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슈얼리티와 위험 연구 나남신서 428
조병희 지음 / 나남출판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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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사회는 에이즈 대책의 변화가 게이 해방 운동과 맞물려 사회적으로 재구성되었다. 에이즈가 처음 보고되면서, 보수주의자들은 동성애자들의 성행동에 초점을 맞추고, 순결 교육의 강화, 콘돔의 사용, 의학적 치료 등에 대하여 강조하였고, 이에 맞서 동성애자들은 인권의 측면에서 안전한 성의 개념을 기반으로 대응하면서, 에이즈에 대한 왜곡과 편견을 불식시키려는 노력이 상당 기간에 걸쳐 지속되었다. 특히 이러한 사회적 재구성과정에서, 에이즈에 대하여 단순하게 생의학적으로 접근하는 대신, 사회적 맥락을 고려한 다면적인 정책 대안이 모색되어야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에이즈에 대하여, 외국에서 들어온 괴질로 인식되면서, 진보 진영의 반미 민족주의까지 교차·증폭되어, 진보든 보수든 에이즈에 대한 과대한 공포 현상에 대하여 성찰할 기회가 적었다. 특히 언론의 보도는 더욱 과장되었고, 통제, 색출 중심의 에이즈 관리 대책은 에이즈에 대한 공포와 편견을 확장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한 셈이 되었다.

서구 사회에서는 이미 에이즈를 만성 질환으로 인식하고, 잘 관리하면 삶의 질을 그대로 누리며 생활할 수 있는 것으로 그 의미를 변화시켰으나, 여전히 우리 사회는 에이즈는 치명적인 질환으로 각인되어 있고, 주로 문란한 성도덕에서 기인한 것으로 낙인찍어 실제 에이즈에 이환된 환자들의 인권과 생존권은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에이즈 환자에 대한 편견이 증폭된 상황이다 보니, 에이즈 바이러스에 노출된 경우 오히려 꽁꽁 숨어 자신의 상태를 숨기는 기제까지 작동하고 있다. 결핵은 에이즈보다 훨씬 발생 빈도도 높고, 치사율도 높지만, 단순한 전염병으로 인식되어 일반인의 공포가 크지 않은 반면, 에이즈는 이미 만성 질환의 형태로 이환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수적인 성 가치관을 가진 우리 사회에서, 마치 천형이라도 받은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전 세계에 거의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에이즈 예방법을 입법한 우리나라에서도, 안전한 성을 실천하도록 동기화하고, HIV 신규 감염 증가를 억제를 목표로 비감염자에 대한 교육 및 건강증진의 방식을 강화하며, 만성질환의 성격으로 이환된 점과 감염자 개인의 인권을 보호하는 측면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이러한 문제의식을 정부 입법안 및 정당 입법안(민노당)에 담고자 노력하였으나, 지역사회의 참여적 정책 수립이나, 중장기 예방 전략의 수립, 적극적인 에이즈 낙인의 제거 등에 대한 전향적인 고려는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

에이즈를 통해, 생의학 모델의 권력적 접근으로는 성을 금기시하고, 억압함으로써, 에이즈에 대하여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며, 오히려 환자 및 감염자, 주민 등이 스스로 참여하여 사회적, 구조적으로 질병의 의미를 재해석하고, 생활에 밀착된 정책 대안을 생산할 수 있도록 소통과 협력이 강화되어야할 필요성을 깨닫게 된다.

질병은 단순하게 생의학적 도식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며, 사회적, 구조적으로 재구성되며, 인식된다는 사실을 에이즈를 통해 살펴봤다. 특히 에이즈에 대한 생의학적 모델과 사회의 편견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자신들의 자유와 인권의 문제로 재해석하고, 나아가 정체성을 확립하는 계기로까지 확장시킨 동성애자들의 운동의 역량에 놀랐다. 이제는 보건의료에 있어서 단순히 질병의 치료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담긴 편견과 낙인, 공포와 불평등을 읽어내고 사회적 맥락과 조건을 투영하여 접근하는 방식을 고민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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