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러드 온 스노우 Oslo 1970 Series 1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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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쌤~~~ 이건 배반입니다. 배신입니다. 이렇게 얇은 책을 내시다니요. 얇다고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다들 얇다고 했으니까요. 그래도 어느 정도는 될 줄 알았죠. 요쌤이시니까요. 6백 페이지는 기본으로 넘기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2백 페이지도 안 되는 이야기라니요. 기다렸는데 너무 하세요~

 

기본적으로 스릴러라는 장르는 책이 두껍다. 한두명이 죽는것이 아니라 여러 명의 사상자는 기본이요 스케일이 크면 전 세계적으로 누비고 다니는 주인공들 때문에 이야기가 복잡할수 밖에 없다. 전반에 걸친 배경 설명이라던가 인물소개는 기본이다. 시리즈로 연속되는 이야기라 하더라도 이 주인공이 어떠한 삶을 살아 왔는가에 대한 반복적인 설명도 빼놓을 수 없다.

 

때로는 오래전 역사까지 인용된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페이지수는 많아지고 책은 두꺼워진다. 그러나 그 두꺼움을 사랑한다. 아마도 스릴러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두꺼울수록 좋다! 를 외칠수도 있겠다. 분권은 사절이다. 두꺼운 책이 팔목이 빠질 정도로 들고 보는 재미란 말로 이루 형언할 수가 없다. 그 팔아픔이 조금씩 줄어들어 마지막 페이지를 향할 때 쯤이면 시속 200을 넘는 속도로 페이지를 넘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만큼 가독성은 필수여야만 하는 것이 이 스릴러 장르이다.

 

그중에서도 요네스뵈라는 작가는 독보적으로 방대한 이야기를 요리조리 잘 엮여서 독자들 앞에 선보이고 있다. 그런 요네스뵈의 새로운 작품이다. 그런데 이 책, 이전의 그의 책과는 다르다. 아주 많이 다르다. 기본적으로 두께부터 기존 책의 삼분의 일 밖에 되지 않는다. 그 모든 원인은 옮긴이의 말을 필수적으로 읽어야만 한다.

 

요네스뵈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납치'라는 제목의 책의 영감을 받는다. 크라임소설 작가, 톰 요한센이 납치된다는 이야기이다. 주이공이 작가이니만큼 당연히 그가 쓴 소설이 존재한다. 소설속의 주이공이 쓴 이야기가 바로 이 책 [블러드 온 스노우]와 [미드나잇 선]이다.이다. 그렇다면 이 책의 얇은 페이지가 이해된다. 요네스뵈는 한술 더 떠서 그 작가를 실존하는 인물로 만들어서 그의 책 두권과 함께 자신의 책 '납치'를 출판하려고 계획했으나 법에 저촉된다는 소리에 무산되었다. 그러나 그의 책 '블러드온 스노우'는 그대로 우리 손에 들어왔고 '미드나잇선' 궁금해진다.

 

같은 작가가 쓴 작품이긴 하나 이 책은 엄연히 톰 요한센이 쓴 작품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기존 요네스뵈의 작품과는 다르다. 그의 작풍이 아닌 것이다. 약간은 빈 듯한 부분이 보이는 것이 장점이다. 느슨함을 자랑하고 있고 사건도 그렇게 많은 사건이 연달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방면의 대가답게 이해하지 못할 장면은 그 하나도 없다. 장면장면이 약간은 허세를 띠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요소오요소에 적당한 인물들과 배경을 배치해 둠으로 인해서 시각적인 효과를 주고 있다. 하얀 눈밭, 붉은 피. 확연한 대조를 이루면서 사람들의 상상력을 극대화시키는 것은 요네스뵈 만의 장점이다.

