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데스
소피 오두인 마미코니안 지음, 이혜정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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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다 죽음을 두려워한다. 죽음 이후의 삶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에게도 여기처럼 똑같은 세상이 존재하고 이미 죽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면, 그런 곳이라면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할까 아니면 서로 먼저 죽으려고들 할까. '애프터 데스'라는 이 책은 주인공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사실 이런 설정은 독특하지는 않다. 이미 많은 작가들이 그 이후의 일을 상상하며 판타지 작품들을 그려내었다. 이 책과 가장 비슷한 작품을 떠올리면 [상심증후군]이 생각날 수 있다. 물론 설정은 전혀 다르다. 그 책은 사랑받지 못해 죽은 사람의 다른 사랑이야기를 그린 것이고 이 책은 자신이 무엇때문에 죽임을 당해야 했는지 모르는 사람의 죽음이후 새로운 사랑이야기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상황설정이 비슷할 뿐이다.

 

타라덩컨 시리즈로 유명한 소피는 자신만의 죽음이후 세계를 만들어 내었다. 얀 반 에이크의 작품을 보고 생각났다는 이 이야기들은 두렷하게 두가지의 컬러로 구분된다. 빨강과 파랑. 파랑과 빨강으로 이루어진 세계. 제목에서도 그 두가지 컬러는 뚜렷하게 보이고 있다. 무슨 태극문양도 아니고 빨강과 파랑이라니 그 색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저 늦은 밤 집으로 가는 길이었을 뿐인데 제레미는 죽임을 당한다. 그것도 일본도 목이 베어진 채 잔인하게. 그는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 누가 자신을 죽이려 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승승장구에 누가 태클을 건 것인지 아니면 나이답지 않게 돈이 많은 자신의 탓인지 그것도 아니면 엄마가 새로 결혼한 무기사업을 하는 의붓 아버지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뭏든 목이 뎅겅 잘렸고 그 결과 그냥 죽었다. 이제 그에게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빨강과 파랑의 세계. 붉은 빛의 천사와 푸른 빛의 천사. 그리고 각종 여러 색들의 안개.그는 어떻게 애프터 데스의 세계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라즈베리를 얹어 맛이 풍부한 컵케이크, 바나나 맛이 나는 폭신하고 사르르 녹는 마시멜로, 아삭아삭 씹히는 빨간 사과, 짭짜름한 버터캐러멜, 캐슈너트, 피스타치오 크림, 약간의 고추가 들어가고 백리향의 향이 진한, 포크가 서 있을 정도로 감동적인 기도네 가게의 볼로네즈 파스타, 감미로운 감자, 거의 날아오를 것 같이 너무나 가벼운 양파튀김....진정한 맛의 불꽃놀이였다.(244p)

 

천사가 되었어도 먹어야 한다. 먹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천사로도 존재하지 못하고 사라질 수 있다. 인간과 같은 것을 먹는 것은 아니다. 안개. 즉 사람들의 감정을 먹는 것이다. 화를 내거나 분노를 일으키는 붉은 안개를 먹으면 붉은 천사가 되고 좋은 감정인 파란 안개를 먹으면 푸른 천사가 된다. 물론 선한 천사다. 골라가며 먹어야 한다.

 

붉은 천사라고 해도 해될 것 은 없지만 너무 많이 붉은 기운을 섭취하면 그 또한 사라질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천사라고 해서 영원히 사는 것은 아니다. 너무 많이 먹거나 안 먹거나 또는 다른 천사에게 먹혀버리면 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죽음을 조사하던 제레미는 자신의 의붓동생에게 붉은 천사가 달라붙어 있는 것을 본다. 그 붉은 천사는 동생이 잠을 자지 못하게 방해하고 감정을 흐뜨려놓는다. 엄마는 아이에게 수면제를 주어서 재우지만 그것 또한 임시방편일뿐 저 붉은 천사를 내쫓을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다.. 한편 자신의 죽임의 원인을 추리해낸 제레미의 또라다른 죽음을 막기 위해서 정말 초보천사로써 할 수 있는 최선을 것을 다하게 된다. 자신이 지켜주고 싶다던 그 여자를 죽음에서부터 구해줄수 있을까.

