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월드 트레이드 센터

World Trade Center
감독 올리버 스톤
출연 니콜라스 케이지, 마이클 페나
장르 드라마
시간 127분
개봉 10월 12일
2001년 9월 11일, 뉴저지의 항만경찰청 경사 존 맥라글린(니콜라스 케이지)과 윌 히메노(마이클 페냐)를 비롯한 4명의 부하 경찰들은 세계 무역 센터에 인명 구조를 위해 출동한다. 건물에 들어서지만 예상치 못한 붕괴로 매몰되고 맥라글린 경감과 신참 히메노만이 살아남는다. 죽음의 기로에 선 생존자들과 마지막 희망을 붙잡고 가슴 졸이는 가족을 다룬 이 영화는 911테러 사건의 실제 생존자 존 맥라글린과 윌 히메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들은 총 20명의 생존자 가운데 18번째와 19번째 생존자였다. 정치성 짙은 영화를 주로 만들던 올리버 스톤이 이번엔 휴머니티에 초점을 맞췄다. 그 휴머니티의 중심엔 미국인의 가족주의와 기독교 사상이 뿌리 깊게 자리해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갈라서 고발을 하고 보상을 받으려는 대신, 생존자들의 절박한 상황 재현과 가족애를 중심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맥라글린과 히메노는 의식을 잃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말을 시키며 서로를 의지한다. 영화는 뼈가 으스러지고 신경이 마비되는 고통의 시간 속에서도 ‘가족’만이 희망이며 살고자 하는 의지의 원천이었음을 끊임없이 드러낸다. 911사건을 정치적 논쟁거리가 아닌 가족애를 주제로 접근한 것은 현명한 선택인 것처럼 보인다. 같은 사건을 다룬 영화 ‘플라이트 93’이 다큐멘터리의 형식으로 무방비 상태의 건물이 무너져 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보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과는 달리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건물이 무너지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는다. 올리버 스톤 감독은 인간을 그린 드라마에서 건물이 무너지는 모습은 중요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영화 러닝타임의 절반이상을 건물 잔해에 깔린 채 눈빛과 대사만으로 숱한 감정 변화와 처절한 생의 모습을 담아 낸 두 주인공의 연기가 단연압권이다. 연기파 배우 니콜라스 케이지는 이미 수준급이라 해도, ‘크래쉬’에서 열쇠수리공 다니엘 역을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바 있는 마이클 페냐의 연기도 못지않게 안정적이다. 실제 생존자 존 맥라글린과 윌 히메노는 영화 속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윌 히메노는 영화 초반 경찰서 락커룸 장면에서 등장하며 존 맥라글린은 마지막 장면에서 건강을 회복한 니콜라스 케이지와 가장 처음 악수하는 경찰로 등장한다.
B+ 예상 밖의 절절함. 그래, 911영화는 딱 여기까지만. 더 이상은 곤란해요 (재은)
B 무조건 감동으로 밀어붙이기 (희연)
B 정치극이 아닌 ‘드라마’, 그러나 미국 드라마 (진아)
정재은 학생리포터 jmanduj@naver.com


출처 : http://www.naeilshot.co.kr/news/view.asp?num=2095&Sfield=&Sstr=&page=1&cate_news=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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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파이널 컷

