, 안정적인 대외관계 등이 결합하여 시대적
성과를 일구어낸 것이니까요." / 86쪽
"세종 시대를 태평성대로 생각하면 곤란해요.
화폐 유통을 시도하면서 각종 부작용을 초래했고, 부민고소금지법,
사민정책, 사대정책 등은 대부분 백성의 희생을 전제로 한 것이었어요.
유랑민과 도적 떼도 넘쳐났고 합리적인 조세정책의 실천을 위해
17만여 호를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할 정도의 성의를 보였음에도
정도전이나 조준이 시행한 근본적인 경제개혁 같은 것을 찾아보기 힘든
것 또한 사실이고요. ...
조선은 국왕과 관료가 주도하는 소수의 엘리트체제이자 고도의
중앙집권체제 국가였으니 지역마다 다양한 살림살이와 삶의 형편을 도모하는 이른바 '자치의 성과'를 찾아볼 수도 없었어요.
완전한 인간이 없듯, 인류 역사에 이상 사회는
존재하지 않아요.
결국 역사는 다면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 단지 보다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훌륭한 시대가 있었다는 것 정도로 인식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 88쪽
드라마나 매체를 통해 세종 시대를 개인의 업적이 전부인양 미화하고, 완벽한 태평성대의 시대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세종이야말로 '유교적인 국왕'이었으며, 유교 윤리를 보급하는 과정에서 여성을 규제하고 옥죄었으며, 삼강행실도 및 세종이
주도한 각종 사업이 조선 사회에서 확대 강화되면서 보다 강고한 가부장사회, 남존여비 풍토를 만들어낸 왕이었다는 점,
그리고 '부민고소금지법(지방 수령의 전횡을 백성이 고소할 수 없게 만든 법)'의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개선하지 않고 오히려
방치함으로써 전형적인 '중세적 인간'의 모습을 보였다는 점 역시 간과해서는 안될 부분이라는 점을 알게 된다. (86쪽 참고)
이를 보면 근대 대한민국 역사에서 비슷한 꼴의 역사가 떠오르기도 한다.
유신시대 새마을운동, 잘살아보자 등을 통해 엄청난 경제적 부를 이루었던 반면,
엄청난 정치적 탄압과 밀실에서의 고문 등이 자행되던 때였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역사라는 것을 단면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위험하다는 저자의 생각에 동의할 수 밖에 없다.
세종대왕과 박정희 전대통령을 단면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단순히 경제적인 부강함 만을 놓고 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그래서 역사를 바라볼 때도 균형적인 시각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배운다.
'관상'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이정재의 첫 등장씬이다.
영화 처음부터 중반까지 '수양대군'이 누구일지 관객들에게도 궁금증을 불러일으켰고,
후반부에야 비로소 수양대군이 등장하는데 관객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로 숨을 죽이며 보게 했던 수양대군 등장씬은 정말 강렬했었다.
세종의 아들 문종은 병약했고, 손자인 단종은 의지할 곳이 없었다.
문종의 두 동생들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은 서로 앙숙이었다. 문종은 당대의 명신 김종서와 황보인에게 아들 단종을 부탁하며 세상을
떠났다.
당대에 문신으로 세종의 문화 통치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역사서 편찬에 지대한 공헌을 했으며, 탁월한 유학자로 성균관
유생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김종서,
영화에서는 백윤식 배우가 김종서를 연기했다.
그 김종서가 수양대군의 라이벌인 안평대군과 가깝게 지냈고, 안평대군 일파가 김종서 일파와 합류하면서 단종의 보위가 더 든든해
지는 구조였으나
수양대군에 대한 경계심은 높지 않았다고 한다 (97쪽 참고)
그러나 수양대군의 야망은 강렬했고, 문제의 인물인 한명회를 소개 받아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권력을 움켜쥐고 싶던 두 인물이 만나게
되었다.
수양대군이 원하는 계책을 내고 첩자를 만들어 김종서 일파의 활동을 파악하기까지 한 한명회의 톡톡한 활약으로 어린
단종은 1455년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옥새를 넘기면서 그렇게 수양대군이 세조가 된다. 그 사건이 바로 계유정난이다.
세조의 즉위를 축하하는 자리에서 사육신 중 한 명인 성삼문과 그 일대가 한명회를 죽이려다 모든 음모가 탄로나서 결국 피바람이 분
사건, 사육신과 생육신이 생겨나게 된 사건이다.
영화 관상을 보았기 때문에 수양대군과 관련한 역사적 배경이 쏙쏙 이해된다.
더구나 저자가 역사적 인물의 배경과 그가 왜 그랬을까 심리상태까지 함께 설명을 곁들여주기 때문에 역사책임에도 불구하고 몰입도가
엄청나다.
마치 영화 관상의 감독판으로 수양대군의 이후 조선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머릿속에 장면이 그려지기도 한다.
이 책을 통해 역사가 딱딱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역사란 지금도 반복되고 있는 것이고, 나와 다를 바 없는 사람, 인간군상들이 이룬 것이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모두 사연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책을 내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미묘한 역사
왜곡 문제였습니다.
조선 후기를 우리가 기대하는 바대로 맞추어 내려는 시도와 그로 인한
광범위한 사회적 오해가 참으로 안타까웠어요.
또한 남아 있는 기록에만 의지해서 진행된 반복적인 연구 결과에 대한
피로감도 꽤 심각했습니다.
예컨대 쟁송 기록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과 그러한 쟁송이 지니는
사회적 의미는 분명 차이가 있지 않겠습니까?
매번의 연구는 사료만을 따라갈 뿐이고 과감한 해석이나 의미심장한
상상력은 터무니 없이 부족해요. 이런 연구 풍토에 의한 해석의 빈곤은 우리 지식사회의 참으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 521쪽
저자와 같이 다양한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건강한 대한민국의 역사의 해석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딱딱하다고 느껴왔던 역사에 흥미를 갖게 해 주었을 뿐 아니라,
역사를 교과서적인 해석, 주류에 의한 해석만이 아닌 다양한 관점과 상상력을 통해 바라봐야만 건강한 시각을 가질 수 있다는 점
또한 깨닫게 해주었다.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책을 제공 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