 

죽음 이후 천사들의 세계를 그리면서 사랑과 모험과 추리와 스릴까지 모든 것을 이 책 한권을 통해서 느끼게 만들어 버린 작가의 능력은 인정해줄 만하다. 익히 타라덩컨 시리즈를 통해서 느껴온 바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같은 이야기. 밥 먹기가 싫으니 나 또한 안개를 먹고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잠시 해본다. 안개 한모금에 저렇게 다양한 맛이 존재한다면 그 아니 참을수가 있을까. 참지 못할 그런 안개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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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의 미술관 (책 + 명화향수 체험 키트)
노인호 지음 / 라고디자인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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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이 구워지는 냄새, 막 깍은 잔디의 초록한 냄새, 갓 뽑은 커피의 구수함, 설탕을 녹였을때의 달달함, 그리고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새 책의 종이냄새. 내가 좋아하는 냄새들이다. 안타깝게도 이중에 인공적인 향은 포함되지 않는다. 어떤 이는 자신만의 향수를 지정해두고 꼭 쓰고는 해서 자신만의 향을 만들어 낸다는데 자연적인 향이 아닌 향을 맡았을때 바로 재채기가 나곤 하는 나로써는 향수는 쥐약인 셈이다.

 

시간이 날 때면 미술관에 가서 어슬렁거리는 것을 좋아했다. 딱미 미술에 조예가 깊어서 보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그 작품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평안함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그림을 그린 의도라던가 그림에 숨겨진 의미 같은것은 잘 알지 못한다. 그저 내 느낌이 가는대로 그림을 보면서 이해를 하는 것이다.

 

그림과 향. 전혀 상관없을 것만 같은 두가지를 연결한다면 어떨까. 향수매거진 사업을 접고 잠시 방황하던 시절 떠난 미국에서 모네의 그림을 보다가 초록내음을 느낀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술과 향을 접목시켰다. 그림을 보면서 그에 맞는 향을 맡아보는 것이다.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그야말로 상당히 긍정적인 반응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을 바탕으로 저자는 자신만의 독특한 그림 설명방법을 만들었고 그것을 책으로 내었다. 자신이 향수를 만드는 일을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일반 사람들은 생각지 못했던 획기적인 방법, 그것은 불현듯 다가오는 법이다. 자신이 일상적인 일을 하는 동안에 말이다.

 

다섯개의 샘플 향수가 포함되어 있는 이 책은 향수의 숫자에 맞게 모두 5개의 챕터로 나누어져 있다. 자존, 고독, 혁신, 본질, 그리고 일상. 다섯가지의 주제에 맞는 그림을 선택하고 그 그림들에 맞는 향을 부록으로 넣어둔 것이다. 각 챕터를 읽는 동안 향을 느껴도 좋겠고 향수 이름에 맞는 명화들을 볼때만 따로 느껴도 좋겠다. 구성되어 있는 다섯개의 향의 이름은 꿈, 별이 빛나는 밤에, 수련,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이다. 책에 실린 작품들을 볼때 하나씩 흠향해도 좋겠고 실제로 이 그림을 볼 기회가 있을 때 직접 들고 간다면 더욱 생동감 있게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미리 조금씩 향을 맡아 보니 시중의 있는 향수와는 조금씩 다른 향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꿈'이라는 그림에 맞는 향은 만다린 오렌지, 레몬, 베티버에다가 화이트 머스크향을 섞었다. 향수가 한가지로만 이루어지지 않않듯이 이 그림에 맞는 향 또한 한가지가 아니라 그림에 어울릴듯한 향들을 선택해서 적당한 비율로 섞어 놓은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별이 빛나는 밤에'의 향이 그야말로 멋졌다. 일랑일랑과 핑크페퍼, 파출리로 이루어진 단순한 조합이지만 약간의 시원한 듯하면서도 푸르름이 느껴지면서도 어두움을 가져다 주는 것이 어둠을 나타내는 네이비 컬러와 밝음을 나타내는 노란빛이 소용돌이쳐 흐르는 그림을 연상케 했다.

