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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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적이다. 현실적이다. 세부적이다. 역사적이다. 이 모든 단어를 다 포함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옥타비아 버틀러의 단편집을 먼저 읽었다. 짧게 이어지는 이야기의 뒤에 적힌 그녀의 후기가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짧게 끝나도 길게 생각되는 이야기의 여운이 남았다. 장편은 어떨지 궁금했다.

 

이 장편. 역시 단편보다 훨씬 좋다. 아니 그 속에 빠져들고 말았다. 판타지 ,sf이런 장르를 즐겨하지 않는 나조차도 빠져들만큼 매혹적인 이야기에 한동안 빠져들었다. 그럴수 밖에 없었다. 분명 이 이야기는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묘사가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이런 설정이 현재에도 지속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타임슬립'이라는 이 흔해빠진 모티브를 쓰면서도 전혀 진부하지 않다. 오히려 새로운 느낌이 든다. 어떻게 이 작가는 이런 식으로 글을 쓸 수가 있었던 것일까. 이야기가 사실적인데는 아마도 주인공과 작가의 동일함이 가장 큰 특징일것 같다. 이십대의 흑인작가. 그녀는 백인 남편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지금 이 시대에서는 그렇게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설정이다. 물론 부모나 친지의 반대가 있었을지라도 법에 위촉되는 행동도 아니다.

 

따로 살던 그들이 막 새 집에 들어왔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이 그녀의 생일이었다. 딱히 뭐 크게 준비하지 않은 그들은 그냥 짐을 풀며 이야기를 하고 있던 찰나였다. 그녀가 이상한 느낌을 받은 것은. 현기증이 나며 땅이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던 그녀는 어느샌가 자신도 모르는 곳에 와 있다. 바로 앞에는 강이 있고 거기에 어떤 한 아이가 떠내려 가고 있다.

 

자신이 어디 있는지 생각도 하기 전에 그녀는 본능적으로 아이를 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강에 뛰어든다. 아이를 구해온다. 숨을 수지 않는다. 인공호흡을 하고 심장 압박을 해서 겨우 아이를 살려낸다. 백인 아이다. 아이의 부모는 그녀를 생명의 은인으로 보기는 커녕 아이를 그녀의 손에서 거칠게 뺏는다. 여기는 도대체 어디인가. 그리고 이 아이는 누구이며 나는 어디에 와 있는 것인가.

 

그녀는 그곳에서 있으면서 자신이 노예해방 이전 흑인들은 주인의 소유로만 여겨지던 시대에 와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녀는 왜 이곳에 온 것이며 다시 현재로 되돌아 갈 방법은 없는 것인가. 주인공의 흑인 설정은 노예해방 이전. 이러면 사람들은 대부분 다 노예의 입장에서 부당함을 주장하고 인권을 주장할 것이다. 그녀 또한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구해준 아이의 집에 머무르면서 튀는 법 없이 다른 노예들과 어울려서 그들의 일을 도와주고 자신이 구한 아이를 보면서 지냈다. 언젠가 집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말이다.

 

한번의 타임슬립이 아니라 조건부 타임슬립으로 인해서 그녀는 현재와 그 시대를 번갈아 가면서 존재하게 된다. 그곳에서 머무는 시간은 길지만 이곳에서의 시간은 아주 짧다. 얼마 지나지 않는 시간 동안 그녀는 계속 왔다 갔다 하게 되는 것이다. 그곳에서 있는 동안 그녀가 느낀 부당함은 무엇일까. 그녀도 도망을 치려다 잡혀오고 채찍을 맞고 다른 노예들처럼 밭에서도 일을 한다.

 

이게 미국이 배경이라서 그렇지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도 양반과 종이 있었고 종은 양반의 소유였으며 누구에게 줄 수 있는 존재였고 팔 수 있는 존재였다. 노예들처럼 그들을 직접적으로 사고파는 전문 중계인만 없었을 뿐이지 우리나라도 종을 부리는 개념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에서는 남북전쟁을 통해서 노예해방이 일어났고 우리나라에서는 신분철폐가 일어나면서 누구나 공평한 권리를 누릴 기회를 얻게 되었다. 노예해방이 일어난 이후로 제도는 없어졌지만 그들의 노동력이 필요해서 남부지방에서는 한동안 계속 그런 상태가 계속되었다. 우리나라는 어떠했을까. 양반들이 볼 때는 아주 가관도 아니었을 것이다. 어제만 하더라도 마님 하던 사람들이 자기한테 하대를 하니 말이다.

 

지금 시대에 태어난 것을 감사해야 할 것 같다.만약 타임슬립이 일어나서 내가 그 시대에 떨어진다면 어떠할까. 아니 그 시대가 아니라 만약 일제치하 속으로, 독립운동이 일어났던 때로 돌아간다면 어떠할까. 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열사들처럼 당당하게 독립을 외칠 수 있을까. 사물은 자기 자리에 있어야만 잘 쓰이는 법이고 버려지지 않는 법이다. 사람도 그렇지 않을까. 자신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지금 현재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하는 것 아닐까.

 

작가는 타임슬립이라는 장치를 통해서 그 당시 미국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흑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자연스럽게 보여주면서 보다 사실적으로 그려내려고 한 모습이 보인다. 이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어떨까. 꽤 의미있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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