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 전면개정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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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여행을 다녀오면서 [내가 죽인 소녀]를 가져 갔다. 긴 비행시간을 계산하고 두권을 가져갔지만 결국 이 책은 펴보지도 못하고 다시 데리고 와야만 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아주 잘된 일이다. 사와자키 시리즈라고 불리는 하라 료의 이야기 중 두번째인 그 책은 일단 전편을 읽은 후 차례대로 읽는 것이 더 연결성을 주어서 읽는 맛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이 책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를 읽었다. 시리즈의 첫 편 이제 막 이야기가 시작하려는 참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많은 이야기들을 늘어놓기보다는 자신만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다. 그래서 더 몰입도가 살아난다. 이제야말로 바로 [내가 죽인 소녀]를 읽을 타이밍이다.


하라 료의 책은 사와자키 시리즈 세번째인 [안녕, 긴잠이여]를 처음으로 접했다. 솔직히 말해서 첫인상은 별로였다. 하드보일드라는 장르를 몰랐고 모르기 때문에 덤볐으며 그랬기 때문에 참패했다. 빠르고 스케일이 큰 스릴러에 익숙했던 나로써는 '하드보일드'라는 장르에 빠지기가 어려웠던 탓이다. 딱딱한 달걀껍질에 맨몸으로 헤딩하고 있는 꼴이랄까. 아무리 머리를 디밀어도 껍질은 깨어지지 않았다. 


어렵게 어렵게 책한권을 읽어내었다. 그리고 잊었다. 그 이후로도 더 깊은 하드보일드를 읽었다. 같은 장르지만 다른 작가의 책을 읽다보니 하라 료의 하드보일드는 껍질이 얇은 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럴 때쯤 [천사들의 탐정]을 만났다. 이 한편으로 작가에 대한 나의 관점은 전혀 180도로 바뀌었다. 이 역시 사와자키 시리즈이긴 하지만 하나의 주제로 연결되지 않는다. 


저마다의 다른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는 단편들이다. 그런 단편의 장점은 짧고 이야기가 복잡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장르적이라고 해도 쉽게 덤벼들어서 정복할 수 있다는 것이 잇점이다. 역시나였다. 너무나도 재미나게 읽혔던 이 책은 내가 전에 알고 있던 작가에 대한 첫인상을 깨뜨렸다. 


[안녕, 긴잠이여]를 다시 읽게 만들었다. 하드보일드라는 것을 알고 조금 더 접해보고 돌아온 이 책은 전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으로 읽혔다. 내가 그토록 깨기 어려웠던 껍질이 아니라 몇번 힘을 주니 그대로 속살을 내보였던 것이다. 두드려서 안되는 것은 없다던가. 그래서 나는 이 시리즈를 처음부터 시작해보기로 마음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안녕, 긴잠이여]에서는 사와자키가 일년도 넘게 돌아다니다 사무실에 돌아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첫 이야기인 이 책은 사무실에 출근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문도 열지 않은 사무실 앞에서 나를 기다리는 한 남자. 아니 내가 아닌 나의 동료 와타나베를 기다리는 한 남자. 사무실 이름을 '와타나베 사무소'라고 했기 때문에 누구라도 그렇게 먼저 질문한다. 


그는 나에게 사에키라는 남자를 만난 적이 있느냐고, 그 남자를 아느냐고 묻는다. 그런 남자를 모르는 나는 일방적으로 말하고 외면하지만 그는 연락이 되지 않는다며 나에게 그 사람에 대해서 알려주기를 부탁하며 거의 억지로 돈을 던져 주고 갔다. 그 남자가 누구이기에 나는 이런 사건을 맡아야 하는 건가. 의문점이 가시기도 전에 또 이 사람을 찾는 의뢰가 들어온다. 사라진 남자의 부인인 미술평론가의 딸로부터다. 이 남자는 무슨 일을 하고 있었기에 이렇게 사라진 걸까. 이 시점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중간에 등장하는 영화장면은 로버트 라이언이 나온다고 설명이 되어있다.(266p) 몇장면이 자세히 나오기에 궁금증이 생긴다. 검색의 결과로 <And the hope to die> 이 영화가 나왔다. 이 외에도 본문에서 오손 웰즈의 <제3의 사나이>도 등장한다고 한다. (예스24블로그 -Life is kind to me 에서 검색) 


영화의 장면에 대한 설명뿐 아니라 저택에 있는 단 한점의 그림인 조르주 루오의 유화에 관한 설명도 나온다. 하늘의 희뿌연 달과 불길한 바람처럼 거칠게 붓질한 녹색물감이 묘한 콘트라스를 이루었다.(367p) 작가는 아무래도 여러 방면에 다양한 관심이 있음에 틀림없다. 그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그림에 대한 묘사가 글로 쓰여질수 있을까. 하드보일드라고 해서 굉장한 퍽퍽한 인상만을 생각했는데 의외로 말랑한 감성을 보여주는 면들 꽤 엿보인다. 


작가가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작품을 읽어본적 있다. 그때 당시 나는 '드라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평을 적어두었다. 하라 료의 작품은 처음 읽었을 때와 두번 읽었을때의 느낌이 사뭇 달랐다. 챈들러의 작품도 그렇게 느껴질지 궁금해진다. 하라 료 덕분에 나에게 하드보일드는 조금은 더 가까운 장르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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