 

고요함이 감도는 밤의 향기.

무게감이 느껴지는 그윽한 향의 시작.

하지만 무게감 있는 밤의 향기가 지나간 자리에 남은 미세한 잔향은 아주 부드럽습니다.

오묘한 느낌의 밝은 향기를 포착해 내셨나요?

마치 이 작품속의 화려한 노란 별빛과 같이 밝고 영롱한 느낌입니다.(53p)

 

 여름에 모네의 그림을 디지탈화 시켜놓은 전시회를 갔다 온 적이 있어서 아쉬웠다. 이 책이 그때 나왔다면 모네의 그림들을 보면서 이 향을 맡아볼 수 있었을텐데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시실 가득히 사방으로 둘러싼 그림들. 특히 입체화 시켜서 물살이 흔들리는 듯한 느낌을 주어서 살아있는 수련의 모습을 영상화시킨 작품을 보면서 이 향을 맡았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누구나 한번쯤은 본듯한 명화들이라서 더욱 부담없이 접근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가 익히 언급했듯이 이 책은 그림에 관한 자세한 설명을 써놓지는 않았다. 책의 두께는 두껍지 않고 무게는 무겁지 않지만 그에 덧씌워진 향들로 인해서 충분히 무게감이 느껴지는 한 권의 책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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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 스캔들
장현도 지음 / 새움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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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중에서도 여러 소재가 있기 마련이다.스릴러라는 장르를 보았을 때 주로 사람의 심리나 아니면 복수와 관련된 그런 스릴러들이 많은 반면 이런 식으로 금융을 소재로 한 소설은 잘 찾아 보기 힘들다.작가는 증권사 출신이다.그런만큼 전문가이다.그래서 더욱 이런 소재를 가지고 글을 잘 쓸 수 있는 것이 아닐까.그의 다른 소설들을 읽어보지 못했지만 [트레이더]라는 제목만 봐도 역시 그런 소재로 글을 썼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면서 이 책으로 봐서 다른 책들도 충분히 재미가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도 남겠다.

 

'골드 스캔들'이라는 제목답게 책등조차도 화려하다.금색의 반짝거리는 책등.어디가 꽂아두어도 확 띌만한 책등임에 틀림없다.그런 바탕에 검은색의 골.드.스.캔.들.다섯글자.제목으로만 유추해봐도 금에 관련된 이야기라는 것을 한번에 알게된다.금값이 한때 굉장히 오른적이 있었다.사람들이 너도나도 금을 살때였던가.금괴 하나만으로도 부자가 될 수 있었었던 시절.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누구라도 개인적으로 저거 하나라도 가지고 싶다하는 마음은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 핏트레이더로 일하는 한서연이라는 한국 여자가 있다.그녀는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 한 사람의 직장인일 뿐이다.물론  그녀가 하고있는 일이 평범하지는 않다.흔히 우리가 '객장'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전화 한통화로 물건을 사고 팔아서 그 차익을 남기는 사람, 그런 사람을 핏트레이더라고 부른다.경제에 관련된 생소한 단어들이 꽤 많았지만 전체의 내용을 이해하기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다.그만큼 작가는 어려운 소재와 본문의 재미를 적절히 가감하면서 조절한다.뛰어난 기량이다.

 

그녀를 중심으로 해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단지 돈에 관련된 것만 나오지 않는다.또 다른 인물들을 투입함으로 인해서 큰 스케일을 유지하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비밀조직의 임무라던지 개인적인 가드 업무등을 통해서 독자가 본격적으로 스릴을 느낄 수 있는 장치들을 곳곳에 남겨 두었다. 그 모든 이야기와 금 이야기를 하나로 묶으면서 오래전 한국의 경제사태까지 짚어주고 있다.역시 전문가 답다. 주인공은 끊임없이 사건과 연결되며 그 중심에 놓여 있다. 

