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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갈대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3
사쿠라기 시노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호텔집 딸이 쓴 작품을 목욕탕집 딸이 번역을 했다는 번역자의 말이 계속 머리속에 남아 있었다. 작가의 다른 작품, [순수의 영역]이라던가 [아무도 없는 밤에 피는]을 읽었지만 작가 약력을 자세히 보지 않아서였을까. 그녀가 '호텔로열'이라는 실제로 존재했던 호텔의 딸이라는 것을 모르고 읽었다. 이번 작품을 통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다. 그래서였을까. 동명의 소설인 [호텔로열]에서는 좀더 세밀한 묘사가 드러난다고 했다. 그녀의 작품 중 그 작품을 아직 읽지 못했다. 읽지 못했던 작품에 대한 기대가 들고 궁금증이 생기는 순간이다.
이미 읽은 작품들을 통해서 그녀의 스타일이 어떻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번역자는 사쿠라기 시노를 '신관능파 성애문학'의 대표주자라고 했다. 그만큼 그녀의 책에서는 강하고 세고 일반적으로 생각할수 없는 표현들이 자주 나오고 흔히 보기 어려운 관계들이 등장을 한다. 이해하기 힘든 사람도 분명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어떤 소설을 쓰는지를 알고나니 그런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도 불륜이 둥장을 하지만 사쿠라기 시노에 비하면 조금은 약하다는 느낌일까. 아니 약간은 블러 처리가 된 그런 허락되지 않은 로맨스일 수도 있겠다.
[유리갈대]라는 작품은 내가 생각한 것에 비하면 그렇게 강하지는 않았다. 이미 예상을 하고 있어서였을까 성애문학이라 아닌 그냥 일반문학이라 해도 좋을 정도의 등급이지만 그 속에 숨겨진 이야기들은 아주 밀집도가 높다. 흘러 내리는 멀건 꿀을 받아먹는 느낌이 아니라 아주 빡빡한 벌집을 통째로 위에서 아래로 한국자 뜨는 느낌이랄까. 번역자가 이미 경험한 바 있듯이 다른 생각을 할 시간을 좀체 주지 않는 소설이다.
장르소설에서 볼 수 있는 긴장감들을 후반부에서 느끼게 된다. 서장과 종장의 연결이 두드러진다. 서장에서 읽었던 이야기가 중반분를 거쳐서 종장으로 이어지면서 왜 그런 이야기가 되었는지 맥락있는 연결임을 알게된다. 전혀 몰랐던 이야기기가 시간의 순서대로 연결되고 그 이야기의 결론이 맺혀지게 되는 것이다. 서장에서 그 결론을 이미 풀어놓고 있어서 약간 의아해했던 이야기가 마무리 되는 느낌이다.
러브호텔을 운영하는 고다 기이치로 그리고 그의 아내 세쓰코. 남편은 고다는 이미 엄마 리쓰코의 남자친구였다. 엄마의 남자친구를 자신의 남편으로 만든 세쓰코는 대체 어떤 아이란 말인가. "내 아내가 되면 생활에 급급할 일도 없고 그렇게 만들지도 않을 거야. 돈은 풍족하게 줄 테니 마음대로 써. 책도 내줄 수 있고 아침에 늦잠을 자도 돼. 모든 시간은 세쓰코가 자유롭게 쓰면 돼. 거절해도 좋지만 거절당하지 않을 자신도 있어.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중늙은이의 교활한 청혼이라고 해도 좋아. 잘 생각해봐." 고다가 청혼을 했을 떄 한 말이다. 선명하게 기억할 만하다. 어떤 여자라도 저런 식의 청혼을 받는다면 한번쯤은 더 긍정적으로 생각이 기울지 않을까. 나 조차도.
전처 딸이 있지만 이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가서 살고 있으며 고다와의 연락도 잘 되지 않는다. 어디 한 곳 신경 쓸 일이 없다. 엄마 리쓰코가 맘에 걸리지만 엄마한테 연락을 하니 놀라울 정도로 시원하게 대답해 버린다. 자신에게 생활비를 대준자다면 아무 불만이 없다는 엄마. 일본인들의 모두가 이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느다. 단지 특수한 상황일 뿐. 남편을 아빠라고 부르는 고다. 그녀는 호텔일에도 신경을 쓰지 않고 단가모임을 나가는 등 자신만의 편한 생활을 한다. 그러던 어느날 고다의 교통사고 소식을 듣게 된다. 그녀의 일상은 어떻게 바뀔까.
그저 단순하게 엄마의 남자친구와 결혼한 여자의 사랑과 성에 초점을 맞춘 소설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이 사고를 당하고 바뀌어 버린 일상. 거기다가 그녀에게 갑자기 맡겨진 아이까지. 전혀 상관없을 것만 같았던 남편 전처의 자식까지 등장을 하면서 이야기는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세쓰코, 그녀에게 맡겨진 아이는 누구이며 그녀는 그 아이를 어떻게 대해주어야 하는가. 그리고 전처의 딸인 고즈에와는 사이는 어떻게 될 것이면 남편이 사고를 당해서 일어나지 않으면 그녀와의 관계는 또 어쩧게 변화를 할까. 결혼을 했지만 자신이 전에 일했던 사무실의 사와키와도 관계를 끊지 않은 그녀. 남편은 그와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답이 없는 물음의 , 길고 긴 계단을 올라가 사외와키는 포효했다. 두 사람의 몸은 머리에서 팔다리, 발끝에서 시트, 그리고 어둠으로 모래가 되어 흘러갔다.(213p) 숨가쁘게 이어지는 세쓰코의 흔적을 쫓아가다 만난 성애의 흔적. 진득하니 남아 있는 그런 얼룩같은 느낌이 아니라 모래가 되어 계속 흘러내리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부분이다. 남편의 목숨을 모래알에 비유했듯이 사와키의 관계조차도 모래알에 비유하고 있다.
우리네 인생도 어느 한 시점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지나간다. 반복되는 뫼비우스의 띠가 아니라 계속 연속적으로 어디론가 빠져버리는 그런 시간의 개념이다. 그 모래의 끝이 다할무렵 우리의 인생이 끝이 나겠지. 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남편의 사고를 통해서 한 여자의 인생을 종착지를 따라가는 여행. 세쓰코, 그녀의 끝이 궁금해지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