The Final Cut
감독 오마르 나임
출연 로빈 윌리엄스,
미라 소르비노, 짐 카비젤
장르 SF 스릴러
시간 95분
개봉 10월 12일
한 인간의 삶을 기록하는 기억장치 ‘조이칩’. 이것의 내용을 편집하여 사람의 장례식 때 상영하는데, 이것이 ‘리메모리’이다. 앨런 해크먼(로빈 윌리암스)는 리메모리 편집자(커터)계의 권위자다. 타인의 삶을 건조하게 취급하는 그는 스스로의 삶에서도 염증을 느낀다. 어느 날 아이테크 사 임원의 리메모리를 편집하던 앨런은 지우려고 애썼던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게 되고, 점점 트라우마로 빠져든다.
‘파이널 컷’은 오마르 나임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대학 졸업 작품이었던 ‘그랜드 씨어터’로 학생 아카데미상을 수상하여 주목을 받던 그는 여러 편의 독립 영화에서 촬영과 편집을 맡으며 경력을 쌓다가 ‘파이널 컷’으로 연출 신고식을 치렀다. 하지만, 이번 결과물은 그다지 좋지 않다.
이 영화의 최대 단점은 초중반부가 무척 지루하다는 것이다. 스릴러라 하면 손에 땀을 쥐는 묘미가 동반되는 법인데, ‘파이널 컷’은 작게는 과거의 과오로 인한 인간의 죄의식, 크게는 인간의 기억을 마음껏 조종할 수 있도록 변해 버린 인간 기술 문명의 윤리적 문제를 한 곳에 온전하게 담아내는 데 실패하면서 집중도를 떨어트린다.
후반부만 놓고 보자면 만듦새가 괜찮은 편. 예를 들어, 지오칩의 시점과 실제 사람의 시점이 교차편집 되면서 만들어지는 긴장감이나 쏠쏠한 재미를 주는 반전은 나름대로 장점으로 작용된다. 산만한 이야기들을 차례차례 정리하면서 밀도 있는 전개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결말에 이르러서 이렇다 할 결론을 내지 못하고 맥없이 끝나버려 아쉽다.
한편 로빈 윌리엄스의 연기는 대단하다. 문제아들에게 삶의 희망을 얘기해주는 선생님에서 미치광이 스토커까지 넓은 스펙트럼의 연기를 보여주었던 로빈 윌리엄스는 ‘파이널 컷’에서도 과거의 기억으로 인한 트라우마에 심리적 갈등을 겪는 주인공 앨런 역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로빈 윌리엄스의 팬이라면 그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듯.
C+ 만회하지 못하고 그대로 묻혀버린 (동명)
C+ 모든 의문과 반전의 열쇠는 '파이널 컷'이 쥐고 있다 (희연)
문동명 학생리포터 playamo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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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의 발견]수확의 계절

테렌스 맬릭감독의 ‘천국의 나날들(Days Of Heaven, 1978)’
수확의 계절이다. 수확에 관한 여러 가지 이미지들 가운데서도 가장 직접적인 이미지는 끝없이 펼쳐진 너른 평야다. 곡식이 영그는 누런 들판은 풍요로움에서 비롯되는 안도감과 평화를 약속한다. 이렇듯 수확의 장면을 담고 있는 영화는 많지만 그 가운데서도 압도적인 풍광을 자랑하는 영화가 있다. 테렌스 맬릭 감독의 ‘천국의 나날들’이 그것이다.
일 년에 수 편의 영화들을 양산해내는 왕성한 생산력을 자랑하는 감독이 있는가 하면, 길게는 몇 년에 한 번, 심지어는 십 여년에 한 번 꼴로 영화를 만들어내는 과작의 감독들이 있다. 일년에 적어도 두어 편씩 작품을 내놓는 김기덕 감독이나, 일본의 구로사와 기요시 같은 감독들에게 영화를 만들어내는 속도는 어쩌면 그들 영화 세계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마치 마르지 않는 샘처럼 온갖 이야기가 흘러넘치는 것이다. 그러나 다작이 영화의 질과 곧바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몇 십년 동안 단 몇 편의 영화를 만들었어도 양에 비할 수 없이 풍성한 영화적 생산력을 자랑하는 감독들이 있다. 미국 감독인 테렌스 맬릭 또한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1973년 ‘황무지’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고작 네 편의 장편을 만든 그의 영화 중에서도 1978년에 만든 두 번째 장편 ‘천국의 나날들’은 그저 영화에 불과하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황홀한 감각적 체험을 선사하는 영화다.
191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천국의 나날들’은 떠돌이 노동자인 빌과 그의 연인 애비가 도시를 떠나 텍사스의 거대한 농장에 흘러들면서 시작된다. 영화는 이야기를 빠르게 전개시키는 대신, 유려한 카메라 움직임과 오로지 자연광만을 이용한 자연스러운 촬영으로 마치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보여지는 광활한 밀밭의 풍경을 재현한다. 대사를 극도로 제한하는 테렌스 멜릭의 연출 방식은 마치 한 편의 시와 같은 그의 영화에 정취를 더한다. 이야기가 지극히 느리게 진행됨에도 불구하고 불평을 잊게 만드는 숨막히도록 아름다운 이미지들은 그 자체로 이미 이야기를 넘어서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황혼의 들판을 배경으로 연기를 내뿜으며 서 있는 밀 베는 기계, 마치 밀밭과 하나가 된 듯한 일꾼, 바람에 파도처럼 흔들리는 무성한 밀밭의 클로즈업에서 끝없는 평야에 고즈넉이 서 있는 농장주 저택의 롱 숏에 이르기까지, 이미지의 향연은 상영시간 내내 보는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댄다. 에릭 로메르의 초기작과 트뤼포의 영화를 촬영했던 촬영 감독 네스토르 알멘드로스의 엄격한 자연주의적인 시선, 엔니오 모리코네의 낭만적인 음악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지금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 70mm 필름으로 찍혀진 ‘천국의 나날들’은 영혼이 담긴 자연의 이미지를 담은 가장 뛰어난 영화 중 한 편으로 기억될 만 하다.
최은영 영화평론가


