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과 열광 - 황우석 사태 7년의 기록
한재각.강양구.김병수 지음 / 후마니타스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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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사태는 정치적 민주주의 이후 생활 속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 자본주의, 민족주의가 일방적으로 교차하고, 거기에 뿌리 깊은 성과지상주의가 중첩될 때, 전문가와 기득권의 강고한 동맹이 어떻게 불행한 결과로 이어지는지 한편의 드라마처럼 보여준다. 특히 비판과 성찰의 문화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전문가의 폭주를 가로막을 사회적 방안이 거의 없다는 점을 뼈아프게 상기시키는 삽화이기도 하다.

황우석 사태의 이면에는 줄곧 정부의 꾸준한 비호와 언론의 지지가 있었다. 1999년 복제소 영롱이, 진이가 탄생했을 때, 김대중 대통령은 그의 노고를 친히 치하했고, 이때부터 황우석 교수는 각종 정부 부처의 굵직한 위원회, 연구 지원 등을 두루 섭렵하는 물꼬를 트게 된다. 2000-2003년까지 이종간 배아복제, 복제돼지, 광우병 내성소 연구 등과 관련하여, 노무현 대통령은 극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2004-2005년 <사이언스> 논문이 조작되고, 2005년 11월 <PD수첩>에서 의혹을 제기했을 때도,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 유수의 정치인이 ‘국익’의 이름으로 그를 지지했다. 물론 때마다 언론의 한결같은 찬사와 열화와 같은 보도가 함께 했다. IMF이후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던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고민 속에서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는, 정부의 21세기 신산업 정책의 핵심으로 자리매김 되었고, 동시에 교육과 의료의 개방을 끊임없이 요구했던 재계의 요구와도 맞물리면서 병원의 영리법인 도입, 민간 의료보험 등 의료 민영화를 정당화하는 촉매제 역할도 담당하게 되었다.

연구 외적으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지원을 아낌없이 받으면서, 성과주의는 더욱 부채질 되었고, 민주화되지 않은 과학계의 이면은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 윤리마저 무너뜨리게 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연구에 전혀 기여하지 않은 정치인, 교수가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렸고, 연구에 매진한 대학원생들이 제외되는가 하면, 난자 확보를 위해 연구원의 난자를 사용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특히 생명윤리의 관련 법률이 제대로 사회적으로 논의되지 않은 상황에서, 줄다리기 하는 동안 여성의 건강권에 대한 담론은 제대로 형성되지도 못한 채 난자가 연구에 마구잡이로 사용되었다.

연구노트의 부실, 연구 과정에서의 윤리적 기준 준수 미흡은, 오히려 연구 결과 조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디씨인사이드의 BRIC과 프레시안 등의 비판을 계기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애초에 줄기세포 복제는 이뤄진바 없고, 자료를 겹치고 늘려 조작한 것으로 판명됐다. 황우석 교수팀의 중요한 연구 결과가 논문이 아닌 주로 언론을 통해 발표됐다는 점도 황우석 사태의 단면이라 할 수 있다. 차분히 연구 논문을 검증하고 검토하는 대신, 여과 없는 찬사와 옹호 일색으로 언론까지 뒷받침되자, 과학기술과 기득권의 동맹은 철저히 은폐되었고, 난치병 치료에의 희망과 국익·민족애가 주된 국민적 정서로 굳혀졌다.

저자들의 진단 대로, 황우석 사태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응은 열광 아니면 침묵뿐이었다. 다양한 의견과 진실된 소통이 민주적인 절차와 과정을 거쳐 성찰의 담론으로 되새김질 되는 대신, ‘모 아니면 도’라는 식의 극단적인 도식 속에서 과학의료기술의 전문성, 경제적 부가가치, 애국심은 절대로 깰 수 없는 성역이 되었다.

다양성이 존중되지 않고 구호만 난무하는 무기력한 민주주의는, 성찰과 비판을 가로막아 전문가와 기득권의 동맹을 더욱 강화시키는 수단이 될 수 있다. 황우석 사태가 남긴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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