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꽃 필 무렵 베스트셀러 한국문학선
이효석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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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기 언니 한 분이 있지 말임돠. 언니는 숨겨진 여자 그러니까 첩인 셈인데 시골에서 동생이랑 일 봐주는 여자랑 그렇게 여자 셋만 살고 있어요. 남자는 가끔 가다 오가구요. 남자는 조수를 한 명 데리고 다니죠. 이쯤 되면 어느 정도 관계가 그려지지 않슴까? 언니 동생이랑 조수랑 눈이 맞을 것같다는 그런 예감요. 아니나 다를까 눈이 맞아버렸죠. 도망가겠다고 짐도 쌌죠. 


로미오와 줄리엣 효과라고 하지 말라면 더할 게 뻔하니까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라고 아예 둘을 떨어뜨려 놓는 전략을 썼죠. 언니는 조수와 함께 이곳에 남고 언니의 남자는 동생을 데리고 일본으로 간 게죠. 자, 여기서 또 짐작이 가능해지죠. 이 바뀐 두 파트너가 일을 낼 것 같다는 예감이요. 빙고. 이제 커플이 짝이 바뀌었드랬죠. 


그런가하면 요기에 한 사람이 더 추가됩니다. 그것은 바로 일본에서 만난 한 남자인데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만나게 되고 동생과 피아노 선생으로 엮이게 되는 두 사람은 또 사랑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지요. 자, 여기까지만 해도 지극히 복잡한 관계도인데 작가는 여기에 자꾸 자꾸 더 인물을 추가합니다. 지금까지 나온 인물 중에서도 있고 새로운 인물들도 있어요. 이미 오각관계였던 이 관계는 더욱 큰 숫자의 도형으로 진보하게 됩니다. 자, 요기까지가 <화분>이라는 작품의 주요 관계도입니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은 교과서에 포함되기도 해서 이미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작품이다. 열 페이지 정도의 이 작품은 굉장히 짧다. 내가 처음 이 이야기를 읽었던 학생이었을 때도 그렇게 느꼈을까. 이 이야기 속에서는 몇 명 되지 않는 인물들 속에서 숨겨진 관계를 암시하는 것이 굉장히 세련된 방식으로 그려져 있고 무엇보다도 배경을 묘사하는 글이 일품이었던 것으로 교과서에 나오고 있다. 내가 주목한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 외에 새로운 이야기였다. 


이 책에서 가장 긴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는 화분이라는 제목의 이 글은 이효석의 작품집에 실려있지 않았다면 누구의 작품일까 하는 의문점이 들 정도로 낯설다. 그 시절에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문어발 연애가 있었다니. 순결을 중시한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는 등장인물들의 행동들을 보면서 낯설음과 익숙함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제목의 '화분'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도 궁금해진다. 이 이야기 속에서 화분이 의미하는 바가 따로 있었다 이야기를 마치고도 곰곰히 다시 곱씹어보게 된다. 


시대적 배경이잇는 만큼 낯선 우리말들도 눈에 들어온다. '괴덕'이라는 말이 처음 나왔을 때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라 어리둥절했지만 바로 옆 페이지에 나오는 "점잖게 언니 행세 좀 해요. 괴덕만 부리지 말구."(23p)라는 이 문장을 보고 이해했다. 괴덕이 변덕이라는 이름의 옛표현이구나 하고 말이다.




지금 내 상 위에 있는 것은 향기 높은 한 잔의 홍차가 아니구 한 접시의 비계인 것이 슬퍼 못 견디겠다. (145p)


또한 작가 특유의 비유적인 표현은 이 이야기 속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홍차와 비계로 서로 간의 다른 점을 표현하다니 너무 대조적인 물건의 선택으로 인해서 어떤 느낌인지가 바로 캐치되지 않은가. 탁월한 선택이다. 이런 콕 집어서 드러냄을 배우고 싶어진다. 




선지피를 끼얹은 듯 얼굴이 달며 다 풀이 전신을 꼭 죄었다. 바닷속에서 낙지에게나 잡힌 듯 전신의 피가 엉겨드는 듯 하다. (155p)


거기다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로 인한 모습을 표현하는 저 방법은 또 어떠한가. 선지피와 낙지가 이런 전율을 일으키는 데 사용되다니 구태의연하지 않은 비유와 단어 선택이 역시나 하고 감탄을 하게 만든다.


 
난 세상에서 여행하시는 분같이 행복스럽구 부러운 분은 없어요. 평생 동안 여행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된 사람임은 말할 것두 없죠. (191p)


등장인물들이 여행사를 찾아가자 그곳의 직원이 이렇게 이야기한다. 작가는 이렇게 우리가 여행 가지 못하는 세계가 올 것임을 미리 알기라도 했을까. 예전에는 여행이 자율화 되지 않아서 못 갔고 이제는 세계적인 전염병으로 인해서 가지 못하게 되었다. 세상에서 여행하시는 분같이 부러운 분은 없다. 저 말이 딱 지금 내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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