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페션 - 두 개의 고백 하나의 진실
제시 버튼 지음, 이나경 옮김 / 비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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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러지 못했다. 어느 여자 유령과 자신만의 환상 속에 사는 남자친구에게 사로잡혀 내 손으로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내겐 몰도, 엄청난 인스타그램 팔로워도, 내 이름으로 발표한 책도, 바닷가에서 함께 살 아내도 없었다. (89p)



2018년. 로즈라는 한 여자가 있다. 오래 사귄 조라는 남자친구가 있다. 그는 언제나 자신만의 부리토스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트락만 녹이 슬어가고 있을뿐 아무것도 하는 것은 없다. 그것은 자신도 마찬가지다. 아이도 없고 일도 없고 뭐 하나 번듯하게 내세울 것이라고는 없다.

엘리스는 화가 나기 시작했다. 코니의 나이 어린 파트너로서, 특출한 재능이 없는 사람으로서, 엘리스는 언제나 배려하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미소 지어야 한다고 느꼈다. (166p)

1980년. 엘리스라는 한 여자가 있다. 모델 일을 하는 그녀는 수업이 취소되었다. 그러다 한 여자를 보았다. 스무살인 자신보다 훨씬 더 나이가 많아 보이는 그런 여자였다. 그들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식당에 가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 엘리스는 처음에는 자신의 나이를 속이지만 곧 본래대로의 자신을 알려준다. 스무살과 서른 여섯살.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모델일을 하는 여자와 작가인 여자. 전혀 교차점이 없어보이는 그들. 하지만 그렇게 만났다.


접점이 없이 따로 노는 이야기는 1980년과 2018년에서 각기 전개되고 있다. 하지만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안다. 이것이 언젠가는 만나질 것을 말이다. 주인공이 같은 장소에 존재를 할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났지만 변화하지 않은 장소가 두 시기를 이어주는 요소가 되기도 할 것이다. 어느 정도 읽어가다 그 교차되는 것을 이해했다. 그리고는 결정했다. 이 책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읽어보기로 말이다.


이 책은 각 년도를 교대로 편집해 두었다. 상상력을 충분히 발휘될 수 있을지 몰라도 내게는 혼란스러움을 주었다. 중간 정도에서 과감히 결단을 내렸다. 연도대로 읽어보기로 말이다. 중간에 2018년이 나오면 건너뛰었다. 연도별로 1980년대부터 시작해서 그렇게 차례대로 읽었다. 그렇게 엘리스를 따라서 그녀의 삶에 집중해서 읽었다. 엘리스가 그녀 코니를 만나고 사랑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리고 그녀를 좇아서 미국에 가기까지 허겁지겁 그녀들의 인생을 쫓아간다.


사랑은 화분에 심은 식물이 아니야. 로즈. (325p)

코니는 괜찮았다. 엘리스를 만났고 그녀를 사랑했고 자신이 그녀에게 모든 것을 줄 수있을 것이라 믿었을 것이다. 엘리스는 아직 어렸다. 스무살이 무엇이 어리냐고 그럴수도 있겠지만 아직 사회생활을 많이 해보지 못했고 많은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다. 그런 그녀가 코니를 만남으로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더 젋은 세상을 볼 수도 있었겠지만 그것은 코니의 세계일뿐 자신의, 엘리스만의 세상은 아니었던 것이다. 거기다가 끊임없이 코니를 바라는 사람들의 요청은 엘리스에게 있어서 낯선 환경에서 더 신경을 날카롭게 세우고 있게 만들었을 것이다. 생일을 챙겨주지 않은 것도 그래서 더 화가 났을 것이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자신의 파티를 열고 싶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전혀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은 아니었고 그녀들이 헤어지는 결과를 낳았지만 말이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를 향한 불씨를 꺼트리고 있었다.


