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게 살자, 고민하지 말고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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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 영화감독과 영화배우의 영화같은 사랑이야기로 시끄러운 한주였다. 연예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시끄러운 사건이 되었다. 그것은 아마도 두사람의 나이차보다도 한 사람이 결혼을 한 상태였기 때문일 것이다. 즉 불륜인 것이다. 간통죄가 없어진 지금 그들의 사랑은 더이상 죄가 아닌걸까. 아니면 두사람의 사랑으로 인해서 여러 사람이 고통을 당했으니 근본적인 죄는 남아 있는 것일까. 그들의 사랑의 유효기간은 어디가 끝일까.

 

현실에서의 불륜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인다. 누구라도 마찬가지일것이다. 남녀의 구별은 따로 필요하지 않다. 누구라도 한 가정이 유지가 되고 있는데 끼여들었다면 그것은 끼어들기 사고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문학에서의 불륜은 어떨까. 글 속에서, 책속에서의 불륜 말이다. 그것은 때로는 범죄사건의 빌미를 마련하기도 하고 시들해진 사랑에 불을 붙여주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여러 작가들의 뷸륜을 소재로 해서 글이 있겠지만 나는 에쿠니가오리의 책속에서 보이는 불륜을 좋아한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에쿠니 가오리는 어떤지 모르겠다. 나만의 관점에서 보는 그녀의 글은 [불륜의 미학]을 드러낸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녀의 글을 좋아한다. 내가 처음 보았던 그 내용이 불륜이 드러나지 않은 다른 책이었더라면 나는 아마도 그녀의 책에 빠져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누야마 집안에는 가훈이 있다.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나 그 때를 모르니 전전긍긍하지말고 마음껏 즐겁게 살자. 그 가훈을 자매는 각각 자기만의 방식으로 신조 삼았다. (11p)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딸로 이어지는 삼대의 이야기를 몇권 읽었다. 이번에는 세자매의 이야기이다.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다른 일을 하면서 다른 곳에서 살아가는 그들 자매는 생활하는 방식도, 생각도 다르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상대를 비난하지 않는다. 그저 자기만의 방식대로 살아가지만 누군가 동기간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똘똘뭉쳐서 그 모든 것을 이겨내려고 노력한다.

 

평범한 사무직인 막내, 어려서부터 그저 남자란 어떤 존재일까를 외치며 친구의 남자와도 자는 등 자유분방한 생활을 즐기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앞집에 사는 평범한 주부의 모습을 동경한다. 외국계회사를 다니면 뛰어난 커리어우먼인 둘때. 글을 쓰는 남자와 동거중이지만, 사랑하는 것도 맞지만 결혼하자는 프로포즈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지금으로도 충분히 좋으니까 그렇게 매이고 싶지 않은 것일까.

 

유일하게 결혼을 한 큰언니. 남들 보기에는 평범하고 행복해보이는 가정이지만 목을 조르는 남편이 있다. 가정폭력인것이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자매들의 모임에도 나가지 않고 남편의 눈치를 보는 등 제대로 된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어딘가로 갈 수 없다. 그저 남편을 생각하면 행복하고 남편에게 무엇인가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런 대접을 받더라도, 때라고 조르고 침을 뱉더라도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니까 하면서 그냥 넘겨버리고 만다. 이 모든 것은 사건의 발달이 된다.

 

언니와 동생으로 이루어진 자매는 남매보다도 특별한 존재일 것이다. 같은 여자라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은 더욱 친민한 사이가 되지 않을까. 누구보다 친한 친구처럼 여겨질수도 있고 때로는 엄마처럼 돌보아줄 수도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 [작은 아씨들]을 보면서 네자매의 생활을 부러워했던 적이 있었다.