출처 : http://www.naeilshot.co.kr/news/view.asp?num=2097&Sfield=&Sstr=&page=1&cate_news=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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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해석이 되나요]살 수 있으니 더욱 좋아!

‘죽어도 좋아’의 박치규 할아버지와 이순예 할머니

박치규 할아버지는 외로이 노년의 지루한 일상을 보냅니다. 눈 내리는 거리를 같이 걸을 사람은 커녕 라면을 같이 먹을 사람조차 곁에 없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공원 벤치에서 꽃같은 여인을 만납니다. 할아버지는 그 여인에게 말합니다. “이렇게 이쁜 할머니 옆에 앉으니 행복해요!” 할머니는 수줍은 듯 미소를 보입니다.
어떤 영화의 오프닝인지 아시겠습니까? 박진표 감독의 ‘죽어도 좋아’입니다. 이 영화를 보는 순간, 제작 당시 심의불가 판정을 내렸던 사례를 떠올리면서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이렇게 숭고한, 이렇게 (어떠한 긍정의 수식어를 붙여도 지나치지 않습니다)한 영화에 음란이라는 말을 적용시킬 수 있단 말인가?!’
각설하고, 제 이름 중 ‘동’을 걸고 ‘죽어도 좋아’는 정말 아름다운 사랑영화입니다. 이런 투박한 표현으로 개인적인 마음을 담아 ‘죽어도 좋아’를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은 이유는, 이 영화에는 정말 진실한 사랑이 녹아 있기 때문입니다.
첫 만남 그 다음 날, 이순예 할머니는 박치규 할아버지의 새색시가 됩니다. 70년 인생을 돌아와 만난 사랑은 참으로 소중한가봅니다. 두 분은 건강하게 사랑을 나누십니다. 탄력은 없어진 지 오래고 여기저기 검버섯이 핀 몸이지만 어쩌면 그리 고울 수 있냐고 말하면서 서로의 몸을 느낍니다. 이 두 연인의 섹스에서 곧 다가올 죽음과 치열하게 싸우며 삶을 긍정하려는 숭고함이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섹스가 끝나고 나면 할아버지는 달력에 사랑을 나눈 날짜를 동그라미로 표시합니다. 한 달이 지난 다음 그 달력 전체가 시커멓게 동그라미 표시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볼 때, 어떤 날은 날짜 아래 삐뚤삐뚤하게 ‘낮거리’라고 써져 있는 것을 볼 때, 가슴이 한 구석이 따뜻해짐을 느낍니다. 특히, 할아버지가 섹스를 하고 난 다음 옥상에 올라가 음악에 국민 체조를 하는 그 때의 감동은 국어대사전을 아무리 뒤적거려도 표현할 수 없을 거예요. 마지막 장면에서 두 연인은 ‘청춘가’를 부릅니다. 할아버지는 갑자기 가사를 바꾸어 이렇게 흥을 돋웁니다. “얻었네, 얻었네 천하를 얻었네. 이순예, 박치국이 얻었네.” 노래는 멈추지 않고 계속 흐릅니다. 두 분의 청춘은 계속 될 것만 같습니다.
한 시간 남짓한 영화 ‘죽어도 좋아’에서 사랑의 고귀함, 끈끈한 삶의 의지를 보았습니다. 사랑하고 살아야겠다고, 정말 살/아/야/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합니다. 하핫. 왠지 저도 천하를 얻은 기분이 드는 걸요.

