뮬란 새로운 여정 디즈니 오리지널 노블
엘리자베스 림 지음, 성세희 옮김 / 라곰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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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파핑이 된 파뮬란의 지옥 어드벤쳐>

 

<지옥에서 벌어지는 지옥같이 힘든 지옥 탈출기>

 

나는 파뮬란이다. 가족과 중국을 위해 목숨을 거는 소녀. 죽어가는 친구를 구하기 위해 저승으로 내려온 소녀. 마침내 거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기 위해 전투에 전투를 거듭한 소녀. 이제 난 알았다. (368p)

 

적은 군사들로 많은 적들을 상대해서 이길 때만해도 좋았을 것이다. 분명. 자신의 장군이 죽어갈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상태로 말이다. 장군인 샹이 부상으로 죽어갈 운명에 놓이자 핑으로 변장한 뮬란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라도 그를 구하고자 지옥으로 뛰어든다. 그녀를 샹을 찾아서 무사히 이승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어찌보면 뻔한 이야기일수도 있다. 답이 정해져 있다는 이야기다. 뮬란이 주인공인 스토리에서 뮬란이 죽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고 그녀가 목숨을 구하고 미션을 수행하러 뛰어든 만큼 그 미션은 컴플리트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다.

 

책은 애니메이션의 장면장면을 자주 삽입하고 있다. 즉 한권의 책을 읽어가면서 애니의 장면을 같이 볼 수 있다는 소리다. 그로 인해서 이 영화에 관심도도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야기의 구성으로 짐작해보건대 애니의 화려한 영상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이라 짐작된다. 볼거리가 충분하다는 소리다.

 

미국의 영화에는 유달리 미국을 강조하는 부분들이 적지않게 등장한다. 이른바 세계의 중심은 미국이고 모든 재난이 일어났을 당시 이 세계를 구할 것은 미국이라는 그런 정신이다. 그런 사상이 이 책에서도 살짝 보인다. 중국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 중국을 구할 것은 자신들인 것처럼 말이다. 그런 점이 또 특이하게 눈에 들어오게 된다.

 

기존의 영화에서 살짝 조건을 바꾸어 시작된 이 이야기는 뮬란의 스핀오프라 할 수 있다. 뮬란을 즐겼다면 다른 버전의 이 이야기를 더욱 흥미로와 할 것이고 뮬란을 보지 않았다 하더라도 상관없이 이 자체로도 충분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된다. 화려한 색채로 가득할 이야기. 애니가 더욱 궁금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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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멸일기 - 윤자영 장편소설
윤자영 지음 / 몽실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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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야, 민수 좀 불러줘~!"

 

시작부터 뭔 말인가 하고 생각할 것인가? 왜 말도 안되는 단어 놀음인가 하고 생각하겠는가? 이 문장은 내가 학교다닐 때 우리 반에서 자주 쓰였던 말이다. 물론 내가 말한 문장이기도 하고 말이다. 이런 문장이 나오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민수'라는 아이가 두 명이 있어야 한다는 것. 민수라는 이름이 사뭇 남자스럽지만 다행하게도 저 두명의 민수는 모두 여자였고 둘은 친구였으며 이 책에서와 같은 불상사는 존재하지 않았었다.

 

피해자는 궁금하다. 왜 저 아이는, 왜 저 무리는 나를 괴롭히는지 말이다. 그 이유가 궁금할 것이다. 가해자의 입장에서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다. 그냥 모든 것이 그냥 싫은 것이다. 딱히 뭐가 어떠해서 어떠하다라는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시작부터 그들 사이에는 이해할 수 없는 강이 생겨버린 셈이다.

 

여기 이 둘의 관계도 그러하다. 같은 이름을 가진 둘이지만 그들은 내 친구들처럼 잘 지내지 못했다. 친구는 커녕 어느 한쪽이 한쪽을 지배하는 주종관계가 성립된 것이다. 속칭 말하는 삥을 뜯는 것도 아니다. 단지 물리적인 힘이 가해질 뿐이다. 누군가는 대들면 되지, 서로 맞서  싸우면 되지 왜 당하고만 있느냐고 의문을 가질수도 있을 것이다.