끝가지 다 읽은후 이번에는 2018년의 로즈의 인생을  따라간다. 엘리스가 아직 어린 나이여서 그랬다고 이해는 할 수 있지만 로즈는 그보다는 훨씬 나이가 더 많다. 그때의 코니 나이보다는 어리고 엘리스보다는 많은 서른 중반대. 하지만 그녀는 어린 날의 엘리스와 같다. 아직도 세상을 잘 모르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 거기다가 어린 시절에 자신을 떠난 엄마를 그리워하는 유년기적인 생각마저 가지고 있다. 그녀에게 있어서 엄마라는 존재는 언제나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죽지도 않았던 엄마. 그저 단순하게 자신을 내버려 두고 간 엄마였다.

학교 다닐 때는 자신의 생각대로 엄마를 만들어 냈다. 엄마는 때로는 여행을 가기도 했고 때로는 출장을 가기도했다. 하지만 결코 죽지는 않았다. 아빠는 모든 것을 채워주었지만 결코 엄마의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었다.  그것이 해결되지 않다 보니 그녀는 끊임없이 엄마의 존재를 간구한 것 같다. 그래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아빠가 해준 한마디 때문에 말이다. 아빠는 그녀에게 책을 주었고 엄마가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그녀였다는 것을 알려준다. 로즈는 작가를 찾아보기로 결심을 한다. 작가가 아직까지 살아있을까. 단 세권의 책만 썼던 작가는 왜 그 이후로는 작품을 쓰지 않았던 것일가. 여기까지 읽었다면 알겠지만 바로 여기에서 접점이 드러난다.


나는 이 원고가 코니가 사실 누구인지 알려주고, 그를 통해 내 어머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알 수 있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작가는 소설에 자신을 써넣으니 원래의 생각이 아무리 바뀌어 새 형태를 띤다 해도, 여전히 그 속에 어느 정도의 진실은 있을 거라고 믿었다. (234p)

컨페션. 고백이라는 영어단어이다. 코니는 마지막에 모든 고백을 함으로 자신의 짐를 덜었을 것이다. 로즈 또한 고백을 함으로 그동안 자신이 숨겨오고 있었던 존재에 대한 짐을 벗어버렸을 것이다. 각기 자신의 고백을 함으로 본질을 드러낸 것이다. 오랜 시간을 거쳐오기는 했지만 말이다. 컨페션이라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인생에 대해서 감추고 있던 것을 직접 드러내는 것, 그 컨페션을 통해서 그녀들이 얻은 것은 또 무엇일까.

앨리스와 코니, 코니와 로즈. 엘리스와 로즈. 단 세명의 여자들. 그 사이에 얽힌 실타래는 두껍고 질기다.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아니 그녀들이 전부가 아니다. 코니와 샤라. 로즈와 켈리. 엘리스와 욜란다. 샤라와 엘리스. 엘르시와 몰. 켈리와 몰. 수 많은 얇은 관계들이 그 사이에 다시 얽혀 있다.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보면 가위로 실을 끊는듯이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의 관계는 그렇게 또 싹둑 잘려지지 않는다. 손으로 하나하나 풀어서 그 끝을 찾아야 하는 매듭과도 같다. 이 질긴 인연의 끝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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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탐정 유동인 - 더 비기닝 서점 탐정 유동인
김재희 지음 / 몽실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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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부터 환한 봄향기를 가져다 준다. 이 책은 봄이다. 서점 탐정이 아니라 봄의 요정이라 해도 무방할 것만 같은 그런 표지가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표지족들에게 당연히 환영 받을만한 그런 표지고 내용이 중요하다라고 외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지나가다 한번쯤은 궁금증을 일게 할 그런 표지임에 틀림없다. 이 봄, 그를 만나야 한다.


