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rd League] 가면을 벗는 상쾌함
| 우스운 자의 꿈 Le reve d’un homme ridicu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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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알렉산드르 페트로프 장르 애니메이션 시간 19분 년도 19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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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가리는 것’을 제법 즐겨한다. 나의 바깥과 안이 서로 소통되지 않는 답답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쉽사리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은 ‘가린다’는 것이 종종 ‘용감해 진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무모해진다’와 더 통할는지도 모르겠다. ‘우스운 자’가 꾸었던 꿈속의 사람들이 그리됐듯 말이다. 처음 그가 도착했을 때 그들은 그저 풍경 같았다. 인간이라면 지녀야 할 욕심 따위가 전혀 없었으니까. ‘무가치한 놈’이라며 스스로에게 총을 겨눈 ‘우스운 자’의 암울함 따위는 이름처럼 우습게 여겨지는 곳이었다. 상처에 손만 갖다 대도 새살이 돋고, 해를 향해 걷던 노인은 태양이 되고, 꽂아둔 지팡이는 무성한 나무가 되는 세계였다. 그런 평화로운 삶에 ‘우스운 자’는 가면 하나를 선물한다. 그것은 왕성한 식욕으로 사람들을 집어 삼킨다. 자신을 가리는 거짓이 생기고 남에게 숨기고픈 비밀이 생긴다. 쓸데없는 용기가 자라고 무모함으로 변모하고 괴팍함으로 치닫는다. 태양은 빛을 잃어 암흑에 갇히고 ‘우스운 자’는 더 이상 우습지 않다. 그가 만들어낸 ‘가려진 것’의 비극을 보았기 때문이리라. 꿈에서 깬 그는 외면했던 거지소녀를 찾아 간다. ‘누구 없소?’를 되내이던 자신의 목소리와 ‘도와 주세요!’를 외치던 소녀의 외침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제야 안 것일까. 타인의 가면을 벗고 본 소녀는 자기 자신이었으며 상처를 치료해주던 꿈속의 소녀이기도 하다. 외피을 벗은 채 본 세계는 모두 ‘나’ 자신인 것이다. 그러나 ‘우스운 자’처럼 살벌한 꿈을 꾸지 않고서 가면을 벗기란 쉽지 않다. 그것은 어렴풋이 깬 겨울날 아침의 담요같이 달콤한 위안을 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장된 ‘나’와 과장된 ‘너’가 만들어냈을 불협화음을, 소모적 가식을, 껍데기만 남은 관계를 생각해야 한다. 껍질을 벗는 순간, 소화불량에 걸린 듯 불편하던 날들이 모처럼 가뿐해지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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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빈 학생리포터 fantastic999@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