 

사람들을 처리하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나. 오늘도 역시 보스의 명령에 따라서 한 건을 해치웠다. 그런 나에게 새로운 임무를 준다. 자신의 부인을 없애라는 것. 무조건적으로 돈을 받으면 일을 하는 나이지만 그런 명령에는 순응할 수가 없다. 그의 부인을 죽이고 나면 그 다음 타겟은 자신이 될 것이 눈에 그려지기 때문이다.그렇다고 명령을 따르지 않을수도 없다. 이미 세부적인 사항을 다 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하지 않더라도 보스는 누군가를 시켜서 그 처리를 명령할 것이고 그렇게 되어도 내 목숨은 이미 그의 것이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어떤 방식을 선택해야 나 자신의 안녕을 구할 것인가. 오로지 이 한 사건에 초점을 맞추고 일이 계획되어진다. 부인을 조사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나. 정확한 시점, 정확한 장소를 정해야 한다. 나는 과연 이 일을 제대로 행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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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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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사 엘사에게

주글 수밖에 없어서 미안해. 주거서 미안해. 나이 먹어서 미안해.(540p)

한순간 방심했다가 눈물폭탄을 맞이했다. 이런. 이 작가의 스타일을 익히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책을 강구하지 못한 탓이다. 실컷 웃고 떠들게 만들다가 어느 순간 미친듯이 눈물이 떨어지게 만드는 글을 쓰는 힘이 있는 작가라는 걸 잠시 잊었다. 전작 [오베라는 남자]에서 이미 당한 케이스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에서 같은 패턴으로 당하고 말았다. 어쩔수 없없다.

 

할머니와 손녀가 주인공일 거라고 생각은 했다. 하지만 이렇게 초반부터 이별로 시작하게 될 줄은 몰랐다. 세대를 초월한 두 여자간의 재미난 에피소드를 그렸을 줄로만 알았는데 표지에 나와있는 엘사의 독무대였다. 그러나 깜찍하며 당돌한, 그러면서도 학교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해서 매번 달리기를 하는 일곱살 꼬마녀석의 뒤에는 할머니가 계심을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 불의를 참지못하고 자신이 하고픈 말은 반드시 하셔야 하며 자신의 손녀인 꼬마숙녀 엘사를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지, 설사 그 일이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일단은 자신의 손녀편을 들어주실거라는 것을 말이다.

 

할머니와 엄마와 아빠의 자리를 대신한 엄마의 파트너와 그외 여러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는 아파트. 사람들이 많은 만큼 각종 에피소드들은 끊임없이 일어난다. 그리고 할머니가 여기저기 숨겨두신 일종의 보물찾기로 인해서 엘사는 더 많은 세상을 보게 되고 더 많은 할머니의 흔적을 발견한다. 할머니의 부재가 느껴지지 않도록 일부러 그런 일을 만들어 놓으신 걸까.

 

할머니가 살아 생전에 자신이 해야 될 일들을 엘사를 시켜 전하게 하심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할머니가 엘사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자신의 과거들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더 돈독히 해주고 싶었음이 아니었을까. 자신이 지극히 사랑했던 손녀에 대한 사랑을 그렇게 표현하고 싶으셨던 것이 아니었을까.

 

세상에 완벽한 슈퍼 히어로는 없어요, 엄마.괜찮아요.(509p) 할머니는 엄마에게 완벽한 히어로는 아니셨다. 오히려 빈 공간을 많이 보여준, 아니 엄마의 자리에 있지 못했던 엄마였다. 그것이 불만이었던 엄마는 할머니와의 사이가 좋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엄마 역시 너무 바쁜 생활 때문에 엘사와 함께 있어주지 못하는 때가 더 많다.

 

그렇지만 엄마가 그렇게 바쁠 수 있었던 것은 할머니가 엘사를 완벽히 커버해줄 수 있다는 것을 엄마가 믿고 있었음이 드러내주고 있다. 그 어느 누구도 완벽한 수퍼히어로는 없다. 그러나 수퍼히어로는 아니어도 어떤 순간에도 내 편이 될 수 있다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힘을 얻을때가 있다. 어린아이라도, 어른이라도 그것은 동일하게 적용된다.

 

미모바스가 무너지면 미레바스가 무너지고, 미레바스가 무너지면 미아마스가 무너지며, 미아마스가 무너지면 미아우다카스가 무너지고, 미아우다카스가 무너지면 미플로리스가 무너지기 때문이다.(383p) 이 암호를 이해하고 싶은가. 직접 알아내시라. 깰락말락나라의 사람들. 할머니가 늘 해주시던 이야기는 실제로 존재하는 나라였다는 것을 할머니가 계시지 않은 지금에야 엘사는 알아버렸다. 그 모든 왕국의 이야기들이 주인공들이 바로 옆에 있었다는 것도 말이다. 늘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행복했던 엘사는 영리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할머니가 그렇게 살아왔던 것을, 할머니가 그렇게 행동했던 것을, 할머니의 의도를.

