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했어도 슬로북 Slow Book 3
함정임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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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읽노라면 꼭 한번쯤 드는 생각은 이 정도의 분량이라면 나도 쓸 수 있지 않나 하는 것이다. 소설이라면 플롯을 짜고 등장인물을 정하고 인물들간에 관계를 설정하고 갈등이나 긴장요소를 정해야 하지만 에세이는 그저 마음가는 대로 생각나는대로 쓰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만큼 에세이의 벽은 진입하기에 높지 않은 장벽처럼 느껴진다. 

이런 생각으로 글을 써 본 사람이라면 그 벽이 생각보다 훨씬 더 높다는 것도 금세 깨닫게 될 것이다. 에세이라고 해서 재미가 없으면 안된다. 그저 자신만의 이야기를 줄줄이 늘어놓는 것은 단지 일상의 기록이자 일기일 것이다. 일상 이야기나 자신이 느낀 것들, 주위에서 보는 것들을 얼마나 맛깔나게 쓰는가가 에세이를 쓰는 비결일수도 있겠다. 그렇게 쓴다는 것은 그저 생각난대로 쓰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그만큼 에세이를 잘 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에세이를  읽는 것은 어떠할까. 복잡한 이야기들이나 딱딱한 글과는 다르게 에세이는 잘 읽힌다. 어렵지 않은 이야기들이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들로 인해서 페이지는 막힘없이 죽죽 읽힌다. 막상 문제는 페이지를 다 덮고 나서이다. 내가 읽고 공감한 이 글들을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 것이 바로 그 이유다. 

소설처럼 줄거리를 나열해서 쓸 수도 없고 주인공들의 행동을 쓸 수도 없다. 기억해야 할 점을 체계적으로 나열할 수도 없다. 그러니 에세이를 읽고 나서의 느낌을 적는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 되어 버린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에세이는 쓰는 것도 어렵고 읽고 난 이후 쓰는 것도 어려운 것이다.

농도가 짙은 보랏빛이 핑크빛으로 옅어져가면서 그라데이션 되어 있는 표지는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 준다. 짙은 하늘에 적혀 있는 제목은 곰곰히 되새기게 만든다. 
'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했어도'. 누구나 할수 있는 말인데 이렇게 세로줄로 쓰여진 문구를 보노라니 나는 누군가에게 늘 괜찮다는 말만 해온 것은 아닌지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괜찮다는 말조차 할수 없었던 작가는 그 말 대신 이 글을 썼을 것이다. 작가의 마음을 하나하나 보듬어 본다.

<당신의 여름은 괜찮습니까>. <검은 숲길을 걸어 한참을>. <내 마른 손으로 너의 작은 손을 잡고>. <사랑에 관한 긴 이야기>. 총 네개로 구성된 작가의 이야기는 때로는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고 때로는 궁금증을 자아내고 때로는 이 곳을 가보고 싶게 만들고 때로는 책을 찾아보고 싶게 만든다. 

세부적인 제목으로 나누고 있지만 뚜렷하게 기준이 있다고 느껴지는 편은 아니다. 작가는 자신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자신이 여행한 곳의 이야기를 하고 있고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들을 하는가 하면 자신이 생각한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꾸밈없이 그리고 덤덤하게 그려내고 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이미지같다는 느낌도 든다. 울창하게 우거진 숲보다는 곁가지 들이 없이 말끔한 분재같다는 느낌일까.

프랑스 문학을 전공한 작가답게 프랑스 문학의 이야기들이 많이 눈에 띈다. 개인적으로는 프랑스 문학은 장르소설을 빼고는 그닥 가깝게 느끼지지 않아왔다. 묘사가 다르기 때문일까. 번역을 해 놓은 글에서도 프랑스 작품이라는 것을 이내 알아차릴 수가 있을 정도다. 

