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해석이 되나요]살 수 있으니 더욱 좋아!
| ‘죽어도 좋아’의 박치규 할아버지와 이순예 할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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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규 할아버지는 외로이 노년의 지루한 일상을 보냅니다. 눈 내리는 거리를 같이 걸을 사람은 커녕 라면을 같이 먹을 사람조차 곁에 없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공원 벤치에서 꽃같은 여인을 만납니다. 할아버지는 그 여인에게 말합니다. “이렇게 이쁜 할머니 옆에 앉으니 행복해요!” 할머니는 수줍은 듯 미소를 보입니다. 어떤 영화의 오프닝인지 아시겠습니까? 박진표 감독의 ‘죽어도 좋아’입니다. 이 영화를 보는 순간, 제작 당시 심의불가 판정을 내렸던 사례를 떠올리면서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이렇게 숭고한, 이렇게 (어떠한 긍정의 수식어를 붙여도 지나치지 않습니다)한 영화에 음란이라는 말을 적용시킬 수 있단 말인가?!’ 각설하고, 제 이름 중 ‘동’을 걸고 ‘죽어도 좋아’는 정말 아름다운 사랑영화입니다. 이런 투박한 표현으로 개인적인 마음을 담아 ‘죽어도 좋아’를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은 이유는, 이 영화에는 정말 진실한 사랑이 녹아 있기 때문입니다. 첫 만남 그 다음 날, 이순예 할머니는 박치규 할아버지의 새색시가 됩니다. 70년 인생을 돌아와 만난 사랑은 참으로 소중한가봅니다. 두 분은 건강하게 사랑을 나누십니다. 탄력은 없어진 지 오래고 여기저기 검버섯이 핀 몸이지만 어쩌면 그리 고울 수 있냐고 말하면서 서로의 몸을 느낍니다. 이 두 연인의 섹스에서 곧 다가올 죽음과 치열하게 싸우며 삶을 긍정하려는 숭고함이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섹스가 끝나고 나면 할아버지는 달력에 사랑을 나눈 날짜를 동그라미로 표시합니다. 한 달이 지난 다음 그 달력 전체가 시커멓게 동그라미 표시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볼 때, 어떤 날은 날짜 아래 삐뚤삐뚤하게 ‘낮거리’라고 써져 있는 것을 볼 때, 가슴이 한 구석이 따뜻해짐을 느낍니다. 특히, 할아버지가 섹스를 하고 난 다음 옥상에 올라가 음악에 국민 체조를 하는 그 때의 감동은 국어대사전을 아무리 뒤적거려도 표현할 수 없을 거예요. 마지막 장면에서 두 연인은 ‘청춘가’를 부릅니다. 할아버지는 갑자기 가사를 바꾸어 이렇게 흥을 돋웁니다. “얻었네, 얻었네 천하를 얻었네. 이순예, 박치국이 얻었네.” 노래는 멈추지 않고 계속 흐릅니다. 두 분의 청춘은 계속 될 것만 같습니다. 한 시간 남짓한 영화 ‘죽어도 좋아’에서 사랑의 고귀함, 끈끈한 삶의 의지를 보았습니다. 사랑하고 살아야겠다고, 정말 살/아/야/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합니다. 하핫. 왠지 저도 천하를 얻은 기분이 드는 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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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동명 학생리포터 playamoon@naver.com |
출처 :
http://www.naeilshot.co.kr/news/view.asp?num=2098&Sfield=&Sstr=&page=1&cate_news=mov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