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음악처럼]한 식탁에서 만난 동서양 음악

구루 The Guru
시나리오, 사운드트랙, 배우의 연기가 훌륭한 하모니를 이루는 영화를 보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입니다. 큰 고민 없이 별을 ‘빵빵’ 달아 줄 수 있죠. 그렇지만 그런 완성도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만드는 사람들은 언제나 최선을 다하기에 2% 부족하다고 해서 세치 혀를 마음대로 휘두를 수 없죠. 못한 점을 끌어내서 비난하기 보다는 잘 된 점을 칭찬해 주는 게 훨씬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요?
‘구루(The Guru)’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나름대로의 코미디와 로맨틱한 사랑이야기, 인도 특유의 화려한 의상과 흥겨운 춤으로 장식된 영화는 동네 비디오 숍에 널려있는 여느 3류 코미디 영화들보다 나을 게 없었죠. 그러나 이 영화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것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사운드트랙이었습니다.
영화 ‘구루’의 사운드트랙 앨범은 그 자체가 할리우드와 발리우드의 만남이에요. 주인공 라무(지미 미스트리)는 어렸을 때 TV에서 방영되는 ‘그리스’를 보며 영화배우의 꿈을 키웁니다. 이 때 영화 속 TV에서는 존 트라볼타와 올리비아 뉴튼 존이 함께 부른 존 파라의 ‘유어 더 원 댓 아이 원트(You're The One That I Want)’가 들려오죠. 라무가 구루(정신적인 스승, 종교지도자)로 행세하는 장면들에서는 신나는 인도 음악이 흘러나오고, 샤로나(헤더 그레이엄)와 사랑을 느끼는 과정에서는 영국의 3인조 그룹 슈가 베이비스의 ‘라운드 라운드(Round Round)’를 비롯해 빌리 조엘의 ‘저스트 더 웨이 유 아(Just The Way You Are)’같은 달콤한 팝 음악이 로맨틱한 감성을 불어넣습니다.
지미 미스트리가 직접 부르는 전통적인 인도풍의 노래 ‘쵸리 쵸리 고리 세(Chori Chori Gori Se)’ 역시 음반을 듣는 재미를 더합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들썩이고 있는 걸 보면 인도음악에는 ‘마법의 가루’같은 것이 뿌려진 게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합니다. 춤추고 노래하는 장면이 5분만 더 나왔더라면 저 역시도 따라 추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어요. 전통 인도 영화는 아직 소화제가 필요하지만 ‘구루’ 정도의 절충이라면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언뜻 보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문화의 음악들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사운드트랙은 단순히 영화에 사용된 배경 음악에 그치지 않고 앨범 자체로서의 완성도를 자랑합니다. 영화는 비록 킬링타임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만, 그래도 음악하나는 건졌네요.
정재은 학생리포터 jmanduj@naver.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사랑도 해석이 되나요]Let it be

‘흩어진 꽃잎(Broken Blossom)’의 첸과 루시

쿤데라는 그의 유명한 책에서 ‘한 여인에게 연민을 느낀다는 것은 그녀보다 넉넉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몸을 낮춰 그녀의 높이까지 내려간다는 것을 뜻하기에 동정 삼아 사랑한다는 것은 곧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어떨까. 사랑하게 된 후 연민을 갖게 되고, 상대방의 높이까지 굳이 내려갈 필요가 없을 정도로 한없이 아래에 위치해 있는 경우 말이다. 절망의 순간에서 만난 사랑은 더없이 반가울 것이고 그 가운데에 연민까지 느낀다면 터져 오르는 사랑의 감정을 이겨낸다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첸 후앙은 부처의 가르침을 받아 영국에 온 중국인 선교사다. 인간을 구원할 꿈을 가지고 영국에 온 그에게 꿈은 사라진 지 오래고 하릴없이 과거를 회상하며 절망할 뿐이다. 그런 그에게 눈물 어린 얼굴을 가진 한 소녀, 루시는 웃음을 주는 유일한 존재다. 루시는 매일같이 아버지에게 구타를 당한다. 평생 웃어본 적이 없어 웃는 법을 모르는 그녀는 아버지의 협박에 억지로 손가락으로 입술 끝을 들어 올려 미소를 만들어낸다. 그녀는 어느 날 지친 몸으로 마을을 떠돌다가 첸의 가게에서 쓰러지고, 첸은 루시를 정성스럽게 간호한다. 어쩌면 이것이 자신의 천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친절이라는 것을 첸에게서 처음 받아보는 루시는 낯선 감정에 경계하게 되지만 곧 마음을 열면서 그에게 눈물 어린 미소를 만들어 보인다. 루시에 대한 첸의 마음 한 구석에 사랑과 함께 연민의 마음 역시 커진다. 이로써 첸은 순애보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에 모든 것을 버리고 죽음을 택한다는 그 순애보. 그래서 믿음, 희망, 종교, 사랑까지 모두 상실하고 오열하는 첸을 볼 때 흐르는 눈물을 멈추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눈물을 아무 생각 없이 흘려 보냈으면 한다. 절망 끝에 만난 사랑을 떠나 보낸 첸의 마음을 진짜 사랑이다 아니다 판가름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기 때문이다.
부끄럽다. 사실 계속 떼를 쓰고 있다. 논리적으로 연민도 사랑이 될 수 있노라고 설득하고 싶었지만 결국 억지되어 치기 어린 감정만 남았다.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랑의 기회를 놓쳐버린 불쌍한 마음을 부디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가능한 한 사랑이 될 수 있는 모든 감정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어 최선을 다해 지키려는 것, 현재 나의 사랑에 대한 마지막 방어선이다.
과연 사랑은 또 다시 찾아올까.

