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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타워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시후미는 마치 작고 아름다운 방과 같다고, 토오루는 가끔 생각한다. 그 방은 있기에 너무 편해서 , 자신이 그곳에서 나오지 못하는 것이라고.(117p)
에쿠니 가오리의 이야기들은 따뜻하다. 불륜이라 하더라도 기본적으로는 사랑을 전제하고 있으므로 말이다.
열아홉과 스물. 딱 한살차이. 무엇이 다른가. 스물아홉과 서른, 서른아홉과 마흔, 마흔아홉과 쉰. 크게 달라질 것이 없는 나이일까 아니면 크게 변화가 있는 나이일까. 변화가 있다고 해도 십대에서 이십대로 바뀌는 것 만큼 감정적으로 크게 느껴지는 변화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된다. 미성년에서 성년으로 인정받는 그런 나이다. 무엇을 해도 다 자신의 책임이 따르는 나이. 자유가 주어지지만 그만큼 책임도 느는 그런 나이라는 것이다.
고교시절의 친구는 -그리 친하지 않았던 녀석도 포함하여-대학에 들어와서 만난 친구와 명백히 다르다고 코우지는 생각한다. 지금 같으면 보여주지 않아도 될 일을, 끝내 감추지 못했던 것 같은. 좋아하든 말든 매일 함께 있었던 것 같은. (144-145p)
토오루와 코우지. 고등학교 동창. 코우지에게는 유리라는 여자 친구가 있다. 토오루에게는 자신보다 스무살 이상이나 많은 그녀, 시후미가 있고 코우지에는 열다섯살이나 많은 그녀, 키미코가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그녀들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단지 육체적인 관계만은 아닐 것이다. 또래 여자들의 설익고 풋풋한 그런 느낌보다 농익은 맛을 선호해서 그녀들을 선택했다면 딱 그 선에서 멈춰야 하지만 그들의 관계를 보면 그런 것만을 추구하는 관계는 또 아니다. 특히 토오루와 시후미의 관계가 그러하다.
토오루와 시후미는 책을 좋아한다. 서로 좋아하는 책을 권해주고 그것을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 주로 그녀가 권해주는 경우가 더 많다. 더 많이 살아온만큼 그만큼의 경험을 더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가 권해주는 책들을 그는 읽는다. 이들의 관계에서 그녀는 절대 우위를 점하지 않는다. 자신이 나이가 많다고 해서 가르치지 않는다. 첫관계를 맺을때부터 그랬다. 서투른 것이 당연한 그, 하지만 그녀는 그를 가르치고 자신이 리드를 해서 이끌어가기 보다는 그에게 맞춰주고 그가 하자는 대로 따라간다. 그것이 그가 그녀를 좋아하는, 그녀에게 빠져버린 이유가 되기도 할 것이다.
토오루에게는 그녀가 첫사랑이 아닐까.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속설처럼 그들의 관계도 끝까지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멀리서 바라보았을 때 아름다운 도쿄타워처럼 그에게 그녀는 멀리서 바라보아야 하는 도쿄타워같은 그런 존재가 아닐까. 타워의 아름다움은 멀리 있을 때 진정으로 느낄 수 있다. 에펠탑을 싫어한 한 남자는 매일 그곳에 있는 레스토랑에 찾아가서 식사를 했다. 바로 그곳이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단 하나의 장소였기 때문이었다. 그런것처럼 바로 그 자리에 가서는 정작 타워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도, 볼 수도 없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
토오루와 시후미와의 관계도 그럴지도 모른다. 더욱더 가까이 하고픈 그런 존재. 하지만 가까이 갈수록 감정은 식어버릴지도 모른다. 관계를 아름답게 유지하려면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할 수도 있다. 그런 것을 모른 채 나방이 불을 향해 날아가듯 무작정 그녀에게로 다가가려고만 하는 토오루. 이제 엄마의 둥지를 떠나서 그녀의 품으로 날아가려고 퍼득이고 있다. 엄마는 그런 것을 알기에 그곳에 가려면 집을 나가라고 한다. 정말 나가라는 의미가 아닌, 가지 말라는 것을 강력하게 경고하는 표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분명히 나갈 것이다. 나방이 불을 겁내하는 것을 보았는가. 자신이 타죽을 것을 알면서도 뛰어든다. 토오루가 그와 같다. 자신이 홀라당 다 탈 것을 알면서도 기어코 그녀의 곁으로 날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아마도 도쿄타워 밑에 가서야 타워가 보이지 않는 것을 알듯이 가까이 간 이후에야 그들의 관계가 이상적이지 못함을 알지 않을까. 그들의 관계는 일장춘몽이려나. 젊은날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