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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개의 바다 : 바리
정은경 지음, REDFORD 그림 / 뜰book / 2021년 10월
평점 :
만약 책에 관한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면 다분히 그림책처럼 보이면서 아이들 책처럼 보이는 이 이야기를 나는 아마도 외면하거나 지나쳐버렸을 수도 있겠다. 어른동화. 그 표현이 마음에 들었다. 동화라고 꼭 아이들만 보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더하여 나는 바리 설화라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정보가 없었으니 이래저래 나는 이 책이 궁금했던 것이다.
책을 받자마자 감탄한다. 어떻게 이렇게도 내가 좋아하는 색감들만 가져다 썼을 수가 있을까. 바다색과 하늘색과 보라색의 오묘한 조합. 철이 들고나서부터 내가 가장 좋아하던 컬러들이라서 그야말로 마음이 심쿵했다. 표지에서 반했다면 이르다. 이야기의 중간 중간 삽입되어 있는 그림들은 그림을 그린 REDFORD에 대해서 더 알아보고 싶게 만든다. 이 책 그림들만 모아서 컬러링북으로 나와도 상당히 인기가 있겠다는 생각이다.
제일 뒷편에 있을 작가의 말을 기대하며 펼쳤다. 작가의 말 대신 바리 설화의 원본이 있다. 몇 장 안되는 페이지로 요약을 해두어서 나처럼 이 설화에 관해서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아주 도움이 된다. 딸이 많은 집에서 태어나서 버려진 바리. 버렸던 딸에게 자신이 살기 위해서 약을 구해 오라는 것은 별주부전에서 용왕이 거북이를 시켰던 것 하고 비슷해 보이고 아이를 셋 나으면 불사약을 주겠다는 것은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닮았다. 그런 식으로 어디선가 본듯한 구성을 가지고 있는 그런 설화지만 이 책에서는 기본적인 줄거리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다 새롭다.
"바당이 미우다....." (29p)
처음에 등장인물을 소개하고 있다. 아무래도 눈에 익지 않은 인물들이 나오는만큼 미리 등장인물을 보아두는 것이 좋다. 간략 설명도 되어 있어서 어디서 이 캐릭터들이 나오는지 알 수 있다. 해녀 공덕.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서 가정을 이루고 아이도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 그랬다면 좋으련만 파도는 그녀의 삶을 무자비하게 앗아갔다. 남편도 아이도 모두 잃은 그녀는 혼자만 남아 버렸다. 그런 그녀에게 벼리 아니 바리가 찾아왔다. 바리가 있어서 그녀는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십 년이 흘렀다. 티격태격하지만 바리와 공덕은 잘 살았다. 바리의 친엄마인 용왕이 아프다며 바리보고 해골꽃을 구해오라고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공덕을 뒤로 하고 모험을 찾아 저승으로 떠난 바리를 찾아서 공덕도 떠난다.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한 채로 말이다. 이제 소녀 공덕이 되어 버린 그녀는 바리를 만나서 저승세계를 떠돈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언젠가 보았단 영화 [계춘할망]을 떠올리게도 된다.
만화 영화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탄탄한 이야기와 아름다운 배경 그림들 그리고 개성 있는 주인공들이 열연이 돋보인다. 쉴새없이 일어나는 사건들 또한 읽는 재미를 더한다. 그렇게 이어지던 이야기는 마지막에 반전을 숨겼다. 절대 그들이 그들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기에 그 놀라움은 더욱 컸고 감동은 배가되었다. 그랬구나 하면서 그때서야 모든 것이 이해된다. 대단한 묘수다.
애니메이션과 컬러링 북 모두 나와도 좋을 정도로 흠뻑 빠졌던 이야기와 그림이다. 바리가 입고 있는 옷이 한복이라는 것은 더욱 매력적으로 보인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아니던가. 애니로 만들어 수출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이야기의 매력은 나처럼 성인에게도 유감없이 발휘되며 아이들도 재미나게 읽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글자가 많은 편이므로 고학년 정도 되어야 읽을 수 있겠지만 독서토론용 책이나 아이들의 정서발달에도 상당한 도움을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그런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