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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인문사회학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그것들을 잘 모른다는 데서 시작된 묘한 열등감은 어느 순간부터인지, 거의 동시에 침습하기 시작했었다. 큰 대지를 가로지르는 질주를 통찰하지 못하고, 작은 땅뙈기만 열심히 파대고 있는 것 같았던 나날들..마음은 허했고, 가슴은 뜨거웠으나 식힐 수 있는 방안도 내게는 따로 없었다. 그리하여 시작된 체증은 오랫동안 나를 괴롭혀왔다.좋은 책이 그렇듯이,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친절하고도 부드럽게 체증의 점도를 묽힌다.
많은 정보와 지식을 수렴한 이들의 용기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신자유주의를 외치면 기득권은 더 보호될 수 있고, 철옹성은 그 누구도 무너뜨리지 못한다. 독점하고 독주하며 독식할 수 있는 그 신나는 유혹을 벗겨낼 수 있는, 지식인의 용기는 그러므로 장엄하게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세계가 결코 편평해질 수 없다고 외치는 소리는, 아이러니하게도, 무엇이든 신자유주의의 올가미만 씌우면 바로 목소리를 잃을 수 밖에 없었던 날들의 기억을 되살린다.
신자유주의의 회오리가 예상보다 너무 커지면서, 그것을 차단하려는 작은 시도조차 감히 시작할
수 없을만큼 한 때 전선은 얼어붙어버렸고, 오그라들었다는 사실, 교수님은 알고 있을까.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기 위한 공정한 룰을 찾아 보자는 제안, 가슴 떨리도록 아름다운 주장이다.
다만 눈 똑바로 뜨고 끝까지 지켜야 할 것은, 그 "주의"에 대한 지나친 경계가 공포로 변하는 순간, 진짜 현실에서 대응할 어떤 논리도 힘도 축적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그 룰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이 살아 움직일 수 있도록 약자들의 연대의식을 어떻게 불러일으킬 것인지 진중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또, 신자유주의의 물결로 점령된 파고 속에서는, 뚫고 나아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중간 단계들조차도 얼핏 보면 신자유주의적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숱하게 연출될 텐데, 그것을 어떻게 구별하고, 극복해나갈 것인지, 그런 구체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것도 중요한 과정이리라 생각해본다. 안타깝고, 불행하게도 일상을 점령한 신자유주의에 대한 과민반응이 쉽사리 끝날 것 같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