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의 배신 - 무병장수의 꿈은 어떻게 우리의 발등을 찍는가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조영 옮김 / 부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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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가능성은 무한한 꿈과 희망의 근거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현실에 잇댄 진실의 좌표를 마주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는 죽비로 치듯 인간의 한계성에 대해 주기적으로 말할 필요성이 있는데, 저자는 과감하게도 악역을 자처한다. 


건강의 다양한 결정 요인을 차치하더라도, 스스로 건강을 디자인하고, 관리하며 나아가 무병장수까지도 이루어내리라는 상상은 생각만 해도 결연한 의지에 불을 당긴다. 건강은 어느 순간부터 개인을 지배하는 세밀한 권력이 되었다. 건강을 향한 욕망은 다른 욕망과 다르게 선하게 포장되기도 한다. 더구나 건강이라는 목표가 내포한 순결성 때문에 건강을 위한-그것이 정말 건강을 위한 것인지 불분명할 때도 있다-수단은 놀랍게도 무조건 정당화되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건강이, 구체적으로 무병장수가 가능한 꿈인가, 저자는 꼼꼼한 자료와 근거를 제시하면서 건강 우선주의가 구가하는 권력을 해체하고 건강에 집착함으로써 무너져가는 우리의 일상과 인생, 사회의 단면을 추적한다. 


저자의 날카로운 시선은 목차에 고스란히 표현되는데, 의료화된 삶, 의례가 된 의료 행위, 과학이라는 허상, 운동에 미친 사람들, 마음 챙김 광풍, 도덕적 결함으로서의 질병, 갈등과 조화의 장이 된 몸, 세포들의 반란, 아주 작은 마음들, 성공적인 노화, 자아의 발명과 자아를 넘어선 진짜 세상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화학, 물리학, 생물학을 전공한데다가 예산 정책 분석, 건강권 NGO 활동  교수와 작가의 이력을 거치면서 학문과 현실, 이론과 사회를 넘나드는 통합적인 시각을 고스란히 투영하고 있다. 


의료화의 개념은 어느 정도 확산되었다고 해도, 병원의 진료와 치료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의료 의례에 대한 시각은 신선했다. 뷔페식 건강 검사나 프라이버시 규칙을 어기는 사례, 기계화된 몸을 지배하는 의료 권력, 특히 여성이나 사회적 소수자가 겪는 환자의 일방적 복종 등은 생각해볼 문제다. 


증거기반 의학이나 실험 의학에 의해 포착되지 않는 증상을 설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환자의 내러티브가 과연 충분히 반영되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제기와 함께, 통계가 제시하는 평균의 함정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성찰을 통해 의학이 정말 과학인가에 대해 질문한다. 


또 몸을 통제하고 과시함으로써 계층을 드러낸다거나 마음챙김의 광풍과 더불어 마음을 물질처럼 다룰 수 있다는 생각의 난점, 건강이 중요시되면서 질병이 개인의 책무를 등한시한 것처럼 여겨지는 문제점 등은 익숙한 관점이지만, 세포와 유기체에 대한 이해 방식은 전혀 새로운 내용이었다.


세포들이 유기체 전체의 이득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고, 살아 있어 순전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방식이 유기체의 생명 현상이라면, 세포는 유기체의 부분이 아니고 일종의 동맹체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 이러한 관점을 적용하면 몸은 하나의 목표를 위해 서로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기계가 아니고, 각자 연합하며 반목하는 장이 되는 것. 실제 저자는 전공의 전문성을 살려 암의 전이에 지대한 역할을 하는 면역 세포, 즉 대식 세포의 반란을 생생하게 소개한다. 


암과 싸우는 면역 체계의 강화가 아이러니하게도 대식세포가 암 세포와 공모하도록 돕는다는 연구를 소개하는데, 물리학의 관점을 적용해 원자가 자유롭게 부유하는 것이 마치 어떤 의지를 가진 것처럼 보이듯이 세포 역시 원자처럼 어느 순간 돌변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한다. 대식세포는 면역을 담당하다가 어느 순간 유기체를 파괴하하기도 한다는 것. 우주까지 확장된 물리학적 사고가 왜 몸 안에는 투영될 수 없다는 것인가.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몸을 이해하는 방식은 전면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저자는 건강한 노화가 정말 가능한가에 대하여도 진지하게 질문한다.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어떻게 운동해야 하는지 지침이 끊임없이 수정되고 있는데, 정말 해답을 알고 있는 것일까. 또 성공적인 노화를 위해 비즈니스만 횡행하는 현실을  보여주면서 자아의 발명 내지는 발견을 통해 21세기 새로운 숭배의 대상으로 떠오른 자아에 대한 통렬한 비판도 주저하지 않는다. 자신을 충족시키고, 자신을 위해 시간을 내고 자신을 축하하라는 신흥 종교적인 자아에 대한 믿음은, 일종의 상품으로 변주되면서 자아라는 감옥에 갇힌 현대인의 민낯을 드러낸다.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은 상상할 수도 없고, 자기 소멸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해져 자아 이외에도 생명력이 넘치는 세상을 간과하는  불행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드높인다. 지구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주어진 시간을 살다 조용히 떠나가는 겸허함이 필요하는 주장에 공감하게 된다. 


가히 건강 파시즘이라고 불러도 이상할 것 없는 건강 열풍 속에서 건강의 개념과 철학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산다는 것의 의미를 재구성해볼 수 있도록 이끄는 좋은 책.

우리가 여기서 배울 교훈이 있다면, 그건 바로 겸손일 것이다. 우리가 과시하는 지성과 복잡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 자신과 다른 것들의 운명에 관여하는 유일한 존재가 아니다. 당신은 열심히 운동하며 의학적으로 유행하는 식단을 꾸릴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난 벌에게 쏘여 죽을 수 있다. 당신은 건강한 사람으로서 귀감이 된다는 의미로 날씬할 수 있지만 그와 동시에 당신 몸 안의 대식세포는 초기 종양과 동맹을 맺기로 결정할지도 모른다...생략..우리가-개인적 습관을 통해, 그리고 아마도 궁극적으로는 면역세포들이 보다 책임감 있게 행동하도록 만들어줄 의학 기술을 통해-이러한 갈등으로 생기는 결과에 영향을 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을 통제할 수 없다. 또한 우리는 그것이 가져다줄 불가피한 결과, 바로 죽음을 미리 막을 수도 없다. -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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