 

이 세자매도 앞으로 또 다른 많은 일들을 마주치게 될 것이다. 그때마다 세자매가 있어줌으로 해서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 집안의 가장 큰 문제는 아버지였지만 가훈 하나는 끝내주게 잘 지은 것 같다. 즐겁게 살자. 오늘 하루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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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서 온 아이
에오윈 아이비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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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은 여러 곳에서 자신의 이야기의 모티프를 따온다. 그것이 자신이 오래 전에 읽었던 동화이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의 삶이 될 수도 있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삶이나 또는 물건이 될 수도 있다. 이 작품은 러시아의 '눈소녀'라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여졌다고 할 수 있다. 백설공주로 변형이 된 원전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 소설을 모르는 나는 읽으면서 두가지 이야기를 생각했다. '피노키오'와 '엄지공주'

 

제페토 할아버지는 왜 피노키오를 만들었는지 기억나지는 않는다. 외로워서 그랬던가. 할아버지가 만든 나무인형은 생기를 얻었고 아이로 변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그 말썽장이 아이를 키웠다. 할아버지 혼자서는 참 감당하기 힘든 아이였을텐데 자신이 만든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어던 것일까. 엄지공주는 이와는 조금 다르다.

 

아이가 없는 한 부부가 있다. 그들은 아이를 너무나도 원해서 정말 작은 엄지손가락만한 아이라도 있기를 바랐다. 그들의 소원은 이루어져서 정말 작은 엄지공주가 태어났고 그들은 아이를 바랐던 만큼 성심성의껏 그 아이를 키웠다. 아이가 없는 집에서 아이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아이를 키우는데 돈이 얼마가 들고 또 환경이 힘들어서 아이를 키우지 않는 집도 늘어난다지만 그에 비해 난임도 늘어서 아무 이유없이도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집도 늘어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여기 한 부부가 있다.오래전 자신의 아이를 낳자마자 잃은 부부. 그들은 그 이후로 둘이서 서로 의지하며 살아왔고 지금 알래스카라는 이 척박한 땅에서 오로지 둘의 힘으로 살아가려고 노력중이다. 이들이 살기에는 계절이 좋지 못하다. 다른 나라에서의 겨울도 힘든 법인데 하물며 알래스카는 어떠하겠는가. 남편은 광산에서라도 일을 해보려고 하지만 가까스로 잡은 무스 한마리로 인해서 조금은 숨통이 트여진다. 알래스카에서 농부의 겨울이란 사냥과 저장해 둔 곡식으로 견뎌내는 것이다.

 

눈이 아주 많이 온 어느날. 그들은 눈사람을 하나 만들고 그 이후로 이 추운 계절에 밖에서 돌아다니는 여자아이 하나를 보게 된다. 그아이는 인간인가 아니면 그들이 잘못 본 환영인가. 유일하게 친하게 지내는 이웃 가족은 이 근처에 그런 여자애는 절대 없다고 말한다. 그들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 추운 계절에 밖에서 지내는 여자아이라니. 말이 안 되지 않은가. 그러나 그들은 계속 꼬마가 남긴 발자국을 보고 나갈 때마다 그녀를 보게 된다. 그 꼬마 여자아이는 대체 누구일까.

 

어느날 자신의 집앞에 놓인 죽은 토끼를 보고 남편은 집어서 버리지만 나중에야 그것이 그 꼬마아이가 가져다 놓은 것임을 알게 된다. 이부분은 오래된 동화를 생각나게 한다. 신발가게 아저씨가 일을 하다 놓아두고 잠이 들었더니 요정들이 와서 그 신발을 완성시켜 놓았다던 이야기. 그래서 부부가 요정들을 위해서 신발과 옷을 만들어서 두었다는 그 이야기 말이다. 부부가 그 꼬마아이를 찾는 것은 당연해보인다. 아이가 없는 이 집에 그 아이가 와서 같이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부의 바람은 이루어질까.

 

알래스카에 대한 묘사가 아주 구체적이고 세부적이다. 작가가 그 땅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알래스카에서 태어났고 자라고 지금도 살고 있다. 이 책에서 그려내고 있는 오래전의 알래스카와 작가가 살고있는 지금의 알래스카는 전혀 다른 도시일 것이다. 예전에는 아무것도 없는 그런 황폐한 땅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교통의 중심지이자 관광지이기도 하다.

