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헌법 - 대한시민 으뜸교양 憲法 톺아보기
차병직, 윤재왕, 윤지영 지음 / 지안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법치주의, 상위법 우선의 원칙, 법률 우위의 원칙.. 몇 가지 법 원칙을 아는 것 외에 딱히 법률을 찾아보거나 법원에 근거해 법의 체계를 뒤쫓는 일은 줄곧 논외로 생각했다가, 헌법 개정이 사회적 화두가 된 후 다시 한번 헌법에 대해 읽어야겠다는 막연한 욕심이 생겼다. 


우리 사회의 큰 화두를 바꾸게 될 헌법 개정 논의가 잠깐 사회적 이슈를 끄는가 싶었지만, 여전히 여러 지난한 정치 공방에 막혀 지지부진한데다가 개정의 논의도 주로 정치 체제 중심으로 모아지는 것 같아 더더욱 독서 의지에 불이 붙었다고 할까. 다양한 지표는 경제적, 물질적 부의 성장을 보여주고 있지만, 어찌된 일인지 살아가는 데 있어서 권리나 권익은 크게 향상된 것 같지 않은 느낌은 도대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나름 뿌리를 찾던 차에 마주하게 된 책이다. 


저자들은 우리가 사는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정책이나 제도들의 외연을 만드는 가장 바깥쪽의 테두리인 헌법을, 암기식 고준담론이 아니라 시민의 눈높이에 맞추어 에세이식으로 기술하였다고 소개하면서 독자들이 책을 읽고 난 후 우리가 만들어야할 헌법의 현실을 꿈꾸어나가기를 희망한다. 


이 책은 헌법의 전문, 총강, 국민의 권리와 의무, 국회, 정부, 법원, 헌법재판소, 선거관리, 지방자치, 경제, 헌법개정, 부칙의 순서대로 조문을 세세히 설명하고, 다시 조문에 대한 주석, 그리고 조문과 관련된 사회적 사건이나 이슈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다. 또 일부 조문의 경우에는 법률의 명확성에 근거하여 간결하고 명료한 조문으로 바꿀 것을 제안하기도 한다. 


가장 눈길을 끈 부분은 아무래도 국민의 권리와 의무가 규정된 제2장으로, 우선 제11조제2항 사회적 특수계급의 불인정 조항, 제11조제3항 훈장 등의 효력 및 특권에 대한 조항 등에 대한 설명이었다. 실제로 신분제가 철폐되었지만, 경제적 불평등이 가중화되는 상황과 연결하여 형평성을 제고하는 방식으로 개정해야 하며, 귀족이 사라진 시대 훈장에 대한 조항의 불필요성 등이 설득력 있게 제시되어 있다. 


한편 국민의 주요 권리 중에 건강권이 단순히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가 있다거나,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한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고 기술되어 있는데, 관련 조항은 시대적 흐름에 발맞추어 새롭게 개정될 필요성이 있다는 데 생각이 더해졌다. 잘 산다는 것이 단순히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개인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이 모아지고 있는 시점에서,  역량 발휘의 핵심이 되는 건강 보장에 대한 권리와 사회적 책무가 보다 구체적으로 헌법에 명시될 필요가 있겠다. WHO가 제시하는 건강에 대해 알 권리, 건강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 건강 서비스를 받을 권리를 바탕으로 우리 헌법을 살펴보면, 건강의 3대 권리가 제대로 구현되고 있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테크노크라트의 등장도 주의 깊게 생각해볼 주제다. 국가 운영에 필요한 법률안을 ,국민의 대표인 국회보다 전문지식과 과학기술을 갖춘 엘리트 공무원들이 정책 수립 및 필요 입법을 주도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새로운 시대, 정부나 국회뿐만 아니라 새로운 입법 주체들을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규정하고 있지만, 테크노크라트는 사실상 정치적 권력을 구사하고 있는 격인데다 여전히 '국민의 지배'가 아니라 '왕 또는 어떤 지배층의 지배'가 익숙한 것 같은 우리 정치 문화를 돌아보며 잠깐 엉뚱한 상상도 했다. 


헌법 제119조제2항 경제의 민주화 부분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적정한 소득 분배와 더불어 경제 주체간 조화를 통해 경제 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조문은 그 의미를 제대로 되살려내야할 부분. 우리 헌법이 엄연히 경제 민주화를 지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 불평등이 심화되고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다면, 이에 대한 엄중한 인식과 성찰이 필요하다. 


이 책의 새로운 개정판이 나왔다는 반가운 소식도 있지만, 저자들의 문제 의식은 크게 바뀐 것 같지 않다.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헌법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제대로 목소리를 내야한다는 것. 헌법 개정의 논의가 다시 이루어질 때, 정치 체재의 변화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장하거나 또는 외면하고 있던 주요한 규정들의 진의를 되살리려는 노력이 좀더 치열해졌으면 하는 희망도 갖게 된다. 

헌법은 단순한 법률이 아니다. 꼭 필요한 내용만 갖추었다고 우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그렇다고 헌법이 문학 작품일 수도 없다. 그 문장과 내용이 아무리 멋지고 아름다워도 그대로 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헌법을 바람직한 삶의 규범으로 만드는 것은 결국 실현의 의지다. 그 헌법을 만들어 지니고 있는 모든 ‘나‘의 의지가 실제의 헌법 현실을 창조한다. 그래서 헌법을 읽어야 한다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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