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량이 반으로 줄어서 일찍 출소하게 된 피터(토마스 폴가)는 누나 마리카(카타 웨버)가 운영하는 세탁소로 향한다. 놀랍게도 세탁소에서 마야(오르소냐 토스)가 아기를 낳는 장면과 마야에게 돈을 건네고 갓 낳은 아기를 받아드는 마리카의 모습을 우연히 목격하게 된다. 친한 친구 소니와 함께 조직 두목 야누스를 찾아가 예전처럼 차를 분해하는 일을 하게 된 피터는 그곳에서 마야가 야누스의 정부임을 알게 된다. 아름다운 마야의 모습을 지켜보던 피터는 점차 그녀에게 빠져든다. 개인을 둘러싸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혼란스러운 관계의 총체가 여기에 있다. 피터의 누나 마리카는 남편의 사랑을 얻기 위해 아기를 돈으로 산다. 그리고 그 아기는 피터가 사랑하게 된 마야의 아기이며, 그 아기의 아버지는 야누스도 아닌 피터의 친구임이 밝혀진다. 지나친 소유욕 속에 광적으로 마야에게 집착하는 야누스의 곁에서 아기마저 팔아버린 마야는 숨조차 쉴 수가 없다. 기댈 곳 없는 불안함이 영화와 관객을 장악한다. 피터의 온 몸을 직접 닦아줄 정도로 누나라기보다는 엄마에 가까운 마리카, 친구인 동시에 아기 크리스티앙의 아빠인 소니, 피터의 도움은 필요하지만 피터와는 절대 엮일 수 없는 마야에게서 그는 일말의 휴식도 제공받을 수 없다. 영화는 불안하고 정처 없는 그들의 시간을 말보다는 수많은 상징과 역동적인 영상으로 보여준다. 쉴 새 없이 멈추지 않는 카메라 속에서 무언가를 응시하는 듯하지만 이내 어두운 그늘 속에 묻혀버려 바라볼 수 없는 그들의 눈빛 속에는, 언제나 자신의 존재에 충족을 느낄 수 없는 공허한 청춘이 정체되어 있다. 마리카의 세탁소 안 격렬하게 덜컹거리는 세탁기는 여권이 없어 몸은 정작 아무데도 갈 수 없이 우뚝 서 있지만 마음속은 마구 엉킨 채 요동치는 피터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 심은 듯 심란하고, 관계할 수 없는 것들 사이에 서있는 그들의 삶은 ‘천국의 나날들’이라는 아이러니한 제목에 철저한 대조를 이룬다. 대사보다 상징과 화면과 연기로 인물의 순간의 감정을 그려내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선택이지만, 강화된 청춘의 암담한 직시는 관객을 지치게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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