그렇지만 작가가 직접 설명해주는 책들을 읽고 있노라니 자신이 공부했던 책들 즉 프랑스 문학작품들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지금의 문학이 아닌 고전문학들. 그것들을 읽으면 또 프랑스 문학작품에 대한 생각이 바뀔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부산에 산다. 일 때문애 내려갔었지만 그곳에서 정착해서 글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부산 달맞이 고개. 그곳은 어떤 곳일까. 혼자 상상상을 해본다. 책의 표지와 같이 아름다운 색의 노을이 보이는 곳은 아닐까. 작은 핸디형의 사이즈라서 가지고 다니기에도 부담스럽지 않은 작가의 책을 들고 그곳에 가서 다시 읽어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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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과 소설가 - 대충 쓴 척했지만 실은 정성껏 한 답
최민석 지음 / 비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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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점점 책을 왜 안 사고 빌려 읽을까요? (192p)


- 일단은 사람들이 책을 빌려서라도 읽으니 다행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만큼 책을 읽는 인구는 줄었거든요. 예전과 비교한다면 확실히 줄어버렸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미디어의 발달과 맞물려있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멀리갈 것도 없이 작가님과 저를 포함한 지금의 기성세대가 어린 시절만 해도 그렇게 놀 거리는 많지 않았습니다. 텔레비젼과 라디오가 전부였던 시절이었죠. 물론 만화방도 있었을 것이고 비디오도 있었고 롤러장도 있었겠지만 가장 흔하게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것은 두가지가 전부였죠. 라디오에서 나오는 좋아하는 노래를 녹음하려고 애쓰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보니 재미나는 것을 찾기 위해서 또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자연히 책을 많이 읽었죠. 


컴퓨터라는 물건이 대중화되고 나서 우리시대는 확실히 변했습니다. 컴퓨터 게임이 생겨나고 채팅이 유행을 하고 인터넷이 발달을 하면서 볼 것도 너무 많이 늘어나고 구태여 지식을 책에서 알아 낼 필요가 없어진 것이죠. 소설책보다도 더 재미난 것들이 가득한 컴퓨터인걸요. 


그나마 거기까지였다면 그래도 책을 보았을지도 모르죠. 스마트폰이 발달되면서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컴퓨터를 한대씩 들고 다니는 것이나 다름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죠. 재미난 것이 바로 손안에 들어있는데 더더욱 책을 볼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이 책과 멀어질 필연적인 계기가 되어 버린 셈이죠. 


거기다가 여기에 도화선이 되어버린 게 있었으니 도서정가제 이름하여 도정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나라에서 지정된 가격에 팔아라 해 버리니 가격은 점점 오르고 고정된 값은 내려오지를 않죠. 북페스티발에 가면 지나간 도서라던가 인기를 얻지 못하고 창고에 있던 아이들을 싼 가격에 팔아서 그런 것들을 사는 재미도 쏠쏠했는데 도정제는 그것마저도 못하게 묶어 버렸죠. 


모든 것은 다 올라가고 오르지 않는 것은 월급밖에 없다고 했던가요. 그런 빠듯한 살림에서 줄일 수 있는 것은 책값 뿐이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사람들이 책을 살 기회를 막아 버리는 나라의 법입니다. 이런 법을 만든 사람들은 책을 사기나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야기가 길었습니다. 작가님의 고민에 진지하게 답변을 해 보았네요. 책을 만들어내는 시장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하죠.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하죠. 신문도 종이신문보다는 화면으로 읽는 세상이 되어 버렸죠. 책의 미래는 밝아보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없어지지는 않을 것 같지 않습니까? 손끝에서 느껴지는 종이의 질과 화면의 차가움은 정녕 다를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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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세대이며 소설가인 작가가 대학생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그 질문에 자신도 같이 고민하며 답을 해준 이야기.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거친 대학생이라는 신분은 그들에게 모든 것을 할 수 있게도 해주지만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하는 그들에게는 여전히 어렵고 힘든 시기이기도 할 것이다. 


