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 클래식 - 은밀하고 유쾌한 음악 속 이야기
문하연 지음 / 알파미디어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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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인한 방구석 생활이 길어지면서 미술 분야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그린 책들이 인기를 몰고 왔다. 나 또한 몇 권의 책을 읽었다. 이 책의 이전 작품인 [다락방 미술관]을 읽었기에 이 책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진 것일수도 있다. 전작이 다른 출판사에서 나왔기에 이 책과 판형이 맞지 않는 것은 조금 아쉽다.



베토벤은 머지않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 것이다.(108p)


모차르트가 베토벤의 연주를 들었다는 사실을 왜 몰랐을까. 음악실에 가면 언제나 걸려있던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초상화들. 그들이 동시대를 살고 서로의 연주에 감명을 받고 감탄을 했던 그런 사실들이 사뭇 신기하다. 다른 세상의 일로만 여겨지던 그 음악가들은 이 책안에서 살아서 움직인다. 그래서 읽는 것이 더욱 즐겁다. 그 시대에 이런 일이 있었구나 하면서 이해한다. 피아노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친다는 체르니가 베토벤의 제자라니. 모차르트가 베토벤을 두고 감탄을 했지만 자신의 제자로 삼지는 않았다니. 만약 그가 베토벤을 자신의 제자로 삼았다면 베토벤의 유명한 음악들은 나오지 않았을까. 이후로 모차르트의 제자인 훔멜파와 베토벤의 제자인 체르니파로 나뉘었다고 하니 그들이 후대에 미친 영향이 얼마나 큰 지 새삼스럽게 다시 보게 된다.


이 책은 클라사 슈만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솔직히 슈만은 알고 있었지만 클라라 슈만은 누구인지 몰랐다. 그녀가 이토록  뛰어난 연주자였다는 것을 처음 알았고 그녀가 많은 작품을 남겼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우리는 아니 나는  뛰어난 음악가들은 다 남자여야만 했다는 그런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학교 다닐 때 음악실에 초상화가 다 남자였다는 이유로 말이다. 이렇게 책을 통해서 또 한번 알아간다. 여기에서 언급된 클라라는 제일 뒤쪽에 다시 한번 나오는데 그 클라라는 또 다른 사람의 클라라다.  쇼팽이 자신의 작품을 제대로 연주할 유일한 사람이라고 했던 클라라. 이 이름을 가진 사람은 다 음악을 잘하는 것이려나.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 오케스트라는 피아노에 주저앉지 말고 일어나라고 독려하고 피아노는 서러운 마음을 쏟아내고. 다시 오케스트라가 그를 위로한다. (253p)


하스킬이 누구인지 몰랐다. 이 글 하나만으로 나는 그 연주를 찾아서 듣고 싶어졌다. 자기 자신에게 만족함이 없었던 연주자의 음반은 어떨까. 왠지 모차르트의 곡이 새롭게 들릴것만 같은 느낌이다.


뛰어난 음악가들이 다 재정적으로 부유한 것은 아니었다. 유명한 리스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악기를 연주하고 음악을 할만큼 충분한 형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리스트의 무대를 보고 압도당한 귀족들이 그의 학비를 책임지겠다고 했다.그의 실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쉽게 알수  있는 부분이다. 오늘날의 장학금 정도일까. 또한 리스트는 엄청난 선생들 밑에서 사사했다.  체르니가 실기지도를 했고 모차르트의 라이벌이었던 살리에르가 이론을 가르쳤다. 거기다가 체르니가 베토벤의 제자였기에 리스트도 베토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에게 얼마나 큰 영광이었을까.


