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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삼킨 소년
트렌트 돌턴 지음, 이영아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1월
평점 :
나는 엘리 무엇일까요? (460p)
이 아이가 누구일지 가장 쉽게 알고 싶다면 아니 가장 단순하면서도 있는 사실 그대로 정확하게 알고 싶다면 이 책의 딱 한부분만을 보면 된다. 그것은 460페이지이다. 인물을 알아맞히는 게임입니다 하면서 텔레비젼의 프로그램을 흉내내서 말하는 그 모든 문장은 엘리를 가장 단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런 아이가 바로 엘리다.
슬림 할아버지는 내가 아이의 몸에 어른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14p)
감옥에서 탈출한 슬림 할아버지가 엘리와 오거스트를 봐준다. 뭐 돈을 주고 아이를 봐주는 개념의 그런 베이비 시터가 아니다. 제대로 된 가정에서 자라지 못하는 아이들은 언제나 다른 이웃이 돌봐주게 되어 있다. 그런 개념에서 본다면 이 슬림 할아버지는 적절하지 못한 선택인 것 같으면서도 최고의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적어도 할아버지가 있을 때는 엘리가 행복했으니 말이다.
그에게는 오거스트라는 형이 있다. 형은 모든 것을 다 알아듣고 공부도 잘하지만 단 한 가지 말을 하지 않는다. 단지 손으로 허공에다 대고 쓸 뿐이다. 그 모든 것을 알아듣는 사람도 바로 엘리다. 엄마는 있지만 마약에 절어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형제는 스스로를 돌본다. 아빠는 같이 살지 않는다. 엄마와 함께 사는 남자는 엄마에게 마약을 대준다. 그야말로 최악의 환경에서 살아가는 그들이다.
여기에 최악의 최악의 최악이 하나 더해진다. 그것은 끔찍스러울 정도지만 오히려 선혈이 난무한다기 보다는 분명 협박인데도 불구하고 조용하게 느껴진다. 그들의 집을 침입한 사람들. 엄마를 때렸고 함께 살던 라일 아저씨를 잡아갔고 형을 협박했고 그리고 이제는 엘리의 손가락에 칼을 대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엘리는 좋지 않은 환경에서도 늘 밝고 명랑하고 쾌할하게 보인다. 그래서 아마도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의 제제와 비교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책을 읽었다. 제제는 뽀르뚜가 아저씨가 있었다. 그것이 그를 지탱해주었고 자신이 사랑하는 라임 오렌지 나무 밍기뉴가 그 아이의 희망이었다. 여기 엘리에게는 슬림 할아버지가 있었고 말을 하지는 않지만 형이 있었다. 그렇게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었기에 엘리는 살아갈 수 있었을까. 슬림 할아버지는 병원에 있고 사건이 일어난 후 아이들을 아빠에게 보내진다. 이제 전혀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야 하는 이 형제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나는 낚싯대를 잡아강기는 동시에 릴을 감는다. 오랜 시간을 들여, 신중하게. 일정한 리듬에 맞춰서 . 단호하게. 가차 없이. 괴물이 지쳐가고 있지만 나도 마찬가지다. (357p)
엘리가 할아버지와 함께 잒시를 간 장면은 노인과 바다를 연상시킨다. 고작해야 십대 초반의 아이. 이 아이가 감당해야 될 것은 너무나도 무겁고 힘들다. 그것을 암시라도 하듯이 작가는 이 아이의 낚싯대에 엄청나게 큰 고기를 걸어주었다. 노인이 바다에서 힘겨운 투쟁을 하듯이 엘리도 만만치않게 힘든 싸움을 한다. 노인은 바다에서 낚시에 성공은 했지만 결국 빈손으로 돌아왔다. 엘리는 어떨까.
형은 무릎을 꿇고 오른손 검지로 달 웅덩이에다 완벽한 흘림체로 세 단어를 썼다.
'소년, 우주를 삼키다.' (23p)
전반적으로 엘리는 현실적이게 그려지는 반명 형인 오거스트는 몽상적이게 그려진다. 그래서일까 그가 하는 말도 이해하기 어렵다. 그가 썼던 세단어. 소년 우주를 삼키다. 여기에서의 소년은 아마도 엘리가 아닐까. 우주를 몽땅 삼켜버릴 정도의 대담함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 우주를 다 삼켜버려서 자신이 곧 우주가 되는 그런 광활하고 넓은 의미로 이해해 볼 수도있을 것이다. 이 세단어는 엘리와 오거스트 그들 형제의 비밀스러운 암호도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여전히 우주를 삼키고 있을까 아니면 벌써 삼켜버렸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