자신을 돌아보는 <자아>와 <사랑>과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미래>까지 네부분으로 나누어진 그들의 고민은 자칫 풋 하고 웃음이 터지는 것도 있지만 실제로 진지하게 모든 그 또래들이 생각할 수 있느 고민들을 다시 생각해보게도 한다. 


나는 그 시절에 어땠는가. 나도 이들처럼 치열하개 고민을 하면서 살아왔던가. 내가 해주는 말을 항상 하나다. 3가지 중에 하나는 치열하게 해보라고. 연애를 하던가, 공부를 하던가 놀아보던가. 미친듯이 해볼 수 있는 기회는 그때뿐이라고 말이다. 


무엇이든 그 마지막을 보게 되면 그 다음은 통달하게 되는 법이 아니던가. 대학생이라는 때에 해보지 못한다면 이 세가지의 끝을 볼 기회는 정녕 없는 법이다. 지금 대학생이라면 미친듯 놀아보던가 미친듯 연애를 하던가 그것도 아니면 미친듯 공부를 해라. 그것이 나의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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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인 소녀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6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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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높이가 다르면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이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눈에 보이는 그 자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307p)


이 책을 읽기 바로 전 [브레이크 다운]에서는 한 여자가 느끼는 죄책감을 근거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갔다. 자신이 폭우속에서 보았던 여자가 죽음을 당한 것이다. 자신이 그녀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자신을 자책하는 한 여자의 모습이 이 책을 읽는 내내 스쳐 지나간다. 


내가 죽이지는 않았지만 내가 사건에 연계가 되어있다면 나로 인해서 다른 사람이 죽은 것은 아니지만 혹시라도 내가 막을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들. 사와자키 탐정도 분명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 사건을 풀어갔을 것이다. 비록 브레이크 다운의 여자처럼 자기 자신의 생활을 하지 못할만큼 심하게는 아니었어도 말이다.


사건을 의뢰하는 한통의 전화. 사와자키는 여느날과 다름없이 자신의 낡은 블루버드를 몰고 그곳으로 향한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자신에게 돌아온 것은 의뢰가 아닌 질문이다. 자신의 딸을 돌려달라는 남자의 울부짖음. 사와자키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무언가 싶을때쯤 어디선가 나타난 경찰들에 의해서 사와자키는 졸지에 연행되고 만다. 자신은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것이 범인의 계획인가 하고 느낄 무렵 경찰은 그간의 사정을 말해준다. 작가의 딸이 유괴되었고 몸값을 준비하라는 전화를 받았으며 그 돈이 든 가방을 사와자키에게 맡기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무런 연관도 없던 사와자키는 이렇게 해서 이 유괴사건에 개입을 하게 된다. 


십대의 아직 어린 소녀는 누구에게 유괴가 된 것이며 유괴를 한 사람은 돈 6천만엔을 돌려주면 무사히 그 소녀를 풀어줄 생각인 것일까. 전형적인 유괴사건이기는 하지만 하나의 사건으로 말미암아 끊임없는 사건들이 줄기를 엮어가며 이어진다. 사와자키는 어떻게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


현금 1억엔과 각성제를 들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와타나베는 여전히 사와자키의 곁을 맴돈다. 그가 왜 그런 짓을 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언급되지 않는다. 단지 하루아침에 자신의 가족을 모두 잃은 충격때문에 생을 버렸을 것이라는 추축만 나올 뿐이다. 알콜중독에 걸려서 술만 의지하는 그이지만 자신이 세운 이 사무실을 떠날 수 없었던 것일까. 