서점에서 일하는 MD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작가는 분명 책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사람이다. 아니 작가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느냐고 반박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그럴지라도 한번 더 짚고 강조하고 싶었다. 작가의 전작을 보면 그런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경성 탐정 이상. 총 5권의 시리즈로 구성된 이 작품은 제목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이상이라는 시인이자 작가를 탐정으로 삼아서 전면에 내세웠다. 사건이 일어나면 그가 나타나서 어김없이 나타나 짠 하고 해결한다. 전작에서는 소설가를 주인공으로 하더니 이번에는 그 소설가가 만든 책을 진열하고 파는 MD가 주인공이다. 독특한 주인공 설정으로 해서 당연히 더 궁금증이 돋는다. 이 봄, 그를 만나야만 한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로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그는 친구이자 파트너인 형사 강아람과 함께 사건을 해결한다. 민간인이 그가 사건에 참여할 방법은 없다. 형사인 서브 캐릭터가 필요해지는 이유이다. 책을 많이 읽고 추리소설가를 지망하며 다방면에 아는 것이 많은 유동인이기에 그가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당연하다 싶으면서도 어쩐지 혼자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던 김전일과 비교해서 덜 얄미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김전일 이야기는 재미있기는 하지만 나중에 혼자 모든 것을 다 알았어 하며 사건을 설명할 때면 대단해 보인다 싶지만 그래도 조금은 얄미웠기 때문이다.

동인이에게는 그런 면이 없다. 그러면서도 어떤 다른 시리즈의 주인공처럼 헛다리만 작열하지도 않는다. 이건가 싶었다가 아니아니, 다시다시를 남발하면서 모든 것을 뒤짚어 엎는 행동따위는 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표지의 그림답게 깔끔하다. 이야기 구성이 군더더기가 없다. 누군가는 단순하다고 말할수도 있겠지만 이 책의 장르는 분명 심각한 스릴러도 아니고 모호한 미스터리도 아니고 간결함을 추구하면서도 누구라도 편안하게 읽을수 있는 코지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심플 이즈 더 베스트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사건은 사건을 부른다. 분명 이 사건에서 언급은 되었지만 해결되지 않은 사건들이 있다. 그 사건들이 여기서 등장하지 않았다면 작가는 분명 속편을 염두에 두었음이 틀림없다. 독자는 그런 궁금증을 계속 가지고 있게 된다. 대체 그 사건은 어떻게 되었어요라고 작가에게 직접 물어보고 싶어진다. 작가는 어떤 답을 내어주게 될까. 아마도 그 힌트는 이 책의 제목인 더 비기닝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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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스틸러 Love Stealer
스탠 패리시 지음, 정윤희 옮김 / 위북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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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차세대 범죄스릴러 작가라는 표지 카피를 보는 순간 딱 한 사람이 먼저 떠올랐다. 제임스 패터슨. 왕년의 실력은 잠시 숨겨두었는지 지금은 그의 신작들을 어린이 어드벤처 작품 [맥스 아인슈타인] 에서나 볼 수 있지만 내게 있어서 이 작가는 [한밤의 배회자]나 [쓰리 데이즈] 같은 그런 뛰어난 범죄 스릴러의 대가였다. 그중에서도 우먼스 머더 클럽시리즈는 참 좋아하는 시리즈였다. 다음 작품이 나오기까지 목 빼고 기다리는. 요즘은 그런 멋진 범죄 스릴러를 볼 수 없어서 아쉬웠는데 스탠 패리시는 그런 아쉬움을 확실히 메꿔줄 그런 작가임에 틀림없다.


자칫하면  조금은 유치하게 보일 표지일수도 있지만 그마저도 한편의 영화처럼 디자인 했다. 라스베이거스의 밤풍경을 바탕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2인조의 모습은 그들이 무엇때문에 이토록 달리고 있는지 궁금함을 일으키면서 빠른 스피드가 반짝이는 조명과 환상적인 케미를 불러 일으킨다.


라스베이거스, 세계적인 보석 매장에 도둑들이 들어온다. 환한 대낮에 그곳을 침입한 그들은 계획한대로 다이아몬드를 털어서 완벽하게 자취를 감춘다. 표지와 딱 맞아 떨어지는 플롯이다. 이제 그들이 누구인지 알았으니 신나게 달릴 일만 남았다. 전문적인 도둑임에는 틀림없고 그들이 다음에 어느 곳을 향하는지가 궁금해질 찰나 작가는 이 부분에 제동을 걸어서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또 다른 흥미로움이 개입하는 시점이다.


