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사 엘사에게
주글 수밖에 없어서 미안해. 주거서 미안해. 나이 먹어서 미안해.(540p)
한순간 방심했다가 눈물폭탄을 맞이했다. 이런. 이 작가의 스타일을 익히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책을 강구하지 못한 탓이다. 실컷 웃고 떠들게 만들다가 어느 순간 미친듯이 눈물이 떨어지게 만드는 글을 쓰는 힘이 있는 작가라는 걸 잠시 잊었다. 전작 [오베라는 남자]에서 이미 당한 케이스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에서 같은 패턴으로 당하고 말았다. 어쩔수 없없다.
할머니와 손녀가 주인공일 거라고 생각은 했다. 하지만 이렇게 초반부터 이별로 시작하게 될 줄은 몰랐다. 세대를 초월한 두 여자간의 재미난 에피소드를 그렸을 줄로만 알았는데 표지에 나와있는 엘사의 독무대였다. 그러나 깜찍하며 당돌한, 그러면서도 학교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해서 매번 달리기를 하는 일곱살 꼬마녀석의 뒤에는 할머니가 계심을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 불의를 참지못하고 자신이 하고픈 말은 반드시 하셔야 하며 자신의 손녀인 꼬마숙녀 엘사를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지, 설사 그 일이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일단은 자신의 손녀편을 들어주실거라는 것을 말이다.
할머니와 엄마와 아빠의 자리를 대신한 엄마의 파트너와 그외 여러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는 아파트. 사람들이 많은 만큼 각종 에피소드들은 끊임없이 일어난다. 그리고 할머니가 여기저기 숨겨두신 일종의 보물찾기로 인해서 엘사는 더 많은 세상을 보게 되고 더 많은 할머니의 흔적을 발견한다. 할머니의 부재가 느껴지지 않도록 일부러 그런 일을 만들어 놓으신 걸까.
할머니가 살아 생전에 자신이 해야 될 일들을 엘사를 시켜 전하게 하심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할머니가 엘사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자신의 과거들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더 돈독히 해주고 싶었음이 아니었을까. 자신이 지극히 사랑했던 손녀에 대한 사랑을 그렇게 표현하고 싶으셨던 것이 아니었을까.
세상에 완벽한 슈퍼 히어로는 없어요, 엄마.괜찮아요.(509p) 할머니는 엄마에게 완벽한 히어로는 아니셨다. 오히려 빈 공간을 많이 보여준, 아니 엄마의 자리에 있지 못했던 엄마였다. 그것이 불만이었던 엄마는 할머니와의 사이가 좋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엄마 역시 너무 바쁜 생활 때문에 엘사와 함께 있어주지 못하는 때가 더 많다.
그렇지만 엄마가 그렇게 바쁠 수 있었던 것은 할머니가 엘사를 완벽히 커버해줄 수 있다는 것을 엄마가 믿고 있었음이 드러내주고 있다. 그 어느 누구도 완벽한 수퍼히어로는 없다. 그러나 수퍼히어로는 아니어도 어떤 순간에도 내 편이 될 수 있다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힘을 얻을때가 있다. 어린아이라도, 어른이라도 그것은 동일하게 적용된다.
미모바스가 무너지면 미레바스가 무너지고, 미레바스가 무너지면 미아마스가 무너지며, 미아마스가 무너지면 미아우다카스가 무너지고, 미아우다카스가 무너지면 미플로리스가 무너지기 때문이다.(383p) 이 암호를 이해하고 싶은가. 직접 알아내시라. 깰락말락나라의 사람들. 할머니가 늘 해주시던 이야기는 실제로 존재하는 나라였다는 것을 할머니가 계시지 않은 지금에야 엘사는 알아버렸다. 그 모든 왕국의 이야기들이 주인공들이 바로 옆에 있었다는 것도 말이다. 늘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행복했던 엘사는 영리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할머니가 그렇게 살아왔던 것을, 할머니가 그렇게 행동했던 것을, 할머니의 의도를.
얼마 되지 않은 시간 사이에 엘사는 이별을 두 번 겪게 되지만 이별이 있으면 만남도 있는 법. 그녀는 새로운 만남들로 인해서 앞으로 또 즐거운 나날을 보내게 될 것이다. 표지속에서 보여지는 그녀의 모습 그대로 똘망똘망한 모습을 잃지 말고 새로운 친구와 가족들과 함께 영원히 잘 살아가고 있기를 바라본다. 요런 조카녀석 하나 있으면 참 심심하지 않고 재미날 것 같은데 말이다. 너무 똘똘해서 고모 취급도 안해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