일반적인 음악 이야기와 더불어 음악가들의 생활과 삶 그리고 사랑이야기까지 빼곡하게 드러있는 이야기들이 참 반갑다. 순식간에 읽혀진다. 베토벤이나 모차르트같이 익히 알고 있는 그는 사람들뿐 아니라 다양한 음악가들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어서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저자는 시대적으로 여성 음악가들이 많이 없어서 그들에 관해서 싣지 못해서 아쉽다고 했지만 나에게는 그래도 충분했다. 클라라를 알지 않았는가. 이제 음악을 들어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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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미제라블 - 인간의 잔혹함으로 지옥을 만든 소설
빅토르 위고 지음, 서상원 옮김 / 스타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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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읽을 때면 그런 느낌이 든다. 내가 이것을 읽었던가 안 읽었던가 하는 그런 생각 말이다. 너무 유명한 이야기들이라서 분명 어디선가 요약본을 읽었던가 그렇지 않다면 국어 시간에 배웠던가 하는 것이 바로 그 이유일 것이다. 이 책 [레미제라블]도 같은 이유로 읽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읽어갈수록 내가 알던 레미제라블과는 너무나 다른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것을 가지고 수박겉핧기라고 하는 것이구나. 이래서 책은 읽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이것은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빼앗은 것이 아니니까. (15p)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사실 하나. 내가 생각한 것보다도 신부님은 훨씬 더 대단한 분이셨다. 아니 그냥 단순한 신부님이 아니고 주교님이셨다. 자신의 죄를 인식하지 못하고 주교님의 유일한 은제품들을 탐을 내고 훔친 장발장을 용서해 준 이야기는 장발장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아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주교님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원래부터 성품이 검소한 분이셨다. 자신의 집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이웃한 병원과 바꿀만큼 말이다. 내가 너무 드문드문 본 것이었다. 세상에 이런 성직자만 존재한다면 누구라도 감동을 받고 개과천선을 하지 않을까.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사실 둘. 장발장은 단지 빵을 훔친 죄로 19년이나 감옥살이를 한 것은 아니니었다. 빵 하나를 훔친 죄로 그렇게 오랫동안 수감생활을 했다면 너무 불공평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내내 가지고 있었다. 그랬다. 비록 빵을 훔친 죄로 감옥에 가기는 했지만 그때는 5년 형이었다. 4년을 감옥생활을 하고 마지막 해에 이르러서 그는 탈옥을 시도했다. 물론 성공할 리 없다. 그렇게 잡혀서 탈옥죄로 형기가 늘었다. 그렇게 그렇게 계속 탈옥을 시도하다가 그는 그렇게 긴 시간동안 감옥에 있어야만 했던 것이다.