 

일단은 일 대 다수의 관계가 성립하기 때문에 대드는 것이 어렵다. 더군다나 상대방은 전부 등치가 있는 아이들이라면 더욱 어렵다. 대들어봐야 매만 늘 뿐이다. 그러니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왜 교사나 학부모에게 알리지 않았느냐고 반문을 가질수도 있을 것이다. 시도해봤다. 돌아온 것은 비난과 누명이었다. 그러니 같은 실수를 두번 하지는 않는다. 바보도 아니고 말이다.

 

오히려 자신이 가해자로 몰려서 그 장소를 벗어났을 때는 편했다. 이제야말로 저들의 마수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홀가분한 생각도 들었을 것이다. 이제는 내 마음대로 학교생활을 할 수 있껬다는 생각도 들었을 것이다. 그 마음이 얼마나 홀가분 했을지 이해하기도 남음이 있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은 너무 일렀다. 그들을 만나게 되지 않았던 것도 잠시, 또 같은 학교에서 만나게 된 둘. 운명의 신은 왜 항상 비켜가지를 않는 것인가. 이제는 정말 결단을 내려야 한다. 저 아이를 죽이던가 내가 죽던가 둘중 하나다.

 

장르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재미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문학을 심도있게 분석해가면서 읽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적어도 독자들이라면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잘 읽혀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보았을때 이 소설은 십점 만점에 십점이다. 이야기의 전개가 빠르고 뒤쳐짐이 없다. 빙판을 가르는 스케이트 날처럼 슥슥 바닥을 지치며 앞으로 나가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약간의 느슨함을 허용했다 싶을 무렵 바로 치고 들어 그 탄성을 유지해준다. 그럼으로 더욱 탱탱해진 느낌으로 죽 끌고 나간다.

 

현실성과 사실성은 더욱 그 탄력을 뒷받침해준다. 허황된 조건들이나 사건들이 아니다. 지금 실제로도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이고 현실들이다. 그것은 지금 이 현장에 작가가 존재하기 때문에 더욱 그런 면을 반영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본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그 위에 허구적인 인물의 캐릭터를 쌓고 사건을 만들어 내고 거기에 다시 사실적인 조건들을 부여해 준 것이다. 그렇게 생겨난 이야기는 탄탄할 수 밖에 없다. 기존에 펴낸 책과는 조금 다른 결의 이 책이 작가의 다음 작품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다 줄지 더욱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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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엄마 케이스릴러
이지은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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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women, of the women, for the women.

 

엄마라는 이름으로 무엇이든 다 해낼 수 있다. 그것이 엄마의 힘이던가. 호연의 엄마인 영도.영도의 엄마인 청옥. 그렇게 삼대를 기준선으로 삼아서 이야기들을 더 넓은 우주로 퍼져 나가고 있다. 호연의 생모인 준미. 그녀가 감옥에서 딸로 삼은 딸.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전문 킬러까지도 모조리 여자로 구성된 과히 여자들 특집이라 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의 등장인물 군단이다.

 

한마디로 여자들의 세상이다. 3백페이지가 조금 못 되는 이 책에서 남자라고는 단 두명이 등장을 한다. 호연이 위급상황에서 도움을 청했던 전직기자 창성과 이준미가 일했던 곳의 주인인 민정원, 그 둘이 전부다.

 

 엄마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엄마가 없다고 한다면 엄마가 자신보다 일찍 돌아가셨거나 아니면 엄마가 아이를 버렸거나 하는 것이 대표적인 경우일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엄마가 많은 경우도 존재할 것이다. 입양된 아이인 경우 아이를 낳은 생모와 아이를 키운 엄마, 그렇게 두명의 엄마가 존재할 것이다. 

