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해석이 되나요] 오직 사랑하고픈 이에게만 주어진 것, 사랑

‘녹색광선(Le Rayon Vert)’의 델핀느
어딘가에서 ‘야경은 밤의 것이다’라는 글귀를 읽었습니다. 낮이 침범할 수 없는 그 아름다움엔 다른 것들로 대신 메울 수 없는 혹은 침범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도 엇비슷한 애정, 고마움, 친근함 따위로는 온전히 표현할 수 없는 고유의 영역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 오직 사랑만이 해 낼 수 있는 일들. 사랑을 하지 않는 이로서 억울하지만 어쨌든 그런 게 존재하나봅니다.
델핀느도 사랑에 빠지지 못했기 때문에 누군가처럼 억울해 하고 있군요. 에릭 로메르 감독의 시선을 타고 흐르는 7월의 프랑스는 아주 포근합니다. 마치 도시전체가 사랑에 빠진 양 기분 좋은 몽롱함에 빠져있습니다. 하지만 친구와 보내기로 한 휴가약속이 깨져버리고 2년 넘게 혼자 보내고 있는 델핀느는 그렇지 못합니다. 겉치레 위로는 듣기조차 싫고 그렇다고 혼자 휴가를 떠나자니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그녀는 운명처럼 나타날 사랑만이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사랑은 그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못할 것입니다. 사랑은 절대자가 아니니까요. 전지전능하지 않으니까요. 사랑에 빠진 동안은 불가능은 없어 보이고 그것이야말로 사랑의 고유의 능력이라고 생각하겠죠. 그러나 매정하게도 그렇지 못하답니다. 델핀느는 분명 사랑을 만납니다. 그리고 녹색광선도 보게 되지요. 그러나 그것은 사랑이 가능케 한 위대한 능력이라기보다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한 그녀에게 주어진 삶의 배당 같은 거예요. 이제껏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불편하던 그녀가, 걸핏하면 스스로 우울해져 훌쩍이던 여자가, ‘이 책 관심 있어요?’라고 먼저 말 걸어 시도한 대가 같은 거죠. 그래서 ‘사랑만이 가능한 침범 불가능한 무언가’는 ‘사랑하고자 하는 이만이 가질 수 있는 무언가’로 바꾸어 생각해야 할 듯합니다.
게으름에 시계방에 맡기지 못한 고장난 시계처럼 내버려둔 마음에 태엽을 감아야겠습니다. 사랑하고자 하지 않는 이는 결국 사랑을 훔칠 수 없단 사실을 알았으니까요. 그것은 야경이 밤의 것이듯 온전히 사랑하고자 하는 이의 것임을 아니까요.
이수빈 학생리포터 fantastic9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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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α] 복고바람

리바이벌 열풍
꽤나 올드한 취향을 가진 탓에 ‘삼십 년 전 쯤 태어났어야 했는데’를 밥 먹듯 외치던 누군가는 요즘 만족스럽다. 굳이 그 시절로 돌아가지 않아도 그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 대중문화들을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락 프로그램에서는 유로 댄스음악이 들려오고, 60년대를 강타했던 미니멀리즘이 올 봄 트렌드 컨셉트인데다 모 출판사의 고전소설 100선은 이미 베스트셀러 반열에 합류한지 오래다. 장 뤽 고다르의 ‘미치광이 피에로’나 키에슬롭스키의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사진)’이 보고 싶으면 시네마테크로 달려가면 되고, 히치콕 영화는 화질 좋고 사운드 빵빵한 DVD로 집에서 감상할 수 있으며, 슈퍼맨, 엑스맨, 언제나 미션 임파서블하던 특수요원 에던 헌트가 올해 극장가를 점령한다고 하니, 2006년은 ‘귀환의 한 해’가 될 듯 싶다.
대부분 리바이벌 되는 작품은 장르 불문하고 대중들의 열광적인 성원을 받았던 것이기에 이들의 재조명이 반갑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걱정되는 것이 사실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색다른 것’ 아니면 ‘그 이상의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리바이벌 열풍은 이러한 대중 심리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반전에 반전, 충격에 충격을 거듭하던 한국영화가 제풀에 지쳐 결국 ‘왕의 남자’ 같은 사극이나 ‘너는 내 운명’ 같은 정통 멜로에 손을 들어준 것처럼, 새로운 걸 기대하기보다 ‘있는 걸 잘 써보자’는 심산에 새로운 것도, 그 이상의 것도 아닌 안전지대를 선택한 것이다. 속편치고 잘 만든 영화 드물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러한 연유일 것이다. 물론 피터 잭슨의 ‘킹콩’ 같은 경우는 만족스러웠다. 그것은 원작에 대한 감독의 남다른 애정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노스탤지어는 형식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아우르는 원형의 감성에서 시작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잊지 말고, 바꿀 것은 과감히 버려야 할 것이다. 아무쪼록, 올해 한국 땅을 밟을 영웅들이 금의환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장영엽 학생리포터 schkolad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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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3rd League] 웃기거나 혹은 무섭거나