여기서 의문점이 든다. 대체 그는 왜 탈옥을 시도한 것일까. 남겨둔 가족들이 걱정되고 신경이 쓰였다면 바로 탈옥을 시도해야 하는 것이 맞지 않는가. 그게 아니라면 시도를 할 기회가 없었다면 4년이나 이미 감옥생활을 했는데 마지막 일년만 그냥 버티다가 나오면 그것이 더 나은 방법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그는 하지 않은 것인가 하는 그런 의문점이 자꾸만 든다.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사실 셋. 나는 코제트가 어디서 나온 아이인줄 기억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장발장이 신부님으로부터 은촛대를 선물받고 그 이후로 이름을 바꾸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그도 그렇게 잘 살 때가 있었구나.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가 신부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았다는 것. 거기서 이야기는 끝이었다. 그러니 코제트라는 아이와 장발장을 연결을 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이 아이는 장발장의 후기 인생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사실 넷. 자베르는 무조건 악한이 아니었다. 장발장을 죽어라고 쫓아다니는 형사가 바로 자베르다. 이때까지는 그렇게 미워했었다. 장발장 하면 바로 따라붙는 그 이름을 미워할 수밖에 없었다. 장발장은 전과자이긴 해도 이제는 잘 살아보겠다고 하는 사람인데 물론 신부님의 것을 훔치기는 했어도 그 이후로는 정말 마음잡고 새 인생을 살아보려 하는데 왜 자베르는 그렇게 끝까지 장발장을 추적하고 못살게 괴롭히고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 말이다. 자베르와 장발장은 끊임없이 엇갈리고 쫓기고 도망친다. 마지막이 결정적이었다. 장발장은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풀어준다. 거기서 감동을 받은 것일까. 공익과 개인의 딜레마 속에서 어쩔수 없는 선택을 한 자베르. 그의 인생 또한 안타깝기 그지없다.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사실 다섯. 이 책은 장발장의 일대기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또는 교훈을 주려는 이야기로만 알고 있었다.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이 속에는 코제트와 마리우스의 사랑이야기도 나오고 코제트의 엄마였던 팡틴의 경우처럼 사회적 문제점도 등장한다. 그런가 하면 후반부로 접어들수록 그 당시 프랑스의 사회 정세가 드러난다. 사람들은 폭동을 일으킨다. 역사적인 부분까지도 꿰둟고 있는 작품이다. 그래서 이 작품이 고전 중에서도 손꼽히는 명작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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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온천 여행
다카기 나오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살림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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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에 접어들면서 가장 하고 싶은 꼽으라면 아마도 여행일 것이다. 남들보다는 자유로운 직업인지라 일년에 적어도 한 두번은 해외로 나갔다 오곤 했었는데 그 숨쉴 수 있는 통로가 막혀버렸다. 그나마도 내가 직접 계획하고 실행하는 여행이 아니어서 그냥 아무 생각없이 따라다니는 것으로 만족했었는데 떼를 지어 모이는 것 자체가 금지되어 버렸으니 그냥 간간히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달까. 그래서인지 여행 관련 서적이 부쩍 인기가 있다는 소리도 들었다.

그렇게 여행이 고파서라는 이유 외에도 이 책을 보고 싶은 하나의 이유가 더 있다. 그것은 바로 온천이다. 작가는 온천을 좋아하기도 하겠지만 이 책을 쓰기 위해서일까 온천에서 나온 직후 또 다른 온천을 가기도 한다.  나 또한 그렇게 온천만 목적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내가 갔던 것은 북큐슈 지역으로 구마모토와 후쿠오카, 유휴인 벳부 등 한국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이 포함되어 있다. 물론 다케오나 사가 지역은 한국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지역이라서 그곳의 온천들도 좋았다.

사실 온천이라는 말이 거창하게 들려서 그렇지 그냥 목욕탕이라고 해도 좋다. 일본의 목욕탕은 진짜 다양하다. 나는 사박오일 동안 하루에 한번씩 다 모두 다른 온천을 들렀었다. 물론 호텔도 온천호텔이서 그것까지 포함한다면 거의 열 개가 조금 못 되는 온천을 다녀온 셈이다. 작가만큼은 아니어도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온천을 다녀왔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혹시 내가 다녀온 온천이 있을까 하고 말이다. 일본은 온천이 꽤 발달한 곳이다. 내가 다녔던 곳들도 역에 족욕을 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곳이 꽤 있었으니 말이다.그곳들은 지금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일상적인 것들이 그립다.


작가는 도쿄를 출발해서 니가타, 시즈오카, 도치,기 후쿠이 등 총 여덟지역을 다녀온다. 길게는 이박삼일이지만 대개는 일박이일의 짧은 일정이다. 그 짧은 시간을 얼마나 알차게 사용했는지 그림 속에서 그 촘촘함이 엿보인다. 실제로 작가가 짠 일정이 사진 속에 나와있는데 꼼꼼함을 여실히 보여준달까. 그렇기 때문에 기차를 놓쳐서 절망하는 작가의 모습이 훤히 그려진다. 그래도 또 얻는 것은 있으니 너무 실망하진 않아도 좋으리.


이 여행의 목적은 온천이지만 이동수단이 대부분 기차여서 기차 여행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중간중간 일일이 기차선을 그려주어서 어디서 어디로 이동했겠구나 하는 생각을 머리속으로 그리면서  따라가게 된다. 일본을 가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기차도 지하철도 어마무지하게 복잡하다. 자유이용권이 있다고 해도 혼용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노선이 바뀌게 되면 또 다른 표를 끊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 책으로 그런 모든 경우를 다 대비할수는 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상상이 된다. 그 길을 상상하면서 읽는 재미란.