남녀간의 사랑과 우정 그리고 자식에 대한 사랑과 그에 대립하는 절도, 납치 그리고 추적과 살인. 범죄 스릴러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를 기본 뼈대로 삼고 그 위에 적절하게 옷을 입혀 가며 누가 봐도 흥미로와 할 그런 스릴러가 펼쳐진다. 한 문단의 길이가 상당하다. 원작에도 그렇게 되어 있어서 아마 원작의 묘미를 살리고자 한 것 같다. 죽 연달아서 이어지는 이야기는 숨을 쉴 수가 없게 만든다. 숨이 가빠질만 할 때야 겨우 한숨을 돌리게 한다. 영상미가 돋보여서 분명 영화로 만들어져야만 할 것 같은 그런 스릴러다. 설명하는 것 자체가 부족하다. 직접 확인하는 것이 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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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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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뛰어난 딸이라 해도 아버지가 너무 잘 나면 조금은 비교가 되는 것은 사실인가 보다. 딸인 이민아가 어디 평범한 사람이던가. 그녀는 하버드를 조기 졸업하고 미국에서 변호사와 검사직을 수행했던 뛰어난 인재였다. 말년에는 아프리카의 아이들을 위해서 자신의 남은 노력을 아낌없이 퍼부었던 그런 특별한 사람이었다. 그렇다 해도 그녀의 이어령이라는 사람의 딸이었고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했다.


흔히 하는 말로 부모님 살아계실 때 잘하라는 그런 말이 있다. 아무래도 부모가 나이가 더 들었기 때문에 먼저 돌아가실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그런 말이 생긴 것이리라. 자식들이 정신 차리고 효도하려고 보면 부모는 살이있지 않다는 그런 슬픈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는 데는 순서가 없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누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아무리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삶은 유한하고 결국은 언젠가 끝나게 마련이지만 그 끝이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뛰어난 아버지 밑에 뛰어난 딸이 태어났지만 허무하게도 아버지보다 이르게 이 세상의 삶을 정리했다. 병으로 인해서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간 딸을 기억하는 마음으로 아버지가 한자한자 적어 내려간 편지 그 편지의 묶음이 바로 이 책이다.


책에서는 저자의 삶이 그대로 엿보인다. 딸이 태어나기 이전에 자신이 어떠한 곳에서 살았는지 자신의 배우자를 어떻게 만났는지부터 시작해서 딸이 어떤 곳에서 태어났고 어떤 성장과정을 거쳐서 자랐는지에 대해서 거의 다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진부하거나 따분하지 않다. 최고의 석학이자 문학박사이자 평론가답게 여러 문헌을 인용하기도 하면서 때로는 절절하게 때로는 유머스럽게 이야기를 풀어놓으면서 공감을 하게 만든다.


만일 지금 나에게 그 삼십 초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하나님이 그런 기적을 베풀어주신다면, 그래 민아야, 딱 한 번이라도 좋다. 낡은 비디오테이프를 되감듯이 그때의 옛날로 돌아가자. 굿나잇 민아야, 잘 자라 민아야. (23p)


저자의 딸인 이민아 목사가 한 인터뷰에 따르면 딸은 아버지의 사랑을 참 많이 고파한 것 같다. 공부를 잘 했어도 아버지의 위해서 한 것이라고 했던 것을 보면 말이다. 워낙 바쁜 아버지셨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유명한 아버지를 둔 딸도 좋은 것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 또한 하게 된다. 아버지는 딸이 떠난 후에야 시간을 되돌리기를 바라면서 그녀에게 굿나잇 인사를 보낸다. 어린 시절 딸이 아빠를 불렀을 때는 그저 지나쳤을 그 시간들을 돌리고 싶어한다. 마치 소설에서처럼 말이다. 마라크 레비가 쓴 [고스트 인 러브]에서는 죽었던 아버지가 살아 돌아온다. 물론 유령의 모습으로 말이다. 아들에게 부탁이 있어서 찾아온 아버지였다. 소설은 소설일 뿐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그렇기에 저자가 지금 이 이야기를 읽는 모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 아닌 것 같다.