현대 원시주의의 착각 Delusions in Modern Primitivism
감독 다니엘 로핀
장르 모큐멘터리 시간 17분 년도 2000 국가 미국
‘WARNING.’ 영화의 타이틀이 오르기도 전에 이 영화의 내용을 따라하면 안되고, 관람 시 심한 충격을 받을 수 있으니 주의하란다. 이어지는 제롬이라는 한 남자의 다큐멘터리. 그는 건장한 청년이며, 온몸에 피어싱과 문신을 했다. 오늘도 무언가 몸에 흔적을 남기기 위해 길을 나서는 중인데, “you know~”를 섞어가며 열심히 늘어놓는 얘기가 흥미롭다.
요약하면 그가 몸에 흔적을 남기는 것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고통인 삶에 대한 자신의 분노이자 총체적인 표현이며 고통인 세상을 고통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가장 진실한 방법이라니, 나름의 설득력이 있다. 오늘의 작업은 왼쪽가슴 어깨뼈 부위에서 이뤄질 것이란다. 바디 아티스트 레이의 창고로 들어서면서 제롬이 상체를 드러내고, 구체적인 계획도 밝혀진다. 왼쪽 가슴에 선명하게 새겨진 총 문신. 총구가 어깨뼈를 향하고 있다. 오늘 레이는 제롬의 어깨뼈를 쏠 것이다. 총알은 어깨뼈와 가슴뼈 사이의 근육을 관통할 것이며 생명에는 전혀 지장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도대체 왜. 단지 총 문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상처를 낸단 말인가. 아니란다. 총을 맞는 것에 대한 두려움, 총을 맞았을 때 느껴질 고통에 대한 두려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극복하기 위해서 오늘의 작업을 준비했단다. 제롬은 공업용 고글을 끼고, 레이는 귀마개를 한다. 그리고는 정말로 "shot!" 피가 줄줄 흐르고, 제롬은 창고 밖에서 대기 중이었던 구급차로 옮겨진다.
여기서 잠깐. 이 단편의 장르가 무엇인가 보니 모큐멘터리, 다른 말로 하면 페이크 다큐멘터리라는 거다. 관객을 웃기기 위해 만든 가짜 다큐멘터리를 보고 정작 웃을 수 있는 건 영화를 만든 그들뿐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들의 영화가 대단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다.
육진아 기자 yoo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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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음악처럼] 복잡하면 더 매력적이다

매그놀리아 Magnolia
삶은 단순하지 않다.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때론 단순해지지만 그렇다고 삶이 너그럽게 단순해지지는 않는다.

복잡한 삶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길을 찾아야 하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사랑과 용서를 구해야 한다. 하지만 왜 그런지는 몰라도 이중, 삼중으로 꼬여있는 수학문제를 풀고 난 후의 짜릿한 쾌감처럼 삶이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우리는 더 살고자 한다. 여러 개의 출구라도 발견한 것처럼 삶은 어느 것이 진짜 출구인지 골몰해 머리가 아플지언정 흥미진진하다. 사실 따분함만큼 강적도 없다.


여러 개의 이야기가 얽혀있는 ‘매그놀리아(Magnolia)’는 퀴즈쇼를 중심으로 9명의 인물들을 보여준다. 머리를 길게 기르고 여성을 거침없이 비난하던, 콤플렉스로 똘똘 뭉친 티제이 역을 맡은 톰 크루즈가 매우 인상적이다. 병든 남편를 앞에 두고 괴로워하던 줄리안 무어 등 세상 어디든 꼭 있을 것 같은 인물들이 각자의 삶을 보여준다.

퀴즈쇼, 외도, 강간, 용서, 버림과 사랑에 대해 쉴새 없이, 그러나 천천히 들리는 음악은 영화와 닮아있다. ‘세이브 미(Save me)’나 ‘위시 업(Wish up)’은 싱어송라이터인 에이미 만이 불러서 비슷한 분위기지만 어둡고 처참한 ‘매그놀리아’의 삶과 닿아 묘하게 어울린다. 몽롱한 '굿바이 스트레인저(Goodbye Stranger)'나 가브리엘의 ‘드림즈(Dreams)’도 영화를 보고 나서 복잡했던 마음을 위로하는 것처럼 들린다.


무언가를 감상할 때, 오직 그 매체에만 집중하지 않고 다른 감각을 열어 놓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그래서 영화는 영상에 소리를 덧입힌 것이 아닐까. 개구리가 비처럼 내리는 어이없게 절망적인 현실이 풀릴 수 없을 것처럼 복잡해 보여도 괜찮다고 말하자. 우리에게 출구가 있다. 거미줄처럼 얽혀서 복잡하지만 그게 삶의 매력이다.

유희정 프리랜서 elegys@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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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 모두들, 괜찮아요?

감독 남선호
출연 김유석, 김호정, 이순재
장르 드라마,코미디
시간 104분
개봉 3월 24일
‘나 믿지?’ 그런 말을 들으면 오히려 믿기 두려워진다. 가족이기에 10년째 그 말에 속아온 무용학원 원장 민경(김호정)은 영화감독 지망생 남편과 치매 걸린 아버지, 말 안 듣는 아들을 끼고 산다. ‘괜찮냐’는 영화의 물음에 대답부터 하자면 사실 썩 괜찮은 것은 아니다. 소소한 고난을 겪은 후 행복으로의 귀결이 뻔히 보이기 때문에 재미가 반감되는 것이 사실이고 모든 사건의 중심이 되는 민경의 심리묘사가 남편 상훈(김유석)의 내fp이션으로 표현되기에는 부족한 것도 아쉽다. 위안이 되는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겼기에 나타날 수 있는 섬세한 표현력과 배우들의 든든한 연기력.화 같은 그들의 청춘을 엿볼 수밖에.
B 무난한 가족 드라마 한편. 연장방송은 사양합니다
이수빈 학생리포터 fantastic9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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