온천마다 특징이 모두 다르다. 그림 속에서 그 차이점이 드러난다. 노천온천이 있는 곳이 있는가 하면 동네 사람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곳도 있고 우리나라 찜질방처럼 되어 있는 곳도 있고 호텔이 같이 있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역에 온천이 있는 경우도 있다. 아, 이 책의 즐거움 하나를 또 놓칠뻔 했다. 그것은 바로 먹거리다. 맥주를 좋아하는 작가는 어딜 가나 맥주와 함께 지역의 특산물을 먹는다. 그것을 보는 즐거움은 여행과 함께 놓쳐버린 즐거움을 되찾아준다.

[도쿄에 왔지만] 이라는 책을 통해서 작가의 그림의 재미를 알았다. 이번에도 그 재미는 여전하다. 이 그림을 보는 순간 딱 작가의 그림인 줄 알았다. 주인공은 단순화 되었지만 배경이나 그밖의 모든 것들은 지극히 사실적으로 그려둔 덕에 여행하는 맛이 절로 난다. 이 책을 들고 그대로 따라가보고 싶은 기분도 든다. 한 지역이 끝나고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과 여행 팁 그리고 자신이 갔던 곳의 정보들을 밝히고 있는데 이것은 나중에 정말 갈 수 있는 여건이 되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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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칼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하빌리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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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학생이 있다. 친구들과 불꽃놀이를 보러 갔다. 아빠가 백화점에서 새로 사준 유카타를 곱게 차려 입고 나갔다. 이게 그렇게 큰 문제가 되는 것일까? 친구들과는 지하철로 이동했고 역에서 내려서 한 십분 가량 걸으면 집이 나온다. 이게 그렇게 큰 문제가 되는 것일까? 친구들과 놀러 간 즐거운 하루였을뿐 아무 문제 없는 행동이 아닌가? 그렇다고 그렇게 늦게 집에 들어온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는 죽임을 당했다. 이 아이가 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디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만 하는가. 이 아이의 죽음으로 인한 그 가정에 미치는 영향은 어떨 것인가. 이 아이를 죽인 사람은 어떤 생각으로 범죄를 저지른 것일까.


 

2004년에 발매되었던 이 작품을 보다가 번역자는 다시 한번 서지 정보를 확인했다고 했다. 그만큼 지금 우리의 실정과 다르지 않다는 소리다. 그만큼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같은 범죄는 여전히 저질러지고 있다는 소리다. 그것은 일본을 비롯해서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원래는 작가의 상상 속에서만 저질러지던 범죄가 현실화되었다는 소리다. 그만큼 우리의 현실은 성에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 민감하다기보다는 익숙해져버렸다고 할 수 있겠다. 처음부터 강하게 나갔다면 이런 일은 반복되지 않았을까? 예전에는 단지 몇몇을 통해서만 퍼져나갔지만 인터넷과 미디어가  발달된 이후로는 단 몇초만에도 순식간에 퍼져나갈 수가 있다. 그것이 범인들에게는 사람을 협박할 수 있는 요소가 되고 피해자들에게는 어쩔수 없이 그들의 요구를 들어줘야만 하는 약점이 되어 버린다.


우리가 정의의 칼날이라고 믿는 것이, 정말 올바른 방향을 향하고 있나? (534p)


청소년 범죄문제와 성문제 그리고 왕따 문제와 복수와 마약까지 다양한 주제를 한데 넣고 잘 버무렸다. 너무 큰 이슈들이라서 사실 하나만 하더라도 튀어나오기 마련인데 그 모든 것을 넣고도 어울리게 만드는 작가의 재주가 놀랍다. 요리를 했을 때 정말 비싸고 좋지만 너무 많은 재료는 오히려 맛을 해칠수가 있지만 그런 튀는 요소들을 다 넣고 그런 해침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소리다. 그래서 히가시노 게이고 하면 보지도 않고 산다는 소리가 나오는가 보다.