 

책 표지의 앞과 뒤를 장식하는 두 여자.금발과 검은 머리로 대비되는 두여자.그녀들은 어떤 방법으로 이 세계의 경제를 쥐고 흔드는 것일까.생각보다 더 큰 재미를 주며 마구 읽히게 한 이야기가 나름 열린 결말로 끝을 맺고 있다.시원하게 복수를 할 것이라 생각했던 그 복수는 겁만 준 채, 피해만 입힌채 정작 당사자는 몸을 숨기고 말았고 스파이로써 활동을 하려던 서연 역시 동료의 도움으로 도망을 치고 말았다.다음번 이야기를 암시하는 걸까.두 여자를 주인공으로 해서 또 다른 이야기가 나올까.속편이 궁금해지는 시점이다.

서연은 그가 완전히 돌아설  때까지 기다렸다.그리고 그에게 물었다.

"당신 보스라는 사람, 그는 누구죠?"(49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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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갈대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3
사쿠라기 시노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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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집 딸이 쓴 작품을 목욕탕집 딸이 번역을 했다는 번역자의 말이 계속 머리속에 남아 있었다. 작가의 다른 작품, [순수의 영역]이라던가 [아무도 없는 밤에 피는]을 읽었지만 작가 약력을 자세히 보지 않아서였을까. 그녀가 '호텔로열'이라는 실제로 존재했던 호텔의 딸이라는 것을 모르고 읽었다. 이번 작품을 통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다. 그래서였을까. 동명의 소설인 [호텔로열]에서는 좀더 세밀한 묘사가 드러난다고 했다. 그녀의 작품 중 그 작품을 아직 읽지 못했다. 읽지 못했던 작품에 대한 기대가 들고 궁금증이 생기는 순간이다.

 

이미 읽은 작품들을 통해서 그녀의 스타일이 어떻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번역자는 사쿠라기 시노를 '신관능파 성애문학'의 대표주자라고 했다. 그만큼 그녀의 책에서는 강하고 세고 일반적으로 생각할수 없는 표현들이 자주 나오고 흔히 보기 어려운 관계들이 등장을 한다. 이해하기 힘든 사람도 분명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어떤 소설을 쓰는지를 알고나니 그런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도 불륜이 둥장을 하지만 사쿠라기 시노에 비하면 조금은 약하다는 느낌일까. 아니 약간은 블러 처리가 된 그런 허락되지 않은 로맨스일 수도 있겠다.

 

[유리갈대]라는 작품은 내가 생각한 것에 비하면 그렇게 강하지는 않았다. 이미 예상을 하고 있어서였을까 성애문학이라 아닌 그냥 일반문학이라 해도 좋을 정도의 등급이지만 그 속에 숨겨진 이야기들은 아주 밀집도가 높다. 흘러 내리는 멀건 꿀을 받아먹는 느낌이 아니라 아주 빡빡한 벌집을 통째로 위에서 아래로 한국자 뜨는 느낌이랄까. 번역자가 이미 경험한 바 있듯이 다른 생각을 할 시간을 좀체 주지 않는 소설이다.

 

장르소설에서 볼 수 있는 긴장감들을 후반부에서 느끼게 된다. 서장과 종장의 연결이 두드러진다. 서장에서 읽었던 이야기가 중반분를 거쳐서 종장으로 이어지면서 왜 그런 이야기가 되었는지 맥락있는 연결임을 알게된다. 전혀 몰랐던 이야기기가 시간의 순서대로 연결되고 그 이야기의 결론이 맺혀지게 되는 것이다. 서장에서 그 결론을 이미 풀어놓고 있어서 약간 의아해했던 이야기가 마무리 되는 느낌이다.

 

러브호텔을 운영하는 고다 기이치로 그리고 그의 아내 세쓰코. 남편은 고다는 이미 엄마 리쓰코의 남자친구였다. 엄마의 남자친구를 자신의 남편으로 만든 세쓰코는 대체 어떤 아이란 말인가. "내 아내가 되면 생활에 급급할 일도 없고 그렇게 만들지도 않을 거야. 돈은 풍족하게 줄 테니 마음대로 써. 책도 내줄 수 있고 아침에 늦잠을 자도 돼. 모든 시간은 세쓰코가 자유롭게 쓰면 돼. 거절해도 좋지만 거절당하지 않을 자신도 있어.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중늙은이의 교활한 청혼이라고 해도 좋아. 잘 생각해봐." 고다가 청혼을 했을 떄 한 말이다. 선명하게 기억할 만하다. 어떤 여자라도 저런 식의 청혼을 받는다면 한번쯤은 더 긍정적으로 생각이 기울지 않을까. 나 조차도.

