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정치학 - 피에르 부르디외의 <구별짓기> 읽기와 쓰기 우리시대 고전읽기 질문 총서 3
홍성민 지음 / 현암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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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사회 현상을 이해할 때 계급적 관점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특히 취향과 문화를 접목하여 문제를 해석하고 해결하는 데 미흡한 우리의 정치에 대한 문제의식이 책 전반을 관통하고 있다.

 

부르디외의 <구별짓기>를 인용하면서, 아비투스가 어떻게 계층을 구분하고, 권력으로 작용하는지 설명한다. 부르디외는 개인은 일상의 영역, 공공의 영역에서 일정한 성향과 인지 틀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을 아비투스라고 명명했다. 아비투스는 개인에게 육화된 성향이고, 사회적 구성물로서 개인이 사회적 공간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따라 상이한 아비투스를 갖게 되므로, 차별을 만들어내고 계급별 구별 짓기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부르디외는 학문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교육이 아비투스에 의한 차별을 강화하며문화권력의 정당성을 용인하는 수단이 된다며, 자신의 이론을 바탕으로 프랑스의 교육 개혁을 이끌었다.

 

부르디외가 연구한 프랑스의 현실과 맥락이 우리와 달라 그대로 적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적어도 왜 진보 정치가 우리 사회에서 갈팡질팡하는지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은 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 사회에 뿌리 내린 유교문화, 정치인을 향한 일반 국민의 기대감 등을 이해하고 수용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사상과 이론을 주창해도 받아들이는 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 국민의 의식수준이 개도되지 않았고, 계급적 사고에 익숙하지 않으며, 시민사회가 미성숙하다는 등의 진단이 오히려 문제라는 점을 보여준다. 큰 틀에서 보자면, 우리가 처한 역사성, 사회적 맥락 속에서 자라난 우리 국민의 아비투스가 어떻게 투영되고 진화하는지 포착하는 것이 우선일 수 있다는 것. 내용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가 어쩌면 진보 정치의 한계로 작동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을 상기시킨다.

 

또한 아비투스가 보이지 않는 차별을 가져오는 한편 권력으로 작동한다면, 역설적으로 건강한 아비투스를 만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늠하게 한다.. 선민의식, 노블레스 오블레주, 선비정신 등 한 시대와 사회를 표방하는 집결된 의식이 없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불안하고 위태로운지 보여주는 시금석.

 

고전에 대한 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각과 틀을 제시하는 총서가 꾸준히 출판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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