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의 발견]일만 하고 놀지 않는 잭은 미쳐버렸다

샤이닝 The Shining (1980)
‘주온’시리즈로 승승장구 중인 시미즈 다카시 감독이 연출한 공포영화 ‘환생’에는 끔찍한 모티브가 등장한다. 영화 속 주인공인 여배우 마츠무라가 출연하는 영화 ‘기억’은 산 속의 호텔에서 가족들과 함께 바캉스를 보내던 한 평범한 가장이 갑자기 자신의 자녀를 비롯해 종업원과 손님들을 무차별 살해한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다. 가장 간담 서늘한 장면은 환생 연구를 하다 망상에 사로잡힌 아버지가 어린 아들 딸을 찔러 죽이고 그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아이들을 찌르는 칼보다 더 공포스러운 존재는 아버지의 낡은 8미리 카메라다. 쫓기는 아이들을 뒤쫓아오는 아버지의 기척은 털털거리며 돌아가는 카메라 소리로 대치된다. 여기서 카메라는 과도한 연구로 인해 미쳐버린 아버지의 광기를 상징하는 동시에, 현실의 이미지를 그대로 기록하는 영화라는 매체가 지닌 폭력성을 은연 중 상징하고 있다.
‘환생’이 노골적으로 그 결정적 소재와 몇몇 쇼트들을 빌려온, 말하자면 무언의 오마주를 바친 스탠리 큐브릭의 80년작 ‘샤이닝’에서, 카메라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은 주인공 잭의 타자기이다. 소설가이자 전직 교사인 잭(잭 니콜슨)은 아내 웬디와 어린 아들 대니와 함께 겨울 휴장기동안 거대한 호텔을 관리하는 일을 맡는다. 5개월 동안 외부와의 연락이 일체 두절된 채 거대한 호텔에서 지내던 잭은 점점 미쳐간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잭의 광기 이면에 비뚤어진 백인우월주의와 이기적인 가부장적 사고가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잭은 소설가로 성공하지 못하고 교사로 머물러 있는 자신에 대한 자괴감을 부양해야 할 가족의 탓으로 돌린다. 잭은 텅 빈 호텔 로비에서 끊임없이 타자를 쳐대지만, 그가 광기에 휩쓸리고 난 후 아내 웬디는 그가 쓴 수백 장의 종이가 오로지 ‘일만 하고 놀지 않는 잭은 미쳐버렸다’라는 문장으로만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한다.
‘샤이닝’에서 결국 잭은 도끼를 들고 아들과 아내를 살해하려 미쳐 날뛴다. 존속살인이라는 소재를 택하면서 감독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가족이라는 가장 은밀한 테두리가 상징하는 폐쇄적인 상류 계급의 퇴폐성과 광기다. 잭 니콜슨은 극보수 백인우월주의를 상징하는 광기의 현신인 잭 역을 섬뜩하리만치 실감나게 연기한다. 보수주의가 판을 치기 시작하는 80년 이후의 미국의 상황에 대한 예언과도 같았던 영화 ‘샤이닝’은 평범한 백인 남성을 악의 화신으로, 흑인 노인과 중년 여성, 어린 아이를 그에 대항하는 선한 존재로 그린다. 이는 80년대를 풍미한 백인 남성 영웅 판타지와 정확히 대척점에 존재하는 것이며, 큐브릭 감독이 계속해서 천착해왔던 전체주의적 시스템, 혹은 계급 사회에 대한 섬뜩한 고발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기도 하다.
최은영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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