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 인 러브
마르크 레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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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한 빛 속 아버지가 늘 앉아서 책을 읽던 검정 가죽 안락의자에서 낯익은 실루엣이 따뜻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순간 머리에 스친 한마디가 목구멍에 걸렸다. 아빠? (25p)



아빠가 돌아왔다!

죽었던 아빠가 돌아왔다면 그것은 행복하게 반겨야 하는 일일까 으악하고 소리지르며 도망가야 하는 일일까. 피아니스트인 토마는 연주를 앞두고 잠시 들렀던 엄마 집에서 마리화나를 발견하고 피운다. 그것이 잘못된 것일까. 이 세상에 분명히 없어야 할 아버지가 눈에 보인다. 분명히 자신의 눈에만 말이다. 그렇게 보이는 아버지의 유령으로 인해서 그는 연주에서 실수를 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는 등 일상생활에 흔들림이 생긴다.

그것이 전부였다면 좋으련만 아버지는 이제와서 토마에게 말도 되지 않는 부탁을 한다. 그것은 바로 유골훔치기다. 아니 유골을 훔치는 것은 둘째치고 한번도 보지 못했던 사람의 장례식에는 어떻게 참여할 것인가. 지나가다 들른 사람처럼 조문을 표할수도 없는 것이 아닌가. 거기다 토마는 지금 파리에 있는데 그 장례식은 미국에서 열린다. 더군다나 토마는 하루하루가 연주로 바쁜 피아니스트란 말이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며칠. 그 안에 미국에 가서 남의 장례식에 참여하고 그 사람의 유골을 훔쳐서 아버지가 바라는 비션을 행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다 가능한 일일까.

유령은 뒤에서 둥둥 따라오는 줄 알았는데! (46p)


유령이 나타난다고 해서 무섭거나 오싹하지 않다. 오히려 아버지 유령은 원래부터 그런 성격이었는지 매사 유쾌하고 밝으며 아들을 놀려주는 것 같지만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도 가득하다. 그러나 아들은 아들이고 일단은 자신의 사랑이 먼저고 우선이다. 자신의 사랑을 위해서 아들을 찾아온 아버지. 이해하기 힘든 것 같으면서도 그 나름의 인생이라고 생각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들과 아버지의 티키타카가 조화롭다. 아들을 아버지를 원망하는 것 같으면서도 아버지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틱틱대면서도 알아볼 것은 알아보는 모습을 보면 그러하다. 아버지가 시킨 것을 무시해버릴 수도 있지만 실제로 행하는 장면들이 더욱 그러하다. 아들은 아버지가 살아있었으면 하고 싶었던 그런 여행을 지금에서야 할 수 있음이 반가왔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더 열심을 내지 않았을가.

그저 한순간의 재미라고 보기에는 아들과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진하게 녹아있어서 감동이라는 조건을 빼고 말할수는 없을 것 같다. 거기다 마지막에 드러나는 반전의 묘미까지. 마르크 레비는 이런 종류의 미션과 감동과 재미와 감성을 모두 만족시키는 작가임에 틀림없다. 전작의 명성을 들은 적 있다. 단순히 프랑스 작품이라고 해서 배제해버렸는데 이제는 찾아읽어도 되겠다라는 확신이 든다. 프랑스 문학이 이렇게 신나도록 즐거우면 굳이 패스해버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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