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서 살아간다는 것
사쿠라기 시노 지음, 이정민 옮김 / 몽실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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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어머니 데루가 떠올랐다. 돌아가신 지 벌써 2년이 되었구나 싶을 즈음 콧속이 시큰거려 왔다.

- 아니, 왜 이제 와서.

윤이 나게 닦은 바닥에 눈물이 한 방울 똑 떨어졌다. (248p)


사쿠라기 시노의 글이다 하고 생각한다면 선입견이고 편견일지 몰라도 왠지 모르게 시니컬하고 칠리하고 다크할 것만 같다. 굳이 영어적인 표현을 써야만 했다. 냉소적이고 차갑다라는 말로는 표현되지 않는 그 무언가 어둡고 무거움이 고여있음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런 편견을 그대로 휙 하고 날려버려준다. 바로 이 책 둘이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표지에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뒷모습을 보인 채 앉아있다. 가운데 쵸콜릿으로 보이는 것을 두고 나란히 앉아 밤하늘을 보며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따스함을 준다. 왠지 저 둘 사이에 하트하트 모양을 넣어 이모티콘처럼 그려봐도 좋을 것 같다는 그런 느낌이다. 이 겨울에 맞춤형 핫팩인 셈이다.


노부요시는 영사기사다. 하지만 지금은 일이 없다. 가끔 있는 일이다. 그는 어머니인 데루의 병원에 동행을 한다. 물론 자신이 마구 내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호출에 응답했을 뿐이다. 간호사로 일하는 아내 사유미를 보낼 수는 없으니 말이다. 엄마는 오늘 무릎이 아프네 하더니 노부요시와 함께 장어덮밥을 먹고는 그대로 집으로 왔다. 이제는 안 아프다나. 노부요시는 퉁명스럽다. 장어덮밥을 먹자고 했을 때도 자신은 돈이 없다고 얘기했던 아들이다. 그렇게 모자의 이야기가 흐르는가 싶었지만 작가는 여기에서 엄마의 죽음으로 브레이크를 건다.


등장인물은 많지 않다. 노부요시와 사유미 그리고 주변 인물 몇이 전부다. 엄마의 죽음 이외에 그닥 큰 갈등이나 변화도 눈에 뜨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잔잔함 그 자체다. 잔잔함이 지루함일까. 아니 그렇지 않다. 불멍이나 물멍처럼 아무 변화없는 것을 사람들은 즐기지 않던가. 아무 생각없이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을 주고 행복을 주는 것. 그것은 파도 또한 그러하다. 파도가 밀려나간다. 밀려 들어온다.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똑같은 소리를 내며 쏴아쏴아. 이 작품은 그런 파도소리를 닮았다. 잔잔한 파도소리.

아무 생각없이 눈이 글자를 따라간다.

잠시 그들의 상황을 상상해본다. 다시 글자를 따라간다. 그렇게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끝나있다. 마음 속에서는, 머리 속에서는 그 글자와 문장들이 여전히 들어가고 나가고를 반복하고 있다. 잠시 머리를 비울 시간이다. 이제 불멍과 물멍에 이은 글멍 또는 책멍을 추가할 시간이다. 이 책은 책멍을 때리기에 가장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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