 

언젠가 아는 선배에게 여행가야 할 곳 한 곳을 꼽는다면이라고 물어봤을때 알래스카를 추천해주었다. 추운 곳을 싫어하는 나로써는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는 도시여서 그냥 넘겨버리고 말았는데 다시 한번 이 알래스카라는 곳이 궁금해졌다.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겠지만 왠지 모르게 눈의 소녀인 파이나를 찾아볼수 있을 것 같다.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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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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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적이다. 현실적이다. 세부적이다. 역사적이다. 이 모든 단어를 다 포함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옥타비아 버틀러의 단편집을 먼저 읽었다. 짧게 이어지는 이야기의 뒤에 적힌 그녀의 후기가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짧게 끝나도 길게 생각되는 이야기의 여운이 남았다. 장편은 어떨지 궁금했다.

 

이 장편. 역시 단편보다 훨씬 좋다. 아니 그 속에 빠져들고 말았다. 판타지 ,sf이런 장르를 즐겨하지 않는 나조차도 빠져들만큼 매혹적인 이야기에 한동안 빠져들었다. 그럴수 밖에 없었다. 분명 이 이야기는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묘사가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이런 설정이 현재에도 지속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타임슬립'이라는 이 흔해빠진 모티브를 쓰면서도 전혀 진부하지 않다. 오히려 새로운 느낌이 든다. 어떻게 이 작가는 이런 식으로 글을 쓸 수가 있었던 것일까. 이야기가 사실적인데는 아마도 주인공과 작가의 동일함이 가장 큰 특징일것 같다. 이십대의 흑인작가. 그녀는 백인 남편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지금 이 시대에서는 그렇게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설정이다. 물론 부모나 친지의 반대가 있었을지라도 법에 위촉되는 행동도 아니다.

 

따로 살던 그들이 막 새 집에 들어왔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이 그녀의 생일이었다. 딱히 뭐 크게 준비하지 않은 그들은 그냥 짐을 풀며 이야기를 하고 있던 찰나였다. 그녀가 이상한 느낌을 받은 것은. 현기증이 나며 땅이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던 그녀는 어느샌가 자신도 모르는 곳에 와 있다. 바로 앞에는 강이 있고 거기에 어떤 한 아이가 떠내려 가고 있다.

 

자신이 어디 있는지 생각도 하기 전에 그녀는 본능적으로 아이를 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강에 뛰어든다. 아이를 구해온다. 숨을 수지 않는다. 인공호흡을 하고 심장 압박을 해서 겨우 아이를 살려낸다. 백인 아이다. 아이의 부모는 그녀를 생명의 은인으로 보기는 커녕 아이를 그녀의 손에서 거칠게 뺏는다. 여기는 도대체 어디인가. 그리고 이 아이는 누구이며 나는 어디에 와 있는 것인가.

 

그녀는 그곳에서 있으면서 자신이 노예해방 이전 흑인들은 주인의 소유로만 여겨지던 시대에 와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녀는 왜 이곳에 온 것이며 다시 현재로 되돌아 갈 방법은 없는 것인가. 주인공의 흑인 설정은 노예해방 이전. 이러면 사람들은 대부분 다 노예의 입장에서 부당함을 주장하고 인권을 주장할 것이다. 그녀 또한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구해준 아이의 집에 머무르면서 튀는 법 없이 다른 노예들과 어울려서 그들의 일을 도와주고 자신이 구한 아이를 보면서 지냈다. 언젠가 집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말이다.

 

한번의 타임슬립이 아니라 조건부 타임슬립으로 인해서 그녀는 현재와 그 시대를 번갈아 가면서 존재하게 된다. 그곳에서 머무는 시간은 길지만 이곳에서의 시간은 아주 짧다. 얼마 지나지 않는 시간 동안 그녀는 계속 왔다 갔다 하게 되는 것이다. 그곳에서 있는 동안 그녀가 느낀 부당함은 무엇일까. 그녀도 도망을 치려다 잡혀오고 채찍을 맞고 다른 노예들처럼 밭에서도 일을 한다.