[공허한 십자가]에서도 청소년 문제는 드러나고 있고 [몽환화]에서도 마약문제는 다루어지고 있다. 자신의 작품들 속에서 찢어져 있던 소재들을 한데 몰아 넣고 그것을 흥미롭게 이끌어가면서도 어떤 결론을 명확히 내리고 있지 않다. 딸을 잃은 아버지는 당장 복수를 하러 나서고 싶을 것이고 거기에 계속적인 정보가 들어온다면 아내도 없이 딸과 함께 살던 아버지로서는 이 세상을 더이상 살 희망도 없으니 이판사판이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몸을 던져서라도 복수를 꿈꿀 것이다. 법적으로는 명백한 살인이다. 누군가를 죽인다는 것은 말이다. 그 둘 사이에 어떠한 인과관계가 있더라도 살인은 살인이다. 사람마다 다 모든 조건들이 있겠지만 그것을 참작하는 것은 판사의 몫이고 법으로는 살인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정상참작의 요소가 있는 것은 나중 일이다.



아무리 윤리적인 설명을 들어도 자기 자식이 죽임을 당할 만큼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없고 목숨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것이다. (267p)


누군가는 범죄자이면서 가해자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부모가 있다. 그런 자식들을 둔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 그런 것도 자식이라고 감싸줘야 할까. 아니면 우리 자식이 나쁜 짓을 저질렀으니 법대로 심판해 달라고 다 드러내야 할까. 만약 그렇게 했을 때 남은 가족들이 받을 상처는 또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그들은 아마도 자신들이 살아온 동네에서 살지 못할 것이고 자신들이 누리는 삶을 그대로 영위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책임은 누가 져야하는 것인가. 아이들을 잘못 길렀으니 당연 부모의 책임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게다가 그 기간이 놀랍도록 짧다. 한 사람의 일생을 빼앗았는데 범인의 인생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니. (134p)


청소년 범죄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고 악화되고 있다. 소설 속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들은 자신들이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아주 잘 안다. 법적으로 걸리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 법의 악용하는 것이다. 아무리 범죄를 저질러도, 실제로 살인을 저지른다 하더라도 아무런 제제를 받지 않으니 청소년 범죄가 더 늘어나는 것이 아닌가. 나이를 낮춰야 한다는 소리도 몇년째 반보되고 있는 소리다. 법을 제정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괜찮으니 그만이라고 귀닫고 외면할 것인가. 지금 이 시간에도 저질러지고 있는 범죄들은 보이지 않는가? 제발 눈 열고 귀열고 보고 들으시길. 청소년 범죄를 저지르는 가해자들은 더이상 아이들이 아니다. 그들은 그저 범죄자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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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사람
정호승 지음 / 비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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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때까지 알고 있던 시인 정호승의 모습은 지극히 단편적인 모습이었다. 그의 시집을 들고 읽었어도 제목이 주는 그 느낌에 의지해서 전체적으로 비슷한 느낌만 받아왔고 다른 시들과 같이 편집된 작품에서는 오로지 그 시의 느낌만 몰입했다. 이 시선집은 다르다. 그야말로 총천연색의 모습을 보여준다. 서정적인 면을 보여주는가 싶으면 사회적인 단면을 거침없이 드러내서 보여주면서 잔잔한가 하면 날카롭다. 야누스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시라는 것이 이렇게 다양했던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양한 느낌으로 보인다. 프리즘에 투영된 색색의 무지개를 보는 느낌이다. 분명 아무것도 색이 보이지 않는 가시광선을 비췄는데 찬란하게 나오는 색들처럼 그저 단순하게 하얀색의 표지가 책장을 넘기는 순간 다채로운 색으로 다가온다.