광고지에 짧은 글을 적어 사와자키에게 자신이 살아있음을 알린다. 그 종이비행기가 왜 이리도 슬퍼 보이는 것인가. 영화의 장면으로 본다면 분명 종이 비행기에 포커스를 맞추어서 팔랑거리며 날아가면서 장면을 줌으로 당겼을 지도 모르겠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작은 미키마우스가 백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131p)

초여름의 하루는 돈을 꾸기 위해 늘어놓는 서론처럼 길어,(387p)


연속으로 하라 료의 사와자키 시리즈를 읽고 있노라니 작가 특유의 담담하면서 세련된 문체들이 눈에 들어온다. 다른 작가들이 흉내낼수 없는 그런 표현들이다. 여름날이 길다는 표현을 돈을 꾸기위해 말하는 서론으로 비유하다니 참으로 신선한 비유법이 아닌가. 진부한 표현보다는 이렇게 새롭고 눈에 익지 않은 표현들을 보는 것은 책을 읽는 하나의 즐거움이다.


푸른빛의 표지에는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은 한 소녀가 바이올린을 켜고 있다. 바이올린을 켜는 소녀. 천재라 불리웠던 그 소녀는 지금 이 가정에서 사라지고 없다. 한창 보호를 받아야 할 시점에 없어진 소녀. 그 소녀를 데려간 인물은 대체 누구인 것인가. 앞으로도 큰 미래가 보장되어 있는 만큼 그 소녀가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읽게 된다. 비록 '내가 죽인 소녀'라는 제목이 스포가 될지라도 말이다. 


하라 료의 사와자키 시리즈는 이제 [어리석은 자는 죽어야 한다]로 2부를 시작했다. 사와자키 탐정의 또다른 하루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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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자는 죽어야 한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5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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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 료의 책을 읽는 법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시간과 장소를 선택한다.

책을 손에 든다.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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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건이 수행되지 않는다면 그의 책을 읽는 참맛을 느끼기 힘들 것이다. 즉 진득하니 꾸준히 읽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는 것이다. 스릴러처럼 휙휙 마구 페이지가 넘어가는 그런 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다고 재미가 없어서 이해가 안되거나 그래서 속도를 늦춰서 다시 읽거나 해야 하는 그런 분야도 아니다. 그저 꾸준히 그리고 끈질기게 그렇게 사와자키의 뒤를 따라가다 보면 입에 씹고 있던 무언가에서 즙이 나오듯이 그 진미가 살아난다는 말이다. 그런 밀어붙이는 맛이 있는 책이다.


시즌 2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내가 죽인 소녀], [안녕, 긴 밤이여]까지 세 작품을 묶어서 시즌 1로 구성한 작가는 같은 주인공을 대상으로 같은 배경을 대상으로 시즌 2를 기획해냈다. 연장선 상에 있다. 굳


이 시즌 2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시즌 1 뒷 이야기 그 다음 이야기라도 이해할수 있을 듯 한데 굳이 작가가 시즌 2라고 이름을 새롭게 붙인 데에는 급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사이 9년이라는 시간이 흘러버린 것이 가장 큰 이유일수도 있겠다. 그동안 사와자키 탐정은 어떻게 변했을까.


자신을 이쪽길로 이끌어 낸 동료 와타나베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사무소. 아직도 와타나베를 찾는 사람은 심심치않게 있다. 그가 이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지금에도 말이다. 물론 사무소 이름을 보고 그렇게 찾는 사람도 있지만 여전히 그와 관련된 인물도 있는 까닭이다. 


사무소를 새롭게 꾸며야 겠다는 생각만 벌써 몇년째, 한 해의 마지막 날 사무소를 여는데 메모지가 한장 팔랑거리고 떨어진다. 무심한 사와자키는 신경도 쓰지 않고 일단 자리로 돌아와 앉는데 어느틈엔가 쪽지의 주인이 나타난다. 급하게 와타나베를 만나고 싶다는 여자. 머리로 하나로 야무지게 묶은 그녀는 이십대로 보이지만 그보다 훨씬 더 어려보이기도 한다. 


그녀는 자신의 아빠를 구해달라는 부탁을 한다. 은행총격사건으로 총을 쏘았고 그 사건의 범인이라고 아빠가 자수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무슨일이 있거든 와타나베를 찾으라고 평상시에도 이야기를 했다는데 알고보니 불량청소년으로 이름 날리던 그녀의 아빠에게 와나타베는 폭력단에 들어가라고 충고를 했었단다. 