 

얼마 되지 않은 시간 사이에 엘사는 이별을 두 번 겪게 되지만 이별이 있으면 만남도 있는 법. 그녀는 새로운 만남들로 인해서 앞으로 또 즐거운 나날을 보내게 될 것이다. 표지속에서 보여지는 그녀의 모습 그대로 똘망똘망한 모습을 잃지 말고 새로운 친구와 가족들과 함께 영원히 잘 살아가고 있기를 바라본다. 요런 조카녀석 하나 있으면 참 심심하지 않고 재미날 것 같은데 말이다. 너무 똘똘해서 고모 취급도 안해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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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긴 여자
마리아피아 벨라디아노 지음, 윤병언 옮김 / 비채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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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보았을 때 못생겼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이 정도면 만족해 하고 생각하시나요? 못생김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이형인이 아닌 이상 사람들은 저마다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게 마련입니다. 눈두개, 코하나, 입 하나, 그리고 팔다리 각 두 개씩. 다들 같은 조건을 가지고 생겼는데도 불구하고 그 중에서도 이쁜 것과 못생긴 것으로 나누어지게 마련이죠.

 

과학자들은 그것을 비율의 문제로 보기도 했죠. 다빈치는 황금비율이라는 인체의 균형미를 발견해 내기도 했었고 성형외과의들은 눈코입의 크기를 가지고 비율을 만들어서 몇대몇이면 가장 완벽한 얼굴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각 부분들을 뜯어서 모아놓은 얼굴은 괴물이 되어버리고 마는 묘한 합성을 보기도 했었죠. 이쯤 되면 궁금해집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못생김과 이쁨의 기준은 무엇일지 말이죠.

 

방송용어로 카메라발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분명 못생겨보이는 얼굴이라 할지라도 화면에 나오고 처음에는 뜨악하던 얼굴이라도 계속 보다보면 매력을 찾게 된다는 소리이겠죠. 개인적으로는 박진영이라는 가수를 생각해 봅니다. 처음에 그가 방송에 나왔을땐 저런 얼굴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죠. 오랜 시간이 지난후인 지금은 익숙해져서일까요, 그 얼굴이 그닥 이상해 보이지는 않지 말입니다. 요즘 뜨는 류준열이라는 대세배우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잘생김을 연기하는 배우라 하더군요. 뛰어난 꽃미남은 아니지만 연기하는 것을 보면 그가 잘 생겨 보일때가 있다는 소리겠지요.

 

저마다 사람들이 보는 잘생김과 못생김의 기준은 사회적인 척도에 따라서 다들 비슷한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문화마다 다를수도 있죠. 괌이나 사이판 같은 곳은 여자들이 뚱뚱할수록 미인으로 보고 고산족들은 목이 길어서 가능한 많은 목걸이를 둘러야만 미인으로 보기도 하니까 말이죠. 우리는 지극히 이상하게 보일지라도 말입니다. 즉 기준은 나라마다, 문화마다, 개인마다, 편차가 있다는 것이 정답이겠군요.

 

여기 못생긴 여자가 한 명 있습니다. 아니 여자아이입니다. 얼마나 못생겼는지 생김생김이 어떠한지는 절대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그저 어려서부터 아니 태어나면서부터 못생기게 태어나서 밖에 나가지도 못하게 했고 그 아이를 낳은 엄마는 아무 죄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방에 박혀서 바깥을 나오지 않았죠. 밖을 나오지 않은 것은 둘째치고 자신이 낳은 아이까지도 보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보기가 끔찍했던 걸까요. 아니면 자신이 그렇게 못 생긴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 끔찍해서였을까요.

 

아이는 결국 다른 사람의 손에서 키워지게 됩니다. 분명 엄마와 아빠가 같은 집에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부모가 있고 부모의 사랑을 받으면서 누구 도와주는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자신의 헬퍼손에서 자란 그 아이. 유치원에 가는 것조차도 막고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조차도 발휘를 하지 못하게 하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어떻게 될까요. 제대로 사회라는 세상속에서 자라날 수 있을까요? 세상에 나가서 왕따가 되는 것을 걱정해야 할까요 아니면 집에서 나가지 않은 히키코모리를 걱정해야 할까요.