 

여기 호연의 경우가 그러하다. 취직도 실패하고 남자친구와도 깨어진 그녀에게 전해진 편지 한통. 자신은 기억에도 없는 생모가 보낸 편지다. 그녀는 호연이 누군가를 만나기를 바라고 있는데 한번도 보지 못했던 생모의 부탁을 들어주어야 하는 건가하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그렇다고 자신의 엄마에게는 말을 할 수가 없다. 그녀의 선택에 따라서 이 상황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일단 등장인물이 적지 않다. 모두 여자라서 더 헷갈릴 법도 한데 우리나라 작품이니 그런 위험성을 덜었다. 엄마와 딸의 관계를 그리고 있는 듯 하지만 그 속에는 서로가 말하지 못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 이야기의 긴장감은 그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모녀사이에 서로를 믿지 못하고 점점 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혼자서 독자적으로 나서게 된다. 그것이 의도하는 결과는 무엇이 될지 뻔하지 않은가. 모두의 파멸로 이끌수도 있다.

 

미술을 전공한 작가는 케이스릴러 작가 공모전에 당선되어 이 작품으로 우수상을 수상했다. 데뷔작으로 여기지지 않을만큼 촘촘한, 내뱉지 못한 이야기들이 숨을 도사리게 만든다. 내쳐 달려 읽어야지만 그 맛의 진가를 알 수 있는 작품. 이 책을 잡기 전, 주변 정리를 확실히 하고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을 시간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제대로 느껴보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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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조지 오웰 지음, 김욱동 옮김 / 비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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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주인이었던 농장에서 동물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인간을 내쫓고 자신들이 농장을 차지한다. 결국은 자신들도 인간들처럼 권력을 누리게 된다. 이 한 권의 책을 단 두문장으로 줄인다면 간단하다. 내가 읽은 동물농장은 그런 의미였다. 빨간색의 얇은 원서. 그 이후에 읽었던 책도 역시나 원서였다. 작품해설이 붙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문맥 그대로만 이해했을 뿐이다.

 

비채에서 나온 [동물농장]을 읽기 전 작품해설을 먼저 읽어본다. 내가 읽었던 동물농장이 아니다. 이것이 단순한 동물우화가 아닌 정치적 알레고리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알레고리는 겉으로 드러난 축어적 의미가 아닌 비유적 의미를 전달하려는 문학형식을 말한다.(224p) 이 책이 정치적 사상을 그렇게 많이 띠고 있을 줄이야.

 

해설에서는 본문에서 작가가 언급하는 작중인물들과 사건과 비유적 의미를 도표로 그려놓아서 아주 이해하기 쉽다. 장원농장의 주인이었던 존스는 실제로는 러시아 시대의 니콜라이 2세를 의미하고 그를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 실세인 나폴레온은 스탈린을 의미한다. 나는 동물농장이라는 작품을 정말 딱 반쪼가리만 이해하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한자에서 온 말은 라틴어나 고대 그리스어에서 파생된 영어와 같고 앵글로- 색슨 말은 순수한 토박이 말과 같다. (263p)

 

번역자는 이 책을 다시 번역하면서 될 수 있는 대로 토박이 말을 살려 번역했다고 한다. 가령 milk를 우유 대신이라고 번역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하나의 단어를 여러 개의 한국말로 바꿀 수가 있다. 문맥에 맞게, 분위기에 맞게, 전체적인 흐름에 맞게 선택해서 바꾸는 것이 바로 번역자의 몫이다. 번역자는 원서에서 작가가 쓴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그것을 한국화 시켜서 풀어낸 것이다. 많고 많은 동물농장 중에서 김욱동 번역의 비채의 동물농장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인간을 몰아낸 농장에서 주인은 동물'들'인 것 처럼 보였다.적어도 초반기에는 그러했다. 모두가 다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며 열심히 일을 했고 자신들이 만들어 낸 결과물에 기뻐하며 성취감을 느껴야 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결과를 낳게 된다. 이런 사태를 보면서 작가가 의미한 것과는 다르게 나는 북한을 연상했다. 단 한 사람의 독재자. 그를 위해서 일을 하는 모든 국민들. 공산주의 국가인 그들에게는 모두가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자라는 표어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결국에는 고위 지도자들의 배만 불리는 꼴이다. 모든 동물들이 일을 해서 개와 돼지들만 배불리 먹이는 것처럼 말이다.