그 말을 그대로 들은 십대의 그녀의 아빠, 이부키 데쓰야는 실제로 폭력단에 들어가 조직 생활을 했다는 것. 그 이후 손을 씻고 지금은 요릿집 주인을 하고 있지만 전력을 들어보면 꼭 그가 그런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말할수도 없는 듯 하다. 은행사건의 진범은 누구인가.


그녀의 아버지를 면회할 수 있다는 전화를 받고 사와자키와 그녀는 급하게 경찰서로 이동을 한다. 이 와중에 또 하나의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은행에서도 일어난 총격사건. 그녀의 아버지를 이송하는 와중에 일어난 총격사건. 사와자키는 이 사건의 목격자이자 이 사건을 막아보려고 교통사고를 일으킨 당사자이기도 하다. 


분명 은행에서의 총격사건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점점 가지를 치고 뻗어나간다. 그와 함께 그날 그 시간에 은행에서 사라진 90대 노인의 행방도 묘연해진다. 총격사건과 유괴사건은 어떤 연유로 이렇게 하나의 짝이 되어 같이 묶여 버린 것인가. 그것은 의도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적으로 우연에 의한 것이었다. 사방에 가지를 치고 뻗어나가는 사건들이지만 그 와중에 우연히 이렇게 묶여버리는 사건도 있는 것이다. 하나의 사건은 이제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한다. 


하라료의 책을 읽기 전 반드시 제일 앞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미리 파악해 둘 것. 이름과 그들의 간략한 설명만 알고 시작한다 하더라도 훨씬 더 재미나게 이야기를 읽을수 있는 지름길이 된다. 굳이 지름길을 두고 멀리 돌아가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부디 평안히 가시길. 


작가는 이 작품을 내고 오래지 않아 그 다음 작품을 우리에게 보여주겠노라고 약속을 했다. 그 다음 이야기가 또 기대가 된다. 우직한듯 충성스러운 듯 그러면서도 사건을 물고 다니는 사와자키. 경찰에 척을 지는 듯, 자신의 실속을 챙기는 듯, 약자의 편에 서는 사와자키를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 맺는말을 대신하여 나오는 아주 짤막한 이야기는 작가가 우리에게 주는 하나의 덤이라 느껴진다. 그것마저도 재미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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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 전면개정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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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여행을 다녀오면서 [내가 죽인 소녀]를 가져 갔다. 긴 비행시간을 계산하고 두권을 가져갔지만 결국 이 책은 펴보지도 못하고 다시 데리고 와야만 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아주 잘된 일이다. 사와자키 시리즈라고 불리는 하라 료의 이야기 중 두번째인 그 책은 일단 전편을 읽은 후 차례대로 읽는 것이 더 연결성을 주어서 읽는 맛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이 책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를 읽었다. 시리즈의 첫 편 이제 막 이야기가 시작하려는 참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많은 이야기들을 늘어놓기보다는 자신만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다. 그래서 더 몰입도가 살아난다. 이제야말로 바로 [내가 죽인 소녀]를 읽을 타이밍이다.


하라 료의 책은 사와자키 시리즈 세번째인 [안녕, 긴잠이여]를 처음으로 접했다. 솔직히 말해서 첫인상은 별로였다. 하드보일드라는 장르를 몰랐고 모르기 때문에 덤볐으며 그랬기 때문에 참패했다. 빠르고 스케일이 큰 스릴러에 익숙했던 나로써는 '하드보일드'라는 장르에 빠지기가 어려웠던 탓이다. 딱딱한 달걀껍질에 맨몸으로 헤딩하고 있는 꼴이랄까. 아무리 머리를 디밀어도 껍질은 깨어지지 않았다. 


