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브리치 세계사 즐거운 지식 (비룡소 청소년) 17
에른스트 H. 곰브리치 지음, 클리퍼드 하퍼 그림, 박민수 옮김 / 비룡소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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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을 평가하는 여러 기준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책을 통해 사고나 관점의 전환이 있었는가 하는 점이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허튼 생각을 즐겨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나는, 종종 현대인의 우울은 너무 세미한 들여다보기의 습관 내지는 문화가 일부 일조하고 있지 않을까 짐작해볼  때가 있다. 온갖 미디어를 통해 실시간으로 시야에 들어오는 '현재'의 모습을 뒤로 하고, 잠깐만 멀리서 또는 높이서 '지금'을 조망할 수 있다면 한결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 한껏 우울하고 힘겨울 때 역사서를 읽으면 어떨까. 


이 책은 누가 뭐래도 그 허튼 생각을 뒷받침하는 굳건한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줌 앤 아웃이 명확한 장점이 있다. 세세하게 시대를 구분하고, 특징을 비교하며 어떤 교훈을 끌어내는 방식의 역사서가 아니라 저자의 손녀가 저자의 서문을 인용한 대로, 학교에서 읽히는 교과서와는 전혀 다르다. 저자가 손자, 손녀들에게 들려주듯 이야기 형식으로 쓰여 있어 이해하기 쉽다. 


그러므로 이야기 형식의 장점을 적절하게 살려낸다. 인위적으로 시기를 구분하는 대신 시대 전환의 배경과 현상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또 화자의 재치 있는 평가가 이야기에 첨언되어 사뭇 진지해질 수 있는 분위기를 유쾌하게 전환한다. 역사는 암기로 기억해야할 학문이 아니며, 사람들이 살아가고, 싸워내고, 지켜냈던 이야기라는 점도 꽤 근사하게 인식시킨다. 


가령 왕과 교황의 다툼 이면에 놓인 토지 분배와 사제 임명의 권한 분쟁이라든지 오스트리아의 뒤늦은 제국 확장 의지와 1차 세계 대전의 발발, 독일 연방을 해체하고 제국을 세운 비스마르크의 분명한 목적 의식, 나폴레옹과 그 형제들의 지배 등 각 장마다 독서의 흥미를 유발하는 숱한 뒷 이야기가 숨어 있다. 


다만, 세계사라기 보다는 유럽사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 저자에게 조금만 더 풍성한 시간과 여유가 있어 한, 중, 일의 역사를 다루거나 동남아시아나 남미 역사 등을 다루었다면 어땠을까 아쉬운 상상도 하게 된다. 


역사가 품고 있는 다양한 이야기는 승패, 흥망의 어떤 원리가 들어맞는 것처럼 느껴지다가도 우연한 기회와 뜻하지 않은 영웅의 출현으로 한순간에 뒤집히기도 한다. 게다가 100년도 못 사는 인간들이 얽히고 이어져 장구한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을 상기하면 어떤 힘에 압도되는 것 같은 전율도 느끼게 된다. 돌아보면 억울하고 원통할 일이 무엇이 있을까. 나와, 너, 그리고 우리의 삶은 한 데 모여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들려줄 짜릿한 이야기가 될 것인데. 

이 책은 학교에서 사용되는 역사 교과서를 대신할 의도로 집필된 것이 아니다. 이 책은 학교에서 읽히는 교과서와는 전혀 다른 목적을 갖고 있다. 나는 독자들이 필기를 하고 또 이름이나 연대를 외워야한다는 부담 없이 느슨한 마음으로 읽어 나가기만을 바란다. 그리고 제대로 읽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꼬치꼬치 질문을 하지 않으리란 점도 약속하겠다.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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