 

나폴레온은 정작 아무것도 한 것도 없지만 자신에게 훈장을 수여해서 메달을 두개나 목에 걸고 동물들 앞에 나타났으며(117p) 동물들이 어렵고 힘들게 완성한 풍차를 '나폴레온 풍차'라고 자신의 이름을 붙였다. 정말 그가 동물들을 위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그런 이름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이름을 붙였어야만 했을 것이다.

 

농장은 번성하고 조직도 갖추어졌으나 동물들은 여전히 배고팠고 돼지들은 살이 쪘다. 그들은 절대 일하지 않았고 서류작업에만 충실했다. 아무도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수는 없었다. (175p)

 

어떤 힘든 경우에도 돼지들은 힘들지 않았다. 그들은 실제로  매우 편안히 지내는 것처럼 보였고 몸무게가 늘어나 있었다(156p)고 한다. 북한의 경우로 다시 돌아가보자. 그들이 말하는 인민들은 그렇게 잘 살지 못한다. 한때는 기아에 굶주려서 죽은 사람들이 많을만큼 말이다. 그럴지라도 고위 간부급들은 결코 굶주리지 않는다. 그들은 국제 원조를 받은 것들을 자신들이 소유로 돌렸을 뿐 아니라 그들의 인민들이 힘들게 일한 것들도 모조리 다 빼앗았던 것이다. 요즘같은 시대에 가당키나 한 일일까. 지금 현재의 동물농장은 바로 북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동물들은 인간을 내쫓으면서 처음에 그렇게 말했다. 인간을 흉내 내서는 안 된다(22p)고 말이다. 그런 그들이 인간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권력을 잡은 자 모두가 다 그 앞에 무릎을 꿇을지어다. 이것과 다른 바가 무엇인가 말이다. 그들은 모두가 다 평등한 사회를 꿈꾸었을수도 있다. 처음에는 말이다. 하지만 한번 들여놓은 권력의 맛은 손을 떼기가 어려워진다. 그리고는 자꾸 더 큰 사리사욕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번역자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민중의 삶은 혁명 전의 제정 러시아 시대나 혁명을 일으킨 뒤 소비에트연방 시대나 크게 다르지 않다(234p)는 것이 증명되는 것이다. 만약 북한에서 혁명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그들이 지금의 수령이 아닌 그 반역자를 다시 수령으로 모시게 될까. 그렇다면 지금과 하등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다. 만약 그들이 변화하기를 바란다면 그들을 온전히 바꿀 무엇인가가 필요할 것이다. 정말 권력에 욕심이 없고 민중을 위하는 사람 말이다. 과연 그러한 인간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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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입자들
정혁용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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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버스 터미널에 내려서 정보지를 보면서 일할 곳을 찾는 그는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미하일과 오버랩된다. 자신의 명령을 거역한 죄로 천사라는 타이틀을 잃고 지상에 떨어진 미하일의 모습에서 이름도 드러나지 않고 별로 짐도 없는 그를 본다. 미하일과 그는 둘다 말을 별로 하지 않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남의 집에 살면서 또는 회사의 컨테이너 숙소에 살면서 자신의 일에 충실하다는 것도 닮았다.

 