문체는 담담하고 잠잠하다. 격정적이거나 감정에 휘말리지 않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딸을 그리워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곳곳에서 보여서 잠시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고 다시 읽는다. 아버지의 첫딸이었다. 첫 자식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소중했을 것이지만 아버지도 아버지가 처음이라 뭐가 뭔지 몰랐을 것이고 일을 하느라 바빴을 것이고 그래서 더 신경을 못 썼을 것이다. 그래도 딸이 힘들었을 때가장 먼저 찾은 것이 아빠이고 결국엔 아빠의 품으로 돌아와 마지막을 정리했던 것을 보면 부녀사이가 얼마나 돈독했는지를 더욱 잘 알 수 있다. 딸이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들어주었던 아버지. 딸이 많이 그리울 아버지의 모습이 연상되어 먹먹함이 가슴 가득히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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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인 러브
마르크 레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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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한 빛 속 아버지가 늘 앉아서 책을 읽던 검정 가죽 안락의자에서 낯익은 실루엣이 따뜻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순간 머리에 스친 한마디가 목구멍에 걸렸다. 아빠? (25p)



아빠가 돌아왔다!

죽었던 아빠가 돌아왔다면 그것은 행복하게 반겨야 하는 일일까 으악하고 소리지르며 도망가야 하는 일일까. 피아니스트인 토마는 연주를 앞두고 잠시 들렀던 엄마 집에서 마리화나를 발견하고 피운다. 그것이 잘못된 것일까. 이 세상에 분명히 없어야 할 아버지가 눈에 보인다. 분명히 자신의 눈에만 말이다. 그렇게 보이는 아버지의 유령으로 인해서 그는 연주에서 실수를 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는 등 일상생활에 흔들림이 생긴다.

그것이 전부였다면 좋으련만 아버지는 이제와서 토마에게 말도 되지 않는 부탁을 한다. 그것은 바로 유골훔치기다. 아니 유골을 훔치는 것은 둘째치고 한번도 보지 못했던 사람의 장례식에는 어떻게 참여할 것인가. 지나가다 들른 사람처럼 조문을 표할수도 없는 것이 아닌가. 거기다 토마는 지금 파리에 있는데 그 장례식은 미국에서 열린다. 더군다나 토마는 하루하루가 연주로 바쁜 피아니스트란 말이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며칠. 그 안에 미국에 가서 남의 장례식에 참여하고 그 사람의 유골을 훔쳐서 아버지가 바라는 비션을 행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다 가능한 일일까.

유령은 뒤에서 둥둥 따라오는 줄 알았는데! (46p)


유령이 나타난다고 해서 무섭거나 오싹하지 않다. 오히려 아버지 유령은 원래부터 그런 성격이었는지 매사 유쾌하고 밝으며 아들을 놀려주는 것 같지만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도 가득하다. 그러나 아들은 아들이고 일단은 자신의 사랑이 먼저고 우선이다. 자신의 사랑을 위해서 아들을 찾아온 아버지. 이해하기 힘든 것 같으면서도 그 나름의 인생이라고 생각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들과 아버지의 티키타카가 조화롭다. 아들을 아버지를 원망하는 것 같으면서도 아버지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틱틱대면서도 알아볼 것은 알아보는 모습을 보면 그러하다. 아버지가 시킨 것을 무시해버릴 수도 있지만 실제로 행하는 장면들이 더욱 그러하다. 아들은 아버지가 살아있었으면 하고 싶었던 그런 여행을 지금에서야 할 수 있음이 반가왔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더 열심을 내지 않았을가.

그저 한순간의 재미라고 보기에는 아들과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진하게 녹아있어서 감동이라는 조건을 빼고 말할수는 없을 것 같다. 거기다 마지막에 드러나는 반전의 묘미까지. 마르크 레비는 이런 종류의 미션과 감동과 재미와 감성을 모두 만족시키는 작가임에 틀림없다. 전작의 명성을 들은 적 있다. 단순히 프랑스 작품이라고 해서 배제해버렸는데 이제는 찾아읽어도 되겠다라는 확신이 든다. 프랑스 문학이 이렇게 신나도록 즐거우면 굳이 패스해버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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