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러드차일드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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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에 앞서 작가에 대한 소개를 하고 넘어가야 한다. 이 책만큼은 그래야만 할 것같다.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읽을때는 그냥 내가 아는 작가와 알지 못했던 작가 두가지로 구분하고 넘어가지만 이작가에 대한 소개는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에서도 드문 흑인 여성 SF 작가, 상업적으로뿐만 아니라 비평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던 그녀였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남녀의 구별이 무엇이 필요한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자 작가들도 뛰어난 문학을 쓰는 사람들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당시만 하더라도 문학세계에서, 그것도 남자 작가들만 있는 SF세계에서 그녀의 데뷔는 전혀 뜻밖이었을 것이다. 거기다가 뛰어난 문체와 작품들까지. 그 당시의 사람들뿐 아니라 지금의 사람들 또한 당연히 놀랍게 받아들였을 듯 하다.

 

원제는 블러드 차일드와 다른 이야기들였다. 그것을 가장 앞에 있는 단편의 제목을 따서 이 책 제목을 붙인 것인데 그만큼 이 작품이 강렬하다. 그냥 일반 sf장르인가 싶다가도 사실적이면서 잔인한 묘사에 단편속에서 장편의 스릴러를 보는듯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트가토이는 그의 몸을 열었다. 그의 몸은 첫번째 절개에 경련을 일으켰다.(32p)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멈칫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장면이었다. 순간 이 장면이 연상이 되며 한번도 본 적 없었던 영화의 장면을 스스로 상상이라는것을 통해서 만들어 내었던 것이다. 연상은 다음 장면까지 이어지면서 섬짓함이 온 몸으로 전해 흘러내렸다.

 

트가토이가 첫번째 유충을 찾아냈다. 통통했고, 로마스의 피로 안팎이 시뻘갰다. 안팎으로 말이다.(32p) 이 문장을 읽으면서 정글의 법칙을 생각했다. 그들이 나무속에서 찾아내었더 벌레들. 통통한 애벌레들, 꿈틀거리던 애벌레들. 그것을 집어 입으로 가지고 가던 그 손들, 그 입들. 잔인함을 증폭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정글속에서는 그 속에서는 그렇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고 그럼으로 인해서 먹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단지 내가 유충이라는 것을 보았던 장면이 그것뿐이기에 자동적으로 연상이 된 것뿐이었다. 하지만 이 대가의 작품속에서는 그냥 일반 유충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이들이었다. 유충이 아이들로 변환하는 것이다. 대가의 상상력이란 정말 일반 사람인 나로써는 좇아가기도 버겁다. 그녀가 남긴 이 소설을 통해서 그녀의 생각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버겁고 힘이 들어 전력으로 백미터 달리기를 한 사람마냥 헐떡거려야 했다. 그렇게 심장을 붙들고 읽어야만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녀가 이 단편들에 대한 각각의 후기를 적어 두었다는 것이다.  독자들의 상상을 망칠 염려가 없어서 서문보다는 후기가 더  좋다는 그녀. 그녀가 원한대로 나는 작품을 읽고 이후 후기를 읽었다. 그녀가 어떤 생각으로 또 어떤 느낌으로 어떤 상황에서 이 가품을 썼다는 것을 보니 더욱 이해가 잘 되었다. 친절한 도슨트가 옆에서 하나하나 해설을 해주어서 작품에 대한 시각이 달리 보이는 느낌이랄까. 단편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맥락없이 끊기는 느낌이 드는 엔딩들 때문이었는데 친절한 작가의 후기로 인해서 단편을 읽는 재미가 들었다. 역시 단편은 후기와 함께 읽어야 제맛이 드나보다.

 

특히 집중이 되었던 것은 '말과 소리'라는 단편이었다. 워낙 말로써 하는 직업을 갖고 있다보니 수업이 없는 날은 말을 하지 않고 지낼  때가 많다. 책을 읽을때도 음악을 틀어놓기보다는 아무런 소음이 없는 조용한 환경에서 읽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것을 조건으로 삼았을까. 여기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말을 하지 않는다. 말을 하면 어떻게 된다는 소릴도 없는데 다들 말을 하지 않고 말을 하는 법을 잃어버린채 지낸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말을 하지 않는다. 그들이 말을 하지 않게 된 이유는 나와 있지 않다. 그리고 말을 할 수 있으면서 안 하는 것인지 아니면 말을 아예 할 수 없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도 나와 있지 않다. 주인공은 마지막에야 겨우 한마디를 한다. 어떤 말일까.

 

마지막에 자전적인 에세이를 두편 구성해 두었다. 그녀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에세이 두편. 이 에세이를 읽음으로 인해서 나는 이 작가의 생각을 그리고 그녀가 자라온 환경을 이해했다. 그녀가 작품을 쓰게 된 배경을 알 수 있었다. sf라는 장르가 복잡하고 복잡하고 또 복잡해서 그다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장르였다. 얼만전 읽었던 스티븐 킹의 소설도 미루고 미루고 또 미루다 읽었던 작품이었다. 그의 작품 또한 내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었지만 옥타비아 버틀러 그녀의 작품 또한 이 장르에 대해서 신세계를 열어주었다. 다르게 보면 새로운 것이 보인다고 했던가. 같은 장르라 하더라도 새로운 장르처럼 보이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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