 

순아 오늘도 에미는 네가 보고 싶어

아픈 몸을 이끌고 역에 나갔다

와닿는 열차의 어느 칸에서고 네가

금방이라도 웃으면서 내릴 것 같아

차마 발길을 못 돌리고 에미는 또 울었다

(중략)

썰렁한 네 자취방 윗목에는

아직도 빈 라면 봉지가 나뒹구는데

순아 하늘에는 겨울에 무슨 꽃이 피더냐

이 겨울 하늘에도 눈물꽃이 피더냐

 

53쪽의 <마지막 편지>는 사람의 마음을 울컥거린다. 단 두쪽의  짧은 싯구 속에는 소설보다도 더 장황한 이야기가 숨어있다. 엄마는 순이를 데리러 가지만 순이는 오지 않는다. 아니 올수가 없다. 순이는 가스중독으로 세상을 떠났다. 엄마도 그것을 알고 있다. 그래도 엄마는 아이를 그리워하면서 또다시 역으로 나간다.

 

아이가 떠난 그 방안에는 아껴서 살겠다고 먹었던 라면봉지만이 뒹군다. 울컥하는 마음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그렇게 떠났으면 잘 살아야지. 왜 가스는 마시고 그랬냐. 뭐 순이라고 자기가 그러고 싶어서 그랬겠냐마는 기필코 기어서라도 나오지 못하고 연기에 허무하게 스러져버려 연기가 되어버린 그 영혼이 아깝다. 엄마의 절절한 심정이 너무나도 잘 드러나 있다.

 

이튿날 아침. 혀가 다 닳아 보이지 않았다 

 

그런 엄마의 마음은 201쪽의 <혀>라는 작품에서도 드러난다. 단지 주인공이 사람에서 개로 바뀌었을 뿐이다. 새끼가 죽은 것을 모르고 계속 핥아주던 혀. 그 혀가 닳아버린 정도로 핥아준 어미의 사랑이 단박에 드러나는 구절이다. 작가의 부모에 대한 사랑은 아버지도 제외할 수 없다. 257쪽 <못>이라는 작품에서는 아버지를 구부러진 못에 비유한다. 못도 처음에는 반듯했고 꼿꼿했고 날카로왔다. 수없이 박히면서 구부러졌고 시인은 그런 구부러진 못에 아버지를 비유하고 있다. '구부러진 못이다 아버지도'라는 구절을 보면서 누구라도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라게 되지 않을까. 

 

당신 떠난 지 언제인데

아직 신발 정리를 못했구나

 

나는 오늘도 그대를 잊은 적 없다

 봄이 가도 그대를 잊은 적 없고

별이 져도 그대를 잊은 적 없다

 

부모의 사랑이 느껴지는 시들이 있는가 하면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는 시도 많이 보인다. 322쪽 <신발정리>와 365쪽의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라는 작품에서다.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남은 사람들은 망자의 유품들을 정리한다. 신발이나 옷들을 태우고 버리고 정리를 한다. 누군가를 잃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다들 경험이 있을 것이다. 시구 속에서는 아직도 신발 정리는 하지 못했다는 표현으로 그리움을 드러낸다.

 

나는 동생이 떠난 후 그 아이의 신발을 오래도록 신었다. 신발이 자기를 부르는 것 같다면서 이 신발을 꼭 사야한다고 주장했던 그 신발이었다. 그 신발을 나는 누군가에게 주거나 태워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주구장창 신었다. 태백산에도 그 신발을 신고 올랐다. 산을 내려 오니 신발 바닥이 닳아서 나달나달해졌었다. 그제서야 그 신발을 버렸다. 시인도 그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누군가를 그리워 하는 마음은 시간이 간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상황에도 계속 생각난다. 그것이 부모일수도 형제일수도 사랑하는 사람일수도 있겠지만.