 

이게 미국이 배경이라서 그렇지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도 양반과 종이 있었고 종은 양반의 소유였으며 누구에게 줄 수 있는 존재였고 팔 수 있는 존재였다. 노예들처럼 그들을 직접적으로 사고파는 전문 중계인만 없었을 뿐이지 우리나라도 종을 부리는 개념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에서는 남북전쟁을 통해서 노예해방이 일어났고 우리나라에서는 신분철폐가 일어나면서 누구나 공평한 권리를 누릴 기회를 얻게 되었다. 노예해방이 일어난 이후로 제도는 없어졌지만 그들의 노동력이 필요해서 남부지방에서는 한동안 계속 그런 상태가 계속되었다. 우리나라는 어떠했을까. 양반들이 볼 때는 아주 가관도 아니었을 것이다. 어제만 하더라도 마님 하던 사람들이 자기한테 하대를 하니 말이다.

 

지금 시대에 태어난 것을 감사해야 할 것 같다.만약 타임슬립이 일어나서 내가 그 시대에 떨어진다면 어떠할까. 아니 그 시대가 아니라 만약 일제치하 속으로, 독립운동이 일어났던 때로 돌아간다면 어떠할까. 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열사들처럼 당당하게 독립을 외칠 수 있을까. 사물은 자기 자리에 있어야만 잘 쓰이는 법이고 버려지지 않는 법이다. 사람도 그렇지 않을까. 자신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지금 현재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하는 것 아닐까.

 

작가는 타임슬립이라는 장치를 통해서 그 당시 미국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흑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자연스럽게 보여주면서 보다 사실적으로 그려내려고 한 모습이 보인다. 이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어떨까. 꽤 의미있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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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차일드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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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에 앞서 작가에 대한 소개를 하고 넘어가야 한다. 이 책만큼은 그래야만 할 것같다.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읽을때는 그냥 내가 아는 작가와 알지 못했던 작가 두가지로 구분하고 넘어가지만 이작가에 대한 소개는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에서도 드문 흑인 여성 SF 작가, 상업적으로뿐만 아니라 비평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던 그녀였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남녀의 구별이 무엇이 필요한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자 작가들도 뛰어난 문학을 쓰는 사람들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당시만 하더라도 문학세계에서, 그것도 남자 작가들만 있는 SF세계에서 그녀의 데뷔는 전혀 뜻밖이었을 것이다. 거기다가 뛰어난 문체와 작품들까지. 그 당시의 사람들뿐 아니라 지금의 사람들 또한 당연히 놀랍게 받아들였을 듯 하다.

 

원제는 블러드 차일드와 다른 이야기들였다. 그것을 가장 앞에 있는 단편의 제목을 따서 이 책 제목을 붙인 것인데 그만큼 이 작품이 강렬하다. 그냥 일반 sf장르인가 싶다가도 사실적이면서 잔인한 묘사에 단편속에서 장편의 스릴러를 보는듯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트가토이는 그의 몸을 열었다. 그의 몸은 첫번째 절개에 경련을 일으켰다.(32p)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멈칫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장면이었다. 순간 이 장면이 연상이 되며 한번도 본 적 없었던 영화의 장면을 스스로 상상이라는것을 통해서 만들어 내었던 것이다. 연상은 다음 장면까지 이어지면서 섬짓함이 온 몸으로 전해 흘러내렸다.

