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의 꿈 열린책들 세계문학 123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박종소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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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중 처음으로 공연되었으며, 그의 아내의 증언에 따르면 그가 종종 이 소설의 주요 인물인 늙은 공작처럼 연기하는 것을 즐겨했다는 설명은, 독서의 도화선이 되기에 충분했다. 


소설의 줄거리는 매우 간단한다. 신분 상승의 천박한 꿈에 젖은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나이 들어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공작의 새로운 신부로, 자신의 딸인 지나이다 아파나시예브나가 적합하다고 생각하고 어떻게든 노인 공작에게 시집을 보내려고 애쓴다. 


그녀는 온 동네가 알아주는 허영심 많은 전략적 인물로, 침상에서 죽어가는 가정교사를 사랑하는 딸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오락가락하는 공작의 기억을 조작하고, 공작이 얼렁뚱땅 자신의 딸과의 결혼을 대중 앞에서 발표하도록 온 힘을 기울인다. 주도면밀한 그녀는 남편인 아파나시 마뜨베이치에게도 공작을 집에 초청했을 때 해야 할 말들을 미리 일러주지만, 그는 융통성이 없는 데다 통찰력도 부족하여 우스꽝스러운 면모만 보여준다. 


한편 지나이다 아파나시예브나를 마음에 두고 있던, 비열한 관리 모즈글랴꼬프는 그녀에게 청혼하고 답변을 기다리던 중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의 계략을 몰래 듣게 된다. 이에 격분한 그는 공작을 설득해서 그가 지나이다에게 청혼한 것은 꿈에서 했던 것이라고 공표하게 함으로써, 마리야의 모든 계획을 훼파한다. 


이 모든 소동이 지나가고 이후 빠벨 알렉산드로비치 모즈글랴꼬프는 모르다소프를 떠나지만 여전히 색을 좇고 청혼하며 퇴짜를 맞는 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다가 멀리 떨어진 지방의 도시 시장 부인이 주최하는 무도회에 갔다가 충격을 받는다. 눈부신 야회복을 입고 온몸에 다이아몬드를 반짝이면서 거만하게 자신을 맞은 시장 부인이 지나였기 때문. 그러나 그녀는 최상류 사회 출신의 어머니를 둔 고상한 자녀로 둔갑되어 있었다. 자신을 알아보고 잠시 흠칫했지만 이내 빼쩨르부르그의 지체 높은 공작의 이름을 들먹이고 고관들과 어울리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무도회에서 돌아온 모즈글랴꼬프는 울적하고 허탈감에 빠져, 출장 명령을 받자마자 황급히 떠난다. 도시를 떠나면서 공상에 빠진 그는 세 번째 역에 이르자 다시 본연의 자신으로 돌아온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들의 욕망은 서로 부딪히며, 욕망은 각자의 삶을 추동하는 중요한 동기로 작동한다.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딸을 통한 신분상승을, 늙은 공작은 아가씨와의 결혼을, 모즈글랴꼬프는 지나와의 결혼을 꿈꾸다 좌절하자 마리야의 계획을 실패로 견인하는 데 집중한다. 욕망들은 뒤엉키고 대립하면서 소설가의 표현대로 '메피스토펠레스의 조소'와 같은 결말로 나아간다. 


아마 마리야의 실패와 모즈글랴꼬프의 성공에서 소설이 마무리되었다면, 매우 밋밋했을 것 같다. 그런데, 노련한 작가는 마리야가 놀랍게도 부활하여 지나이다를 장군의 아내로 시집보내는 데 성공한 결과를 보여줌으로써 모즈글랴꼬프 뿐만 아니라 독자의 허를 찌른다. 더구나 순수한 사랑을 갈구하는 것 같던 지나이다는 모즈글랴꼬프를 한 숨에 제압할 정도로 농염한 귀부인으로 변신해 그 생활을 마음껏 즐기는 것으로 그려진다. 모녀의 달라진 삶에 놀란 모즈글랴꼬프 역시 잠시 충격을 받을 뿐, 다시 여정을 떠나면서 다시 본성으로 돌아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작가가 개인의 욕망을 세밀하게 조망하는 부분도 탁월하다. 가령 지나가 사랑한 가정교사는 죽어가면서도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데, 그는 아름다운 죽어감을 위하여, 오랫동안 가슴에 병이 있었음에도 그대로 두었음을 고백한다. 그는 다른 방식이 아니라, 폐병에 걸려 죽게 되면 지나가 자책하면서 자신을 찾아와 무릎을 꿇게 될 것이고, 그러면 자신은 그런 그녀를 품에 안고 서서히 죽어가는, 달콤하고 로맨틱한 장면을 연출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개인의 욕망들은 마치 지류가 합류하여 강으로 나아가듯 어느새 한 줄기로 합쳐져, 사랑의 퇴색과 도구화를 철저히 뒷받침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악은 별도로 존재하는 것일까. 악은 의식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일까. 대작가는 단순한 이야기 속에도 큰 질문을 감춰둔다. 

어쩐지 그는 자존심이 상하고 모욕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춤을 추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울적하고 허탈감에 빠진 듯한 표정과 메피스토펠레스의 조소와 같은 웃음이 이날 저녁 내내 그의 얼굴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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