어렵게 어렵게 책한권을 읽어내었다. 그리고 잊었다. 그 이후로도 더 깊은 하드보일드를 읽었다. 같은 장르지만 다른 작가의 책을 읽다보니 하라 료의 하드보일드는 껍질이 얇은 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럴 때쯤 [천사들의 탐정]을 만났다. 이 한편으로 작가에 대한 나의 관점은 전혀 180도로 바뀌었다. 이 역시 사와자키 시리즈이긴 하지만 하나의 주제로 연결되지 않는다. 


저마다의 다른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는 단편들이다. 그런 단편의 장점은 짧고 이야기가 복잡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장르적이라고 해도 쉽게 덤벼들어서 정복할 수 있다는 것이 잇점이다. 역시나였다. 너무나도 재미나게 읽혔던 이 책은 내가 전에 알고 있던 작가에 대한 첫인상을 깨뜨렸다. 


[안녕, 긴잠이여]를 다시 읽게 만들었다. 하드보일드라는 것을 알고 조금 더 접해보고 돌아온 이 책은 전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으로 읽혔다. 내가 그토록 깨기 어려웠던 껍질이 아니라 몇번 힘을 주니 그대로 속살을 내보였던 것이다. 두드려서 안되는 것은 없다던가. 그래서 나는 이 시리즈를 처음부터 시작해보기로 마음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안녕, 긴잠이여]에서는 사와자키가 일년도 넘게 돌아다니다 사무실에 돌아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첫 이야기인 이 책은 사무실에 출근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문도 열지 않은 사무실 앞에서 나를 기다리는 한 남자. 아니 내가 아닌 나의 동료 와타나베를 기다리는 한 남자. 사무실 이름을 '와타나베 사무소'라고 했기 때문에 누구라도 그렇게 먼저 질문한다. 


그는 나에게 사에키라는 남자를 만난 적이 있느냐고, 그 남자를 아느냐고 묻는다. 그런 남자를 모르는 나는 일방적으로 말하고 외면하지만 그는 연락이 되지 않는다며 나에게 그 사람에 대해서 알려주기를 부탁하며 거의 억지로 돈을 던져 주고 갔다. 그 남자가 누구이기에 나는 이런 사건을 맡아야 하는 건가. 의문점이 가시기도 전에 또 이 사람을 찾는 의뢰가 들어온다. 사라진 남자의 부인인 미술평론가의 딸로부터다. 이 남자는 무슨 일을 하고 있었기에 이렇게 사라진 걸까. 이 시점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중간에 등장하는 영화장면은 로버트 라이언이 나온다고 설명이 되어있다.(266p) 몇장면이 자세히 나오기에 궁금증이 생긴다. 검색의 결과로 <And the hope to die> 이 영화가 나왔다. 이 외에도 본문에서 오손 웰즈의 <제3의 사나이>도 등장한다고 한다. (예스24블로그 -Life is kind to me 에서 검색) 


영화의 장면에 대한 설명뿐 아니라 저택에 있는 단 한점의 그림인 조르주 루오의 유화에 관한 설명도 나온다. 하늘의 희뿌연 달과 불길한 바람처럼 거칠게 붓질한 녹색물감이 묘한 콘트라스를 이루었다.(367p) 작가는 아무래도 여러 방면에 다양한 관심이 있음에 틀림없다. 그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그림에 대한 묘사가 글로 쓰여질수 있을까. 하드보일드라고 해서 굉장한 퍽퍽한 인상만을 생각했는데 의외로 말랑한 감성을 보여주는 면들 꽤 엿보인다. 


작가가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작품을 읽어본적 있다. 그때 당시 나는 '드라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평을 적어두었다. 하라 료의 작품은 처음 읽었을 때와 두번 읽었을때의 느낌이 사뭇 달랐다. 챈들러의 작품도 그렇게 느껴질지 궁금해진다. 하라 료 덕분에 나에게 하드보일드는 조금은 더 가까운 장르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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