 

시의 다채로움은 종교적인 면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예수와 주님에 관한 기독교적 사상을 그리는가 하면 불교적인 색채들이 가득한 작품도 있다. 그냥 본다면 시인의 종교는 무엇일까 궁금해지는 그런 대목이다. 무엇이면 어떠한가. 시인에게는 모든 것이 다 시로 표현되는 하나의 소재일 텐데 말이다. 그런 고정관념에서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던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유명한 구절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시의 제목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그리운 부석사>이다. 부석사뿐 아니라 낙산사가 제목에 들어간 시도 있다. 301쪽의 <나는 아직 낙산사에 가지 못한다>라는 시에서는 독특한 비유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비틀비틀 푸른 수평선 위로 걸어가던 나를 슬그머니 담배꽁초처럼 버리고 온 뒤   자기 자신을 버리는 것을 담배에 비유하다니 시인은 담배를 피우기에 그런 생각을 한 것인가 아니면 떨어진 꽁초들을 보고 한 생각인가 궁금해진다. 같은 소재를 보더라도 이런 식으로 표현할 사람 뉘 있겠는가.

 

하늘과 별과 바람과 땅의 사랑과 자유를 노래하고

말할 때와 침묵할 때와

그 침묵의 눈물을 생각하면서

 

그런가 하면 정호승 시인이 흠모하는 시인이 윤동주라는 것을 아주 잘 드러내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들도 보인다. 115쪽의 <작은 기도>가 바로 그렇다. 구절을 읽다보면 어디선가 이런 느낌을 주는 시를 읽은 적이 있는데 하는 묘한 데자뷔를 느끼게 된다. 바로 윤동주의 시다. 이런 식으로 그의 시의 느낌을 가져다 표현하다니 얼마만큼 애정해야 이렇게 표현이 되는 것인가 하고 다시 한번 이 구절을 가만가만 되뇌게 된다.  윤동주의 시를 찾아서 비교해보게 된다.

 

최루탄을 쏘자 낙엽들은 흩어졌다(중략)

최루탄을 쏘자

산새들은 또다시 피를 흘렸다

 

아무도 모른다

장례식장 미화원 손씨 아주머니가

아침마다 꽃을 주워 먹고 산다는 것을

 

97쪽의 <산새와 낙엽>과  218쪽의 <장례식장 미화원 손씨 아주머니의 아침>이라는 이 두 시에서는 사회적인 면이 드러남을 보게 된다. 최루탄이라는 단어에서 나는 80년대 학생운동이 한창이던 그때를 떠올린다. 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올 수 밖에 없었던 그때, 나는 멋도 모르고 최루탄이 매워서 눈물콧물을 흘리고 다녔지만 그들은 목숨을 걸었다. 이땅의 자유를 위해서. 시인은 그들을 작은 산새를 표현한다. 낙엽으로 표현한다. 서정적이나 사회성을 내포하고 있기에 더없이 날카롭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그런가 하면 환경미화원의 모습을 그린 작품도 돋보인다. 손씨 아주머니가 꽃을 먹고 산다니. 장례식장의 조화를 보고 이런 작품을 생각한 것일까. 시인이 이 작품을 무엇을 보고 쓴 것인지가 참으로 궁금해지는 그런 시점이다.  260쪽 <군고구마 굽는 청년>에서 시인은 청년이 기다림을 굽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 기다림 그것은 곧 희망을 말하는것이 아닐까. 우리나라의 미래를 차지할 청년들이 기다림 후에 보여줄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 아닐까. 시인은 이렇게 자신의 시들을 통해서 사회성을 드러내고 있다.

 

서정성과 아름다움 사회성과 감동 그리고 날카로움이 벼려있는가 하면 종교적인 색채가 주는 느낌까지 모두를 어우르고 있는 정호승 시선집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제목을 담고 있지만 이 책은 내가 사랑하는 책이 된다. 아니 그냥 책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시선집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싶다. 내가 사랑하는, 그리고 내가 사랑할, 영원히 내 마음속에 사랑으로 남아있을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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