하나 더, 천사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던 미하일과 달리 그는 사람이지만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에게 무언가 알 수 없는 에너지를 전해준다. 말을 하지 않고 같은 자리, 비슷한 시간에 담배를 같이 피웠던 춘자가 그랬고 사람들에게 이유없이 몰매를 맞던 마이클이 그랬고 나이 든 교수가 그러했고 폐지를 줍던 젊은 그녀가 그러했었다. 그가 결코 사람들에게 따뜻하다거나 다정한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는 남들이 이해하지 못할 어려운 말들로 그들과의 거리를 두고자 하며 먼저 다가서지 않으려고 한다. 즉 상대방과의 거리를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다. 오지랖 넓게 누구에게나 마구 다가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것이다.(그럴지라도 기본적으로는 따스함을 장착하고 있다. 담배를 달라던 춘자에게 아무말 없이 건네고 폐지를 줍던 그녀에게도 양갱을 건넨 것을 보면 아주 잘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오히려 그에게 같이 있기를 권한다. 시간을 정해놓고 만나기를 원하고 알아가기를 원한다. 그것은 그가 하는 말이 전부가 아님을, 그 속에 무언가 정이 들어있음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천사라는 정체를 숨기고 있던 미하일처럼 말이다.

 

그는 침입자다. 다른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침입해서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놓아주고 가는 침입자다. 그는 춘자가 가던 그 자리를 침입했고 그로 인해 유대관계를 만들었고 그리고 그 인연을 이어지게 만들었다.

 

그들은 침입자들이다. 동료기사들은 그의 일상이 녹아있는 공간에 침입한다. 한 순간의 여유도 없이 빡빡하게 돌아다녀야 하는 그들의 삶이 어긋나서 잠시 여유가 생겼을 때 그들은 그의 컨테이너에 모여 술을 한잔 한다. 그것이 그들이 그를 침입하는 방식이며 그들의 일상에 생긴 침입자들인 여유를 누리는 방식이다.

 

그는 침입자다. 비록 노교수가 그를 초대하기는 했어도 노인과 딸만의 공간에 침입한 사람이다. 노교수는 경제를 가르쳐 주겠다고 그를 불렀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가 다른 사람의 생활을 침입하고 그로 인한 관계가 또 다른 관계를 맺게 되는 것임을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만의 공간에 누가 침입하는 것을 꺼린다. 싫어한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이 아니어도 어느 정도의 개인적인 공간은 필요하다. 그 공간을 뚫고 들어왔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사생활이 침해를 받았다고 여기고 불쾌해한다. 그것은 가족이라는 가장 가까운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자신의 일상 또한 마찬가지다. 익숙한 것을 즐기는 사람의 패턴 상 자신의 일상생활이 짜여진 계획에 맞게 돌아가는 것을 선호한다.

 

그런 일상에 브레이크를 주는 것이 바로 이 침입자들이다. 그들은 때로는 문밖에서, 때로는 현관에서,  때로는 집안으로 침입한다. 조용한 일상에 전화로, 문자로 침입한다. 이런 그들의 침입을 사람들은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누구보다도 반갑게 맞이한다. 그렇다. 그들은 바로 택배기사님들이다.

 

이름보다는 자신이 담당하는 지역명으로 불리는 그들, 행운동을 맡았기에 행운동이라 불리는 그를 통해서 작가는 그들의 삶과 그들이 침입하는 공간에 사는 사람들의 관계를 유기적으로 그려낸다. 무언가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행운동, 그가 만나는 사람들이 워낙 별난 사람들이어서 그들 자체가 특별한 사건들이 되어 버린다. 왜 그리고 그의 주위에는 이상한 사람들이 많은 것인지 아무리 봐도 그는 하늘에서 잘못 떨어진 천사 미하일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다.

 

택배기사들의 삶 뿐 아니라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은 어린 시절 놀이터에 존재하던 뺑뺑이와도 같다. 한번 돌리고 타면 그것이 멈출 때까지 그곳에서 계속 돌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밖으로 뛰어내릴 수도 있지만 떨어져서 다칠 위험을 감수해야 하니 그런 모험을 잘 하지 않는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일을 하러 나가고 일이 끝나면 집에 들어와 잔다. 그리고는 계속 반복이다.

 

그런 일상속에서 침입자들은 한편으로는 귀찮은 존재가 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유를 주는 존재들일수도 있다. 행운동, 그의 뺑뺑이는 이제 멈췄다. 천사 미하일은 자신의 임무를 끝내고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 이제 행운동이라는 이름은 떼어버린 그는 어디로 돌아가서 누군가에게 또 다른 침입자가 되어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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