 

전처 딸이 있지만 이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가서 살고 있으며 고다와의 연락도 잘 되지 않는다. 어디 한 곳 신경 쓸 일이 없다. 엄마 리쓰코가 맘에 걸리지만 엄마한테 연락을 하니 놀라울 정도로 시원하게 대답해 버린다. 자신에게 생활비를 대준자다면 아무 불만이 없다는 엄마. 일본인들의 모두가 이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느다. 단지 특수한 상황일 뿐. 남편을 아빠라고 부르는 고다. 그녀는 호텔일에도 신경을 쓰지 않고 단가모임을 나가는 등 자신만의 편한 생활을 한다. 그러던 어느날 고다의 교통사고 소식을 듣게 된다. 그녀의 일상은 어떻게 바뀔까.

 

그저 단순하게 엄마의 남자친구와 결혼한 여자의 사랑과 성에 초점을 맞춘 소설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이 사고를 당하고 바뀌어 버린 일상. 거기다가 그녀에게 갑자기 맡겨진 아이까지. 전혀 상관없을 것만 같았던 남편 전처의 자식까지 등장을 하면서 이야기는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세쓰코, 그녀에게 맡겨진 아이는 누구이며 그녀는 그 아이를 어떻게 대해주어야 하는가. 그리고 전처의 딸인 고즈에와는 사이는 어떻게 될 것이면 남편이 사고를 당해서 일어나지 않으면 그녀와의 관계는 또 어쩧게 변화를 할까. 결혼을 했지만 자신이 전에 일했던 사무실의 사와키와도 관계를 끊지 않은 그녀. 남편은 그와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답이 없는 물음의 , 길고 긴 계단을 올라가 사외와키는 포효했다. 두 사람의 몸은 머리에서 팔다리, 발끝에서 시트, 그리고 어둠으로 모래가 되어 흘러갔다.(213p) 숨가쁘게 이어지는 세쓰코의 흔적을 쫓아가다 만난 성애의 흔적. 진득하니 남아 있는 그런 얼룩같은 느낌이 아니라 모래가 되어 계속 흘러내리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부분이다. 남편의 목숨을 모래알에 비유했듯이 사와키의 관계조차도 모래알에 비유하고 있다.

 

우리네 인생도 어느 한 시점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지나간다. 반복되는 뫼비우스의 띠가 아니라 계속 연속적으로 어디론가 빠져버리는 그런 시간의 개념이다. 그 모래의 끝이 다할무렵 우리의 인생이 끝이 나겠지. 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남편의 사고를 통해서 한 여자의 인생을 종착지를 따라가는 여행. 세쓰코, 그녀의 끝이 궁금해지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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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칼렛 오아라
이승민 지음 / 새움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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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대에 살아가는 컴퓨터를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나쯤은 닉네임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꼭 영어로만 만들어야 하는 아이디와는 달리 여러가지로 만들수가 있는 닉네임은 때로는 영어나 한자로도 지어져서 저마다 독특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닉네임을 보면 대충 그사람을 짐작해볼수도 있다.

 

'누구맘'이라고 적혀져 있는 경우는 아이가 아직 어린 엄마들이 대부분이고 여자들은 약간 소녀틱한 감정을 내보이기도 한다. 남녀에 따라서도 다르고 나이에 따라서도 많이 달라지는 닉네임. 여기 '오아라'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는 어떤 닉네임을 선택했을까. 누구나 짐작하듯이 오아라는 자신의 닉네임을 '스칼렛'이라고 정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나오는 비록 돈은 없고 자신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어도 도도함은 끝까지 잃지 않으려고 했던 스칼렛 오하라, 레트에게 보여주려고 없는 살림에 가장 좋은 커튼을 뜯어서 자신의 드레스를 만들어 입었던 그녀, 오아라 역시도 그런면이 없잖아 있는 친구이다.모두가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사람은 자신이 남들보다 못하다고 느낄 때 주눅이 들게 마련이다. 남들보다 능력이 없거나, 재능이 없거나, 돈이 없거나, 무엇이 하나 없어도 말이다. 하지만 자신은 잃지 말라고 했던가.