문동명 학생리포터 playamoon@naver.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장면의 발견]일만 하고 놀지 않는 잭은 미쳐버렸다

샤이닝 The Shining (1980)
‘주온’시리즈로 승승장구 중인 시미즈 다카시 감독이 연출한 공포영화 ‘환생’에는 끔찍한 모티브가 등장한다. 영화 속 주인공인 여배우 마츠무라가 출연하는 영화 ‘기억’은 산 속의 호텔에서 가족들과 함께 바캉스를 보내던 한 평범한 가장이 갑자기 자신의 자녀를 비롯해 종업원과 손님들을 무차별 살해한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다. 가장 간담 서늘한 장면은 환생 연구를 하다 망상에 사로잡힌 아버지가 어린 아들 딸을 찔러 죽이고 그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아이들을 찌르는 칼보다 더 공포스러운 존재는 아버지의 낡은 8미리 카메라다. 쫓기는 아이들을 뒤쫓아오는 아버지의 기척은 털털거리며 돌아가는 카메라 소리로 대치된다. 여기서 카메라는 과도한 연구로 인해 미쳐버린 아버지의 광기를 상징하는 동시에, 현실의 이미지를 그대로 기록하는 영화라는 매체가 지닌 폭력성을 은연 중 상징하고 있다.
‘환생’이 노골적으로 그 결정적 소재와 몇몇 쇼트들을 빌려온, 말하자면 무언의 오마주를 바친 스탠리 큐브릭의 80년작 ‘샤이닝’에서, 카메라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은 주인공 잭의 타자기이다. 소설가이자 전직 교사인 잭(잭 니콜슨)은 아내 웬디와 어린 아들 대니와 함께 겨울 휴장기동안 거대한 호텔을 관리하는 일을 맡는다. 5개월 동안 외부와의 연락이 일체 두절된 채 거대한 호텔에서 지내던 잭은 점점 미쳐간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잭의 광기 이면에 비뚤어진 백인우월주의와 이기적인 가부장적 사고가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잭은 소설가로 성공하지 못하고 교사로 머물러 있는 자신에 대한 자괴감을 부양해야 할 가족의 탓으로 돌린다. 잭은 텅 빈 호텔 로비에서 끊임없이 타자를 쳐대지만, 그가 광기에 휩쓸리고 난 후 아내 웬디는 그가 쓴 수백 장의 종이가 오로지 ‘일만 하고 놀지 않는 잭은 미쳐버렸다’라는 문장으로만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한다.
‘샤이닝’에서 결국 잭은 도끼를 들고 아들과 아내를 살해하려 미쳐 날뛴다. 존속살인이라는 소재를 택하면서 감독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가족이라는 가장 은밀한 테두리가 상징하는 폐쇄적인 상류 계급의 퇴폐성과 광기다. 잭 니콜슨은 극보수 백인우월주의를 상징하는 광기의 현신인 잭 역을 섬뜩하리만치 실감나게 연기한다. 보수주의가 판을 치기 시작하는 80년 이후의 미국의 상황에 대한 예언과도 같았던 영화 ‘샤이닝’은 평범한 백인 남성을 악의 화신으로, 흑인 노인과 중년 여성, 어린 아이를 그에 대항하는 선한 존재로 그린다. 이는 80년대를 풍미한 백인 남성 영웅 판타지와 정확히 대척점에 존재하는 것이며, 큐브릭 감독이 계속해서 천착해왔던 전체주의적 시스템, 혹은 계급 사회에 대한 섬뜩한 고발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기도 하다.
최은영 영화평론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프리뷰]얼음왕국 - 북극의 여름 이야기

La Planete Blanche
감독 띠에리 피아따니다, 띠에리 라고베르트
목소리 출연 손범수
장르 다큐멘터리, 드라마
시간 77분
개봉 7월 13일
아름다운 얼음왕국, 북극. 겨울의 어둠이 걷히고 봄이 열리고 이윽고 여름이 그 얼굴을 내민다. ‘얼음왕국’은 계절의 변화에 정직하게 반응하는 북극의 수많은 생명체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다시 한번 자연의 위대함에 탄복하게끔 한다. 그리고 이 감동을 50년 후에 사라질지도 모르는 북극의 운명에 대한 경각심으로 모으면서 힘 있는 메시지를 획득한다. 내레이션을 맡은 손범수를 비롯해 평소 귀에 익은 성우들의 목소리는 재미를 더한다.

B+ 여름에 북극 다큐 한 편, 열 공포영화 안 부럽다

문동명 학생리포터 playamoon@naver.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프리뷰]낯선 사람에게서 전화가 올 때

When A Call Stranger Calls
감독 사이먼 웨스트
출연 카밀라 벨
장르 공포 스릴러
시간 87분
개봉 7월 14일
여고생 질(카밀라 벨)은 휴대전화 요금이 많이 나왔다는 이유로 전화사용을 금지당하고 요금까지 벌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억지로 떠밀려 하게 된 베이비시터. 잔잔하기만 했던 초호화 펜션은 장난전화가 걸려오면서부터 불길한 집으로 변해버린다. 1979년, 동일한 제목으로 개봉됐던 영화를 CF감독 출신 사이먼 웨스트가 리메이크 했다. 심리공포를 선보이고자 했던 의도 자체는 매우 그럴듯해 보이나 밀도 없이 공중분해 되는 구성에서 심리공포의 감정이입은 이미 저만치 멀어졌다. 자리에서 일어날 때쯤이면 사이먼 웨스트 감독에게 왜 공포영화를 찍었냐고 묻고 싶어진다.

C 낯선 사람에게 전화가 올 때는 그냥 전화기를 꺼버리자

정재은 학생리포터 jmanduj@naver.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