문동명 학생리포터 playamoon@naver.com


출처 : http://www.naeilshot.co.kr/news/view.asp?num=2098&Sfield=&Sstr=&page=1&cate_news=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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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음악처럼]재즈와 록큰롤, 흑과 백, 여자와 남자

그림자들 Shadows
존 카사베츠 감독을 처음 알게 된 건 영화라는 것에 빠져들게 했던 도전적인 미국 인디영화 감독들 사이에서 회자되던 그의 이름을 듣고서였습니다. 존 사카베츠는 감독들의 감독이었습니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왕가위 같은 거장들이 그가 미국영화로서는 처음 보인 관습의 파괴, 자유로움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그림자들’은 그의 첫 감독 데뷔작으로, 1960년 베니스 영화제 비평가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도대체 어떤 작품일까’ 넘치는 호기심으로 플레이를 누르자마자 들썩거리는 흑백의 화면이 등장합니다. “whoo-yoo” “ye-ha” 라는 자막이 계속 이어지는 지금은 록큰롤 파티가 한창입니다. 엘비스를 떠올리게 하는 멜로디와 리듬 위에 펼쳐진 이 풍경은 열정 가득한 음악도들이 ‘유명해 질거야!’를 외치던 뮤지컬 영화 ‘페임’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군요. 그런가 하면 저 멀리서 걸어오는 이 영화의 인물들은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를 떠올리게 합니다. 옷차림새하며, 걸음걸이하며, 여자들이나 꼬셔서 희희덕대는 모습이 모범적이라고는 할 수 없겠습니다. 그 중 한 명인 주인공 벤은 트럼펫연주자로 재즈 뮤지션이 형과 함께 공연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죠. 감독은 방황하는 그의 얼굴을 가까이, 그러나 매우 낯설게 담아내고는 너무나 나른하고 늘어져서 신경질이 날 정도의 트럼펫 솔로를 흘려 넣습니다.
‘오, 이런! 재즈는 항상 지친 자의 마지막 안식처였건만!’ 하지만 영화의 진짜 속내가 바로 여기서 드러납니다. 벤의 형이자 참을 수 없이 편안한 저음을 가진 재즈보컬 휴가 “hello baby”로 시작하는 지독하게 달콤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싸늘한 객석. 극장 관계자는 열 명 남짓의 백인 여자들로 이뤄진 ‘걸 라인’을 급히 투입해 ‘어 리얼 매친(a real machin)’이라는 하이톤의 그룹댄스뮤직을 선사하는데요, “체리파이! 롤리팝!”을 부르는 여자들에게 휩싸여 당황해하고 있는 그의 얼굴을 보니 불편한 재즈의 시작이 어딘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는 재즈와 록큰롤, 팝을 대립시킵니다. 이 저변엔 흑과 백의 갈등이 존재하고 있고요. 큰 형인 휴는 흑인이지만 남동생 벤과 여동생 렐리아는 혼혈입니다. 벤은 재즈와 록큰롤 사이에서 방황하고, 렐리아가 백인 남자와의 사랑에 실패하는 에피소드들은 이 주제에 중심을 둔 채 사랑과 삶의 그림자들을 함께 보여줍니다. 존 카사베츠는 ‘You Are Just A Dream’‘upon the Moonbeam’ 등의 재즈선율이 불안한 감정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걸 가르쳐주며 무책임하게 뒤돌아 서니 이것이 그의 힘인가 봅니다.
육진아 기자 yook@naeil.com



출처 : http://www.naeilshot.co.kr/news/view.asp?num=2099&Sfield=&Sstr=&page=1&cate_news=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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