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했어도 슬로북 Slow Book 3
함정임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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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읽노라면 꼭 한번쯤 드는 생각은 이 정도의 분량이라면 나도 쓸 수 있지 않나 하는 것이다. 소설이라면 플롯을 짜고 등장인물을 정하고 인물들간에 관계를 설정하고 갈등이나 긴장요소를 정해야 하지만 에세이는 그저 마음가는 대로 생각나는대로 쓰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만큼 에세이의 벽은 진입하기에 높지 않은 장벽처럼 느껴진다. 

이런 생각으로 글을 써 본 사람이라면 그 벽이 생각보다 훨씬 더 높다는 것도 금세 깨닫게 될 것이다. 에세이라고 해서 재미가 없으면 안된다. 그저 자신만의 이야기를 줄줄이 늘어놓는 것은 단지 일상의 기록이자 일기일 것이다. 일상 이야기나 자신이 느낀 것들, 주위에서 보는 것들을 얼마나 맛깔나게 쓰는가가 에세이를 쓰는 비결일수도 있겠다. 그렇게 쓴다는 것은 그저 생각난대로 쓰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그만큼 에세이를 잘 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에세이를  읽는 것은 어떠할까. 복잡한 이야기들이나 딱딱한 글과는 다르게 에세이는 잘 읽힌다. 어렵지 않은 이야기들이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들로 인해서 페이지는 막힘없이 죽죽 읽힌다. 막상 문제는 페이지를 다 덮고 나서이다. 내가 읽고 공감한 이 글들을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 것이 바로 그 이유다. 

소설처럼 줄거리를 나열해서 쓸 수도 없고 주인공들의 행동을 쓸 수도 없다. 기억해야 할 점을 체계적으로 나열할 수도 없다. 그러니 에세이를 읽고 나서의 느낌을 적는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 되어 버린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에세이는 쓰는 것도 어렵고 읽고 난 이후 쓰는 것도 어려운 것이다.

농도가 짙은 보랏빛이 핑크빛으로 옅어져가면서 그라데이션 되어 있는 표지는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 준다. 짙은 하늘에 적혀 있는 제목은 곰곰히 되새기게 만든다. 
'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했어도'. 누구나 할수 있는 말인데 이렇게 세로줄로 쓰여진 문구를 보노라니 나는 누군가에게 늘 괜찮다는 말만 해온 것은 아닌지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괜찮다는 말조차 할수 없었던 작가는 그 말 대신 이 글을 썼을 것이다. 작가의 마음을 하나하나 보듬어 본다.

<당신의 여름은 괜찮습니까>. <검은 숲길을 걸어 한참을>. <내 마른 손으로 너의 작은 손을 잡고>. <사랑에 관한 긴 이야기>. 총 네개로 구성된 작가의 이야기는 때로는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고 때로는 궁금증을 자아내고 때로는 이 곳을 가보고 싶게 만들고 때로는 책을 찾아보고 싶게 만든다. 

세부적인 제목으로 나누고 있지만 뚜렷하게 기준이 있다고 느껴지는 편은 아니다. 작가는 자신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자신이 여행한 곳의 이야기를 하고 있고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들을 하는가 하면 자신이 생각한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꾸밈없이 그리고 덤덤하게 그려내고 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이미지같다는 느낌도 든다. 울창하게 우거진 숲보다는 곁가지 들이 없이 말끔한 분재같다는 느낌일까.

프랑스 문학을 전공한 작가답게 프랑스 문학의 이야기들이 많이 눈에 띈다. 개인적으로는 프랑스 문학은 장르소설을 빼고는 그닥 가깝게 느끼지지 않아왔다. 묘사가 다르기 때문일까. 번역을 해 놓은 글에서도 프랑스 작품이라는 것을 이내 알아차릴 수가 있을 정도다. 

그렇지만 작가가 직접 설명해주는 책들을 읽고 있노라니 자신이 공부했던 책들 즉 프랑스 문학작품들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지금의 문학이 아닌 고전문학들. 그것들을 읽으면 또 프랑스 문학작품에 대한 생각이 바뀔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부산에 산다. 일 때문애 내려갔었지만 그곳에서 정착해서 글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부산 달맞이 고개. 그곳은 어떤 곳일까. 혼자 상상상을 해본다. 책의 표지와 같이 아름다운 색의 노을이 보이는 곳은 아닐까. 작은 핸디형의 사이즈라서 가지고 다니기에도 부담스럽지 않은 작가의 책을 들고 그곳에 가서 다시 읽어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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