 

엄마 병원비에 요양원비에 자신의 먹고 살 걱정까지 해야 하는 오아라는 작가이다. 지방 일간지에 당선된 작가, 그 이후로 아직 책 한권도 못낸 작가 그런 그녀에게 유명잡지에서 글을 써달라고 하니 어찌 안 쓸까. 성심성의껏 써서 보낸 원고는 아무런 이유없이 퇴짜를 맞았다. 치열하게 고쳐달라는 것. 어떻게 고치란 말인가. 그것도 치.열.하.게. 편집자의 마음에 들게 하기 위해서 그녀는 고쳐보지만 여의치 않고 그녀의 원고는 잡지에 실릴수가 있을까.

 

작가의 인생과는 다르게 오아라는 스칼렛으로써 또 다른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 요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빌렸던 대출이 도를 넘은 것이다. 그것을 갚기 위해서는 엄마가 남긴 마지막 재산, 집을 팔아야 했고 그것도 모자라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마지막 방법을 쓰기로 한 것이다. 닉네임 스칼렛. 스폰구함. 그녀게에게 어떤 스폰서가 생길까.

 

명품을 좋아하고 그것을 사고 싶지만 능력이 안되는 그녀는 명품관에서 구경하는 것을 취미로 삼고 있다. 그것도 자신이 돈이 없어서 구경만 한다는 티를 내고 싶지않아서 그곳에 없는 모델 이름을 대며 일부러 그것을 사러온 냥 연기를 하면서 말이다. 그렇다고 그녀가 스폰을 구한 것은 단지 명품을 사기위함은 아니다. 절박했기 때문이었다. 더이상은 어디서 돈 나올 곳도 없고 손을 벌릴 곳도 없으니 그렇게라도 생계를 잇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한심한 인생살이라고 속으로 혐만하기만 했던 노아의 삶이 한순간 부러워지는 것을 보면 인생의 반전이 드라마의 반전보다  더 극적이다. 원초적인 몸의 노동을 통해 돈을 버는 시스템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눈부신 생계 매커니즘이라는 생각도 들었다.(187p)

 

신인작가가 생활고에 시달려 죽은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정말 방값낼 돈은 고사할고 먹고 죽을 돈도 없었던 그들. 그들의 힘듦이 이 책속에서 드러나는 듯 해서 약간은 슬펐다. 그들이 좀더 자유로운 창작생활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있었음 싶었다. 물론 오아라의 말처럼 작가는 왜 꼭 다들 고상하고 구식의 삶을 살아야만 하느냐고 생각할수도 있다. 작가도 명품을 좋아할 수 있고 충분히 자신의 욕망을 좇아서 살수있는 것을 우리는 이 책속의 성형외과 원장처럼 편협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일종의 고정관념처럼 말이다.

 

작가 오아라 그리고 스폰을 구하는 여자 스칼렛 그녀의 이중생활은 어디까지 지속될 것인가. 그리고 그렇게 만나지는 사람들의 접점은 없을까. 그녀의 이중생활이 천하에 드러날 경우 그녀는 어떤 취급을 받게 될까. 가방 하나에 몇백만원씩 하는 명품에 대한 욕심이 없어서 오아라의 심정을 백퍼센트 온전히 이해는 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절박했던 그녀의 심정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겠다. 나 또한 그래본 적이 있으므로 말이다.

 

새움출판사에서 무거운 주제의 책만 내는 줄 알았는데 오랜만에 재미나는 책 한권을 만낫다. 술술 잘 읽히면서도 독특한 이야기. 그러면서도 사회풍자적인 면를 잃지 않은 한 권의 소설. 'K-오서 어워즈'를 받았던 작가이니만큼 다음 작품 또한 기대해보아도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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