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음악처럼] 책 읽어주실 분을 찾습니다

책 읽어주는 여자

어린 시절, 누군가가 책을 읽어주는 걸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건 마치 옛날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었죠. 혼자 읽을 땐 거짓말 같던 허구들도 누군가의 입을 통해 전해지면 그럴듯해보였으니까요.
그 시절을 추억하면서 잠시 영화 ‘책 읽어주는 여자’ 생각을 해봤습니다. 귀여운 그녀 콩스탕스도 남편에게 책을 읽어줬지요. 내용을 따라 열심히 상상하면서 말이에요. 작품 속에서 그녀는 책 읽어주는 여자 마리로 변신합니다. 마리가 고객에게 책을 읽어주러 갈 때마다 흐르던 ‘템페스트’의 선율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녀의 가벼운 발걸음만큼 산뜻했거든요. 마음속에 여전히 레닌에 대한 열정을 품고 사는 노부인의 집에 갈 때면 ‘발트슈타인’ 소나타가, 반신불수 소년 에릭의 집에 갈 때는 그가 마리에게 품고 있던 막연한 환상마냥 황홀한 ‘바이올린 소나타 8번’이 흘렀습니다. 제사에는 관심 없고 잿밥에만 관심 있다고, 책을 읽어주면 금새 코를 골다가 마리에게 추근덕 거릴 때만 깨어있는 밉살맞은 유부남 아저씨가 등장할 땐 ‘봄’ 소나타가, 사드의 ‘소돔 120일’을 읽어달라던(‘사디즘’의 그 사드 말이에요)늙은 판사가 등장할 땐 어김없이 ‘첼로 소나타 1번’이 들려왔지요. 마리는 언제나 모자와 목도리 색깔을 맞춰 입고 다녔는데, 저는 테마 별로 바뀌는 베토벤의 음악을 들으면서 미셸 드빌이야말로 탁월한 매치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색깔을 맞춘 것처럼 딱 들어맞았거든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마리의 고객들은 꾀나 괴짜였지만 미워할 수는 없는 캐릭터들이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도 가끔 엉뚱한 상상을 하잖아요. 늘 반복되는 일상에서 느끼는 고독감을 탈피하기 위해, 우리의 독특함을 받아줄 상냥한 사람이 존재하기만 한다면 간혹 이러한 일탈은 눈감아줄만하다고 생각되는데요. 다시 한 번 그 설레임을 느끼고 싶어졌습니다. 그런데 책 읽어줄 사람이 없으니까, 베토벤의 음악이나 열심히 들어야겠군요.

장영엽 학생리포터 schkolad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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