 

트가토이가 첫번째 유충을 찾아냈다. 통통했고, 로마스의 피로 안팎이 시뻘갰다. 안팎으로 말이다.(32p) 이 문장을 읽으면서 정글의 법칙을 생각했다. 그들이 나무속에서 찾아내었더 벌레들. 통통한 애벌레들, 꿈틀거리던 애벌레들. 그것을 집어 입으로 가지고 가던 그 손들, 그 입들. 잔인함을 증폭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정글속에서는 그 속에서는 그렇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고 그럼으로 인해서 먹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단지 내가 유충이라는 것을 보았던 장면이 그것뿐이기에 자동적으로 연상이 된 것뿐이었다. 하지만 이 대가의 작품속에서는 그냥 일반 유충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이들이었다. 유충이 아이들로 변환하는 것이다. 대가의 상상력이란 정말 일반 사람인 나로써는 좇아가기도 버겁다. 그녀가 남긴 이 소설을 통해서 그녀의 생각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버겁고 힘이 들어 전력으로 백미터 달리기를 한 사람마냥 헐떡거려야 했다. 그렇게 심장을 붙들고 읽어야만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녀가 이 단편들에 대한 각각의 후기를 적어 두었다는 것이다.  독자들의 상상을 망칠 염려가 없어서 서문보다는 후기가 더  좋다는 그녀. 그녀가 원한대로 나는 작품을 읽고 이후 후기를 읽었다. 그녀가 어떤 생각으로 또 어떤 느낌으로 어떤 상황에서 이 가품을 썼다는 것을 보니 더욱 이해가 잘 되었다. 친절한 도슨트가 옆에서 하나하나 해설을 해주어서 작품에 대한 시각이 달리 보이는 느낌이랄까. 단편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맥락없이 끊기는 느낌이 드는 엔딩들 때문이었는데 친절한 작가의 후기로 인해서 단편을 읽는 재미가 들었다. 역시 단편은 후기와 함께 읽어야 제맛이 드나보다.

 

특히 집중이 되었던 것은 '말과 소리'라는 단편이었다. 워낙 말로써 하는 직업을 갖고 있다보니 수업이 없는 날은 말을 하지 않고 지낼  때가 많다. 책을 읽을때도 음악을 틀어놓기보다는 아무런 소음이 없는 조용한 환경에서 읽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것을 조건으로 삼았을까. 여기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말을 하지 않는다. 말을 하면 어떻게 된다는 소릴도 없는데 다들 말을 하지 않고 말을 하는 법을 잃어버린채 지낸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말을 하지 않는다. 그들이 말을 하지 않게 된 이유는 나와 있지 않다. 그리고 말을 할 수 있으면서 안 하는 것인지 아니면 말을 아예 할 수 없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도 나와 있지 않다. 주인공은 마지막에야 겨우 한마디를 한다. 어떤 말일까.

 

마지막에 자전적인 에세이를 두편 구성해 두었다. 그녀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에세이 두편. 이 에세이를 읽음으로 인해서 나는 이 작가의 생각을 그리고 그녀가 자라온 환경을 이해했다. 그녀가 작품을 쓰게 된 배경을 알 수 있었다. sf라는 장르가 복잡하고 복잡하고 또 복잡해서 그다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장르였다. 얼만전 읽었던 스티븐 킹의 소설도 미루고 미루고 또 미루다 읽었던 작품이었다. 그의 작품 또한 내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었지만 옥타비아 버틀러 그녀의 작품 또한 이 장르에 대해서 신세계를 열어주었다. 다르게 보면 새로운 것이 보인다고 했던가. 같은 장르라 하더라도 새로운 장르처럼 보이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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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관의 조건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0
사사키 조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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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관의 피]가 2009년에 나온지 6년만에 합본으로 작년 다시 개정판이 나왔다. 그리고 딱 1년후 [경관의 조건]이 나왔다. 현실상에서는 그 정도의 시간이지만 이 책 속에서는 9년이 흘렀다. 삼대가 경찰이라는 가업 아닌 가업을 이어오는 가즈야. 그는 인질을 대신해서 들어간 아버지가 죽는 것을 보았다. 가정 폭력에 시달리던 그는 아버지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경찰이 된 그는 다른 사람과는 달리 다른 길을 걷게 된다. '대부님'이라 부르며 자신이 따르던 상관. 단 둘밖에 없는 팀에서 그는 자신의 상관인 가가야를 고발한다. 그 이후로 그는 재판을 거듭하면서 결국은 무죄로 풀려나지만 여러 사건끝에 결국은 경찰을 그만두게 된다. 그 이후로 9년. 가즈야는 어떤 상태이고 가가야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면서 지냈을까.

