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르게네프 단편집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이반 투르게네프 지음, 김민수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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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아름다움은 결코 고정되어 있지 않다. 문장의 수려함, 서사의 짜릿함, 매력적인 주인공 등 그 기원은 작품마다 특색 있고, 작가마다 다르다. 그러므로 감동은 매번 새롭고 다채롭게 변주되어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준다. 


<투르게네프 단편집>이 주는 감동은, 사냥꾼인 주인공이 관찰자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서정적인 자연과 소박한 삶의 풍광, 인간의 한계와 고뇌, 불행과 아픔 속에서도 기어이 살아내는 사람들의 강인함을 담백하게 표현하는 작가의 역량에서 기인한다. 철학적 문제 의식을 점화해 문학적 장치로 고양하는 대신, 수기를 쓰듯 차분하고 평온하게 기록함으로써 더 큰 울림을 준다. 


이 책에는 <가수들>, <만남>, <베진 초원>, <산송장>, <숲으로의 여행> 등 총 5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각각의 작품은 모두 별개의 작품이지만, 사냥꾼인 주인공이 모두 겪은 내용으로 묶여 있어 실상은 하나의 장편으로 이해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가수들>은 음악적 재능을 뽐내는 시골 주막 안의 손님들에 대한 이야기다. 허름한 시골 주막 안에서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지만 서로 노래를 뽐내고 긴장하면서 모두가 함께 즐기는 모습이 그려진다. 


<만남>은 순진한 시골 아가씨인 아쿨리나와 귀족의 시종이면서, 자신이 뭔가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거드름을 피우는 빅토르 알렉산드리치의 이야기다. 이별의 선물로 아쿨리나가 수레국화를 엮어 가져오지만, 그는 그녀가 원하는 친절한 작별 인사도 없이 상관을 따라 도시로 가야한다면서 어깨 으쓱 한번 하고는 매정하게 떠나간다. 


<베진 초원>은 주인공이 길을 잘못 들었다가 만난 다섯 아이들의 대화를 기록하고 있다. 밤새 말을 지키는 아이들은 귀신, 물의 요정, 익사한 사람, 괴물 이야기를 이어나가며 고단한 소임을 다한다. 안타깝게도 이 중 한 소년이 후에 말에서 떨어져 사망했다는 소식도 전한다. 


<산송장>은 권정생 선생님이 극찬한 작품으로, 어느날 갑자기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어 침대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는 루케리아의 이야기다. 그녀는 7년 동안 누워 지내면서도 자신은 눈과 귀가 멀쩡한 데다, 죄도 짓지 않게 된다면서 온종일 여러 생각을 하면서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고백한다.주인공인 사냥꾼이 병원으로 데리고 가겠다고 해도 그녀는 자신을 불쌍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면서 속으로든, 소리를 내든 노래도 부른다고 이야기할 정도다. 그녀는 꿈에서 부모님도, 죽음도 만나는 환영을 보게 되는데, 몆 주 후 죽게 된다. 사람들은 그녀가 모든 것에 고마워한다고 전하면서 그녀가 죽은 날 5킬로미터가 넘는 교회에서 평일인데도 종소리를 들었다고 말한다. 


<숲으로의 여행>은 사냥꾼이 혼자서 숲에 떨어져 있으면서 인간이 사라져도 그대로일 자연 앞에서  인간의 고독함, 나약함, 우연성 등을 느끼게 되는 과정과 콘드라트, 예고르와 함께 사냥을 떠나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특히 예고르는 근동에서 제일 가는 사냥꾼으로 다부진 체격의, 말수가 적은 이로, 아내가 계속 아프고, 아이들은 죽어갔으며, 소설 말미에는 마지막으로 남은 암소마저 죽었지만, 이 모든 사정을 자신의 입 밖으로 내지 않는다. 사냥꾼은 동물도 혼자 죽어가듯 인간도 생의 불행을 겪게 되더라도 침묵할 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예고르의 모습을 모면서 불행을 감출 줄 아는구나, 라며 감탄한다. 


작품을 다 읽고 나면, 평론가들의 주장대로 마치 수채화 연작을 본 것만 같은 느낌이다. 산뜻하고 청명하지만, 그 안에서 쓸쓸함과 애잔함, 동시에 소박함과 웅장함을 동시에 맛본 것 같은 느낌.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이 생생한 소리가 나를 놀라게 했고 나의 모든 존재를 기쁨에 들뜨게 했다. 실상 나는 알 수 없는 어두운 심연에 빠져 있었다. 그곳에서는 사방이 적막했고 그 어떤 영원한 슬픔의 신음만이 나직하게 그리고 끊임없이 들려왔다...정신이 아찔해졌지만 거부할 수 없었다. 그 때 갑자기 친근한 부름 소리가 내게 들려왔다. 그 누군가 힘찬 손길이 단 한번에 나를 신의 세계로 끌어내었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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