 

생각보다 아이는 밝고 건강하게 자라납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말이죠. 그 아이도 자신이 못생겼다는 것을 알고 있겠죠. 그래도 자신과 비슷한 친구를 찾고 학교 생활도 하게 됩니다. 물론 못생겼다는 꼬리표는 계속 따라다니지만요. 이 이야기는 아이가 자라서 지금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지도 보여줍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아이는 잘 자랐습니다. 자신의 일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 그렇게 친했던 친구도 만났습니다. 결국 못 생긴것은 장애가 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일테지요.

 

장애를 가진 사람도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면서 충분히 잘 살 수 있는 사회입니다. 못생긴 것도 하나의 장애로 꼽아야 한다면 그럴수도 있겠지만 기준이라는 것이 명확하게 뚜렷이 없는 못생김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만 가지고 있는 기준이 아닐까요.

 

지금 못 생겼다고 좌절하는 분이 있을까요? 자신감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누가 보아도 당당하고 떳떳하게 그것이 자신이 더욱 멋져보일 수 있는 일종의 마법입니다. 또한 자신의 상황에 충실하게 대처하며 자신의 일에서 전문가가 되십시오. 그 누구도 자신을 무시할 수 없을 것 입니다. 잘생김과 못생김은 단지 겉모습이지 실력의 차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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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 추기경
평화방송 엮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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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종교'라는 주제로 이야기 하는 것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나는 종교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중학생 때 천주교 신자였던 친구와 한창 종교를 가지고 논쟁을 했던 기억이 남아 있어서 그런 듯 하다. 천주교도 기독교도 다 같은 하나님을 믿는 것 같은데 그 친구도, 나도 정확한 것은 비교해서 설명할수 없었던 것이다. 대학에 들어와 비교종교학이라는 학문을 배우고서도 완전히 다 알기는 어려웠으니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성당에 가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교회보다는 조금은 더 엄숙하고 조금은 더 경직된 분위기의 미사가 마냥 낯설었다. 큰 테두리 안에서 보면 기독교보다는 천주교가 조금 더 느슨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신부님들이나 수녀님들이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은 있지만 술이나 제사라는 문제에 있어서는 확실히 기독교보다는 조금더 자유로운 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로마에 가서 바티칸 시티를 다녀왔다. 천주교인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씩은 들린다는 그 곳, 시간을 잘 맞추면 교황님이 얼굴을 내밀고 인사를 하는 것도 볼 수 있다는데 안타깝게도 그런 행운을 잡지는 못했다. 천주교에 관한 한 단편적인 것만 알 뿐 자세히는 알지 못한다. 바티칸시티에 머무르는 교황이 가장 높은 위치의 사제라는 것이고 그 밑에 추기경이 있다는 것 정도일까.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추기경이 되었던 김수환 추기경에 대해서는 워낙 유명하신 분이라 어느정도 유명한 일화들은 신문 기사나 뉴스를 통해서 접한 기억이 있다.

 

이 책은 김수환 추기경에 관한 이야기들을 다른 사람을 통해서 인터뷰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추기경을 돌보았던 의사, 그를 가장 가깝게 돌보았던 신부님, 그가 가톨릭신문 사장 신부님이던 시절의 기자, 그리고 혈육인 조카님까지. 그를 알았던 각계 각층의 사람들을 통해서 어떤 에피소드들이 있었는지도 들어보고 그가 만났던 알았던 추기경님은 어떤 분이신지를 편집해 두었다. 저마다 자신과 관계된 이야기들은 다르지만 공통된 점은 있었다. 추기경님은 참으로 소탈하시고 자신의 신념이 곧으신 분이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런 성품을 가진 소유자이셨기에 추기경도 할수 있지 않았을까.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사진을 제공한 듯 중간중간 꽤 많은 사진들을 볼 수 있다. 사제로써 수행을 하는 신부복을 입은 추기경님을 보는 것은 익숙하지만 평상복 차림의 추기경님을 보는 일은 흔하지는 않다. 더군다나 추기경님이 등산을 하시는 모습이라니. 일반 사람들과 다름 없는 그 모습에 웃음이 슬며시 지어지기도 하고 마지막에 병원에 가셔서 약간의 투정을 부리시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도 하고 추기경님도 한명의 사람이었구나 하는 모습에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작은가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보게도 된다.