 

일본의 추리, 스릴러, 미스터리는 여러가지 장르가 있다. 사사키조는 그중에서도 경찰소설에 있어서는 정말 탁월하다. 경찰을 주인공으로 한 일반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전직 경찰인가 의심해볼만큼 자세한 내부 묘사가 더욱 현실감과 사실감을 준다. 전작도 그렇지만 이 번작품 또한 그러하다. 경찰 내부의 긴장과 갈등, 각 과의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다툼과 이권들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바깥에서 벌어지는 사건들도 중요하지만 내부의 사건들이 더 혼란스러운 요지경 속이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 다른 과가 충동해서 유혈사태를 만들어 내고 경관의 순직이 이어지기도 하고 한 사건을 두고 자신들이 먼저 해결을 하려고 덤벼들다가 충돌을 일으키키도 한다. 물론 서로 사전조율을 통해서 할 수도 있는 문제지만 당장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만만히 넘어가지지가 않는다.

 

긴장감과 스릴의 연속이지만 특히 중반부쯤 자신이 추적하는 사람을 미행하는 장면은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하다. 언젠가 보았던 [감시자들]이라는 영화에서 미행하는 씬을 보듯이 일방적으로 목표가 앞에 있고 뒤만 쫓아가는 방식이 아니라 그 목표가 중간에 서면 뒤따르던 미행은 그냥 지나치고 다른 미행이 번갈아가면서 붙는 식이기도 했다다가 한바퀴 돌아서 다시 붙기도 하고 휴대폰을 통해서 위치확인을 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방면으로 미행을 하는 장면은 속도감과 긴장감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

 

한 사건에 경찰 1과와 5과가 충동하고 경관 한명이 죽고 그 죽인 범인은 여전히 종적을 알 수 없다. 민간인이 죽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경찰이라는 조직내에서 경찰이 죽는 것은, 그것도 조직원에게 총을 맞아서 죽는 일은 절대 그냥 넘길 수 없는 사건이다. 미국 드라마에서도 경찰의 죽음은 특히 예민하게 그려지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그것은 아마도 어려운 일, 힘든 일을 함께 하는 그들에게 연결되어 있는 끈끈한 의리이면서 정이면서 사랑일 것이다. 남들은 이해할수 없는 더욱 진한 보이지 않는 선 말이다. 그들은 반드시 그를 잡아야만 한다.

 

일본내의 범죄조직은 약, 즉 각성제 시장과도 연결되어 있다. 어느정도 안정되어 흐르던 것이 다른 한 신생조직의 개입으로 인해서 흐름이 바뀌었고 그것을 알아냈던 경찰의 s, 즉 스파이 또한 죽음을 당한채로 발견된다. 경찰들은 자신의 동료에 대한 복수와 더불어서 이 시건을 흔들고 있는 범인을 잡고 그들의 조직을 일망타진 할 수 있을까.

 

각성제는그 자체로도 위험하지만 [몽환화]에서도 보듯이 그로 인해서 사람들이 다른 사람으로 돌변해서 아무 사건이나 저지르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전염병도 아닌데 점점 늘어만 가는 것도 문제가 된다. 국민들이 환각에 빠져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 나라는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경찰은 어떻게 해서든지 각성제 시장을 문을 닫게 만들어야 한다. 점조직으로 퍼져 있는 그들의 조직을 경찰은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할 것인가.

 

9년 전 가즈야의 고발로 경찰생활을 그만둔 가가야는 경찰청의 요청에 의해서 돌아오게 되는데 그의 활약상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경관의 피와 경관의 조건. 비슷한 결말을 가지고 있어서 살짝 안타깝기도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가즈야는 한층 더 자신의 입지를 되돌아 볼수 있지 않았을까. 가즈야는 아직 젊다. 이것이 사사키조의 다른 경관시리즈를 기대하게 되는 이유다. 가즈야를 중심으로 한 또 다른 경찰이야기가 나오길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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