 

이제는 뵐 수 없는 추기경님의 모습을 남아 있는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다시 한번 보게 되어 반가운 책이라 할 수 있다. 비단 천주교 신자 뿐 아니라 그 누가 읽어도 생생한 인터뷰로 인해서 추기경님의 몰랐던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추기경님이 우리 할머니 집이 있던 곳 출신이라 더욱 반가왔다.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전혀 모르고 지나갔을 사실이다. 안다고 해서 뭐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괜회 더 친근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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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빛나는 예외 - 일방통행에 들어선 청춘에게
전아론 지음 / 샘터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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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런 밤이 있다. 평소처럼 똑같이 불을 끄고 누워 잠을 청했는데 머릿속 스위치가 도통 꺼지지 않는 밤. 하루치의 피로가 이불처럼 내 몸을 감싸고 있는데 정신은 괴롭도록 또렷하다.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자세를 바꿔 봐도 잠은 썰물처럼 빠져나가기만 하고, 펄처럼 질척한 어둠만 눈앞에 들러붙어 있다.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 이런 밤이 있을 거다.(217-218p)

 

어제의 내가 그랬다. 피곤해 죽을 지경이고 잠을 자야하는데도 불구하고 잠이 오지 않는 밤. 어쩔 수 없다. 그런 날은 안대를 쓰스고 잠을 청해보기도 하지만 결과는 말짱 꽝이라는 것을 오랜 기간의 불면증으로 고생한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동지가 있음에 새삼스러이 위로가 되는 그런 글을 만났다.

 

현재 《대학내일》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는 그녀. 실제의 나이가 몇살쯤 되었을까. 궁금해진다. 그녀의 글을 푸릇푸릇하다. 청춘을 제대로 나타내고 있음이 보여진다. 이십대무렵에 몰두해 있는 그녀의 글은 그래서 더욱 청춘스럽다. 이 글을 지금의 이십대가 읽는다면, 자신의 선배인 그녀가 생각했던 것들이 지금의 그들과 많이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된다면, 그들의 답답함도 조금은 해소가 되어질까.

 

나의 이십대는 어떠했을까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손에 잡힐듯이 바로 어제같은 이십대의 나날들. 지하철로 학교를 통학하면서 친구들과 함께 떠들던 기억들. 각종 모임들, 동아리들, 공강시간, 휴강시간, 땡땡이, 학교식당, 도서관... 다 아스라히 먼 기억들이 아니라 생생하게 눈에 보이는 듯 한데 현실로 돌아와보면 지금의 이십대에 비하면 꽤 오래전 일임을 깨닫고 치열한 이십대를 그래도 잘 버텨왔구나 하는 자기위안에 빠지기도 한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현실은 여전히 퍽퍽하고 어렵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때는 무언가 해볼 수 있다는 자신감, 그리고 그 청춘이라는 것이 든든한 한 밑천 아니었을까.

 

가끔 대학때 친구를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우리는 그 시절을 어떻게 견뎠을까 하면서 말이다. 우리는 이전의 선배들과 달라서 데모를 줄기차게 했던 학번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컴퓨터가 본격적으로 보급되어서 모든 것이 다 전산화되던 것도 아닌 어중간한 세대였었다. 컴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도스가 필요했고 다다다다 소리내는 도트프린터가 있던 학교 컴퓨터실. 일초면 수강신청이 끝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이들과는 다르게 일일이 표에 체크를 해가면서 수강신청서를 내야만 했던 그 때. 만약 지금 대학에 가서 학교를 다니라고 하면 바뀐 문화에 잘 적응할 자신이 없어 두려워지기도 한다.

 

아마도 청춘이 보는 미래는 그렇지 않을까.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더욱 두려운. 우리가 보는 과거는 경험했기에 더욱 두려운. 쌍방간에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세대들이다. 그래도 제목과 같이 우리는 모두 빛나는 예외들이다. 누구나 하나 일반적인, 보통의 존재들은 아닌 것이다. 특별함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인 것이다.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들이여, 청춘들이여, 힘을 내라. 과거와는 달리 미래는 얼마든지 자신의 의지에